멍멍! 특수목적견의 세계
멍멍! 특수목적견의 세계
  • 강은영 기자
  • 승인 2024.03.04
  • 호수 1578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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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각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 누구보다 용맹하게 활약하는 개들이 있다. 작은 발자국에서 시작된 위대한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자. 

어디든 두렵지 않다, 119구조견
“나니, 올라가!” 대구에 위치한 119중앙본부 구조견 훈련센터에서 훈련관의 단호한 목소리가 울렸다. 훈련견 ‘나니’는 훈련관의 명령과 수신호에 따라 흔들다리 위를 거침없이 올랐다.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119구조견은 모두 이 훈련센터를 거쳐 임명된 특수목적견이다. 

119 구조견은 적성 검사를 통해 훈련견으로 선발 돼야 한다. 119 구조견에게 필요한 자질은 △목적의식 △복종성 △사회성 △수색 능력 △소유욕  △장애물 능력(점프력) △적응력 △활동성 등이다. 이러한 자질을 갖추고 구조견으로 선발되는 견종은 주로 △래브라도 리트리버 △보더콜리 △벨지안 말리노이즈 △저먼 셰퍼드다.

▲ 재난현장을 재구성한 훈련장의 모습이다.

선발된 훈련견은 119소방청 구조견센터에서 10~18개월간 합숙하며 매일 두 시간 이상 훈련을 받는다. 김상진<중앙119구조본부> 훈련관은 “구조견은 평소 구조 현장에서 6시간 이상 구조 활동을 할 수 있게끔 훈련을 받는다”며 “엄격한 훈련 생활을 마친 훈련견들은 최종 관문인 공인인증평가를 받고 비로소 119 구조견으로 거듭난다”고 전했다. 공인인증평가는 훈련견이 구조견으로서의 능력을 평가받는 시험으로, 이 시험에 합격해야 실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 

▲ 김 훈련관이 ‘나니‘를 훈련하고 있다.
▲ 김 훈련관이 ‘나니‘를 훈련하고 있다.
▲ 수난 구조견이 요구조자를 수색하고 있다

이처럼 119구조견은 훌륭한 소방자원으로서 각종 인명구조에 이바지한다.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1998년부터 구조견의 출동회수는 약 5천 500건에 달하며, 이들은 생존자 200명, 사망자 220명을 발견했다. 한편 올해 119 중앙본부 구조견 훈련센터에선 총 26구의 119구조견을 육성할 예정이다. 

목조문화재는 내가 지킨다! 흰개미 탐지견
특수목적견의 활약은 목조 문화재 보존에서도 이어진다. 지난해 서울 한복판에서 외래 흰개미가 발견되자 역학조사 현장에 흰개미 탐지견 초롱이가 투입됐다.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목재 문화재의 흰개미 피해가 극심한 가운데 흰개미 탐지견이 피해 예방 및 대응에 기여하는 것이다. 

▲ 초롱이가 흰개미를 탐색하고 있다.

국내에서 단 한 마리뿐인 흰개미 탐지견 초롱이는 잉글리시 스프링거 스패니얼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견종은 스프링처럼 통통 튀는 호기심과 뛰어난 집중력을 갖춰 탐지견에 적합한 종이다. 이들은 뛰어난 후각으로 흰개미가 내뿜는 페로몬과 흰개미 서식처에 발생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감지하도록 훈련받는다. 박병배<한국특수탐지견센터> 대표는 “훈련견이 흰개미의 페로몬 냄새에 반응하면 간식과 칭찬으로 보상해서 그 행동을 강화한다”며 “미세한 페로몬 탐지 훈련은 어렵고 섬세한 작업이라 우리나라엔 흰개미 탐지견이 아직 초롱이 한 마리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잘 훈련된 흰개미 탐지견은 어느 탐지 방법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목조 문화재 지킴이다. 김시헌<국립문화재연구원 복원기술연구실> 학예연구사는 “극초단파 탐지기는 흰개미가 움직일 때만 관찰할 수 있고 시간도 오래 걸린단 한계가 있지만,  흰개미 탐지견은 단시간에 다수의 문화재를 조사할 뿐 아니라 흰개미가 지나간 곳도 확인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박 대표는 “실제 현장에선 탐지견이 반응한 구역을 탐지기로 정밀하게 검사하며 검사 정확도와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 흰개미로 인한 목조문화재 피해 현장이다.

