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비상대책위원회, 무너져가는 학생 자치
늘어나는 비상대책위원회, 무너져가는 학생 자치
  • 이승훈 기자
  • 승인 2024.03.04
  • 호수 1578
  • 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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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캠 단과대 절반 이상이 비대위, 학생들 경각심 가져야...

서울캠퍼스 내 학생 자치 기구의 활동에 빨간불이 켜졌다. 총학생회뿐 아니라 단과대의 학생회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인문대와 사회대를 제외한 14개 단과대에서 학생회가 구성됐던 지난해완 달리 올해는 7개의 단과대에만 학생회가 구성됐다. 이런 추세는 학생 자치 균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갖는 한계
각 단위에선 선거가 무산될 경우 학생회가 궐위 상태에 빠진 비상 상황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 상시적 업무를 수행하는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두고 있다. 그러나 비대위 체제엔 △방향성 제시 및 정당성 부족 △업무 중첩 △학생들의 권리 축소 등의 한계가 존재한다.

우선 비대위는 해당 집단에서 대표성을 갖지 못해 새로운 사업을 벌이고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학우들의 투표를 통해 만들어진 단체가 아니기에 사업 진행과 방향성 제시에 한계가 있는 것이다. 전 사회대 비대위원장 하준혁<사회대 관광학부 19> 씨는 “단과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지난해 사회대의 경우 기수제로 세 명의 학과 회장들이 돌아가며 비대위원장을 겸임했다”며 “정책의 연속성 문제나 정당성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또 단과대 비대위원장은 이미 각 학과의 대표들 중에서 호선되므로 업무 중첩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학과 행사 및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기존 업무에 새로운 단과대 업무를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사범대 비대위원장 박승영<사범대 교육공학과 23> 씨는 “학과 학생회장 중 누군가는 원치 않아도 비대위원장직을 맡아야 한다”며 “단과대 학생회 운영에 대한 계획이 없는 상태에서 학과 정학생회장과 단과대 비대위원장 사이 균형을 잡고 모든 업무를 수행하기란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추가로 비대위는 학생회를 대신해 최소한의 업무만을 수행하기에 학우들이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복지 및 혜택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 전 인문대 비대위원장 강하영<인문대 사학과 22> 씨는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뿐 아니라 비대위는 집행부 구성원의 수와 연속성 문제로 업무 수행과 질적인 측면에서 학생회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비대위는 연간 사업 준비량도 적고 그때그때 필요한 최소한의 행사를 진행해 기존 학생회가 하는 것보다 학생들이 받는 복지가 줄어들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부 학생들은 학생회의 공백을 체감하고 있었다. 학생 A 씨는 “학생회가 존재할 땐 단과대 주관하에 모든 학과가 참여하는 체육행사나 단합행사들이 이뤄졌었는데 비대위 체제에선 전혀 진행되지 않는다”며 “권리 축소는 물론이고 결속력 약화도 경험했다”고 말했다. 

비상대책위원회 지속의 이유
이렇듯 명확한 한계점을 보유한 비대위 체제가 지속되는 이유는 학생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학생회란 조직이 갖는 구조상의 문제점에 기인한다. 우선 약해진 공동체 의식과 개인주의적 성향은 학생 자치를 향한 무관심을 초래했다. 경금대 비대위원장 조병민<경금대 경제금융학부 22> 씨는 “힘든 일은 기피하고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 성향의 개인들이 많아졌다”며 “이에 따른 정치적 무관심은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성적이나 취업 등에 밀려 학생 사회에 관심이 낮아진 것 또한 정치적 무관심을 가중한다. 강 씨는 “취업과 직결되는 성적이나 대외활동 등에 몰두하다 보니 학생 자치나 학생회 자체에 무관심해진 것 같다”며 “기업에서 요구하는 적정수준의 학점, 직무만족도 등을 총족시키면서 단과대 회장직을 겸임하기엔 어려워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 얘기했다. 

비대위 체제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또 다른 이유는 학생회라는 조직이 갖는 구조상의 문제이다. 그간 학생회의 생명은 학생회장 개인의 노력에 기대어 왔다. 하 씨는 “학생회의 지속은 곧 공동체를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개인이 있기에 가능하다”며 “이는 곧 현재의 구조가 학생회장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학생회장 개인에게 과도한 업무와 책임이 가중되는 구조 자체가 입후보조차 망설이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한단 것이다. 조 씨는 “개인적으로 정학생회장을 하지 않으려는 것도 이해가 된다”며 “이전에 비해 대학문화가 주는 영향력이 작아져 학교 안에서 감투를 쓰지 않고 대학 외부 활동들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이제는 학생사회와 조직에 대한 헌신만으론 학생회가 운영되기 어렵다고 느낀다”며 많은 학생들이 학생회장으로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이유를 전했다. 

학생자치의 온전한 정립을 위해선
학내 구성원들은 무너져 가는 학생자치의 온전한 정립을 위해선 학교와 학생 사회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학우들이 학생회의 역할에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 역시 필요할 것이다. 비대위원장 C씨는