다른 특수목적견과 달리 흰개미 탐지견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근엔 그 필요성과 성과가 대두되면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박 대표는 “흰개미 탐지견은 처음 활동한 2007년부터 현재까지 국립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한 목조문화유산 생물 피해 조사에서 약 1천 500개의 문화재를 조사했다”고 밝혔다. 

▲ 초롱이가 문화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빛나는 길잡이, 시각장애인 안내견
시각장애인의 등불이 되어 안전한 보행을 책임지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대표적인 특수목적견이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이 보행 시 마주할 수 있는 위험 요소를 미리 탐색하고 목적지까지 인도하도록 훈련받는다. 

시각장애인 안내견도 다른 특수목적견과 마찬가지로 어릴 때 선발된다. 생후 2개월 미만의 강아지를 대상으로 적성 검사를 실시한다. 유석종<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훈련사는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시각장애인과 항상 동행하며 길을 안내해야 하기에 낯선 사람과 환경에 잘 적응하는 성격을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한다”며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환경 적응 능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호감가는 외모와 사람 곁에서 걷기에 적당한 크기이기 때문에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많이 선발된다”고 설명했다. 

▲ 퍼피워킹 과정을 밟고 있는 훈련견 1

선발된 훈련견은 생후 2개월령부터 자원봉사자의 가정에서 1년간 퍼피워킹(사회화 훈련)을 거친다. 유 훈련사는 “퍼피워킹 기간 동안 훈련이 잘 이뤄지면 훈련견은 사회적 교류를 즐거움으로 받아들여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서 기초를 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 퍼피워킹 과정을 밟고 있는 훈련견 2

퍼피워킹을 마친 개는 안내견 학교에 입학해 시각장애인 안내에 필요한 교육을 6~8개월간 받는다. 유 훈련사는 “훈련견은 시각장애인을 여러 상황에서 안전하게 안내하는 보행훈련과 더불어 일상에서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화 훈련을 받는다”며 설명했다. 전문 훈련사와 교육을 모두 마친 개는 비로소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된다. 

끝으로 유 훈련사는 “장애인 복지법에 따라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의 눈과 같으므로 공공장소 어디든 함께 출입할 수 있어야 한다”며 “혹시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출입 거부를 목격하는 경우 곁에서 설명을 보태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은퇴한 특수목적견, 사회적 관심 필요해
한편, 이런 특수목적견도 자신이 맡은 소임을 다하면 은퇴할 수 있는 정년제도가 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2살에 특수목적견 활동을 시작해 8~9살에 은퇴한다. 보통은 기관에서 은퇴견을 일반인에게 분양하고 이후 해당 가정에서 남은 생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은퇴견의 입양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박 대표는 “은퇴견은 대체로 나이가 많고 질병이 있는 경우가 많아 입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며 “입양되지 못한 특수목적견은 은퇴 후 기관에서 남은 생을 보낸다”고 밝혔다. 

일부 지자체와 기업에선 자율적으로 은퇴견의 복지를 지원하고 있다. 경상남도와 경기도 고양시는 관련 조례를 만들어 은퇴한 특수목적견 입양자에게 △건강검진 진료비 △예방접종비 △사망 장제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안내견 학교 출신 은퇴견은 병원비와 양육비 지원 대상이 된다. 

그러나 상위 법률 부재로 인해 대다수 지차체는 은퇴견의 복지를 보장하는 조례가 없다. 결국 은퇴견의 입양자에게 부담이 돌아가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일평생 헌신한 특수목적견은 은퇴 후에 좋은 가정을 만나 편안한 여생을 살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며 “은퇴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반영해 바람직한 법적 지원 제도가 생기길 바란다”고 전했다. 특수목적견 입양을 고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단 것이다.

개와 사람이 공생하는 사회에서 특수목적견은 오늘도 인간의 옆자리를 용맹하게 지키고 있다. 이름 그대로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인간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훈련을 받은 개는 은퇴 후에도 그간의 노력에 맞는 합당한 처우를 받아야 할 것이다. 도구가 아닌 한 마리의 특별한 개로서 ‘견생 제 2막’을 살아갈 모든 특수목적견을 응원한다.   


도움: 김상진<중앙119구조본부> 훈련관
김시헌<국립문화재연구원 복원기술연구실> 학예연구사
박병배<한국특수탐지견센터> 대표
유석종<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훈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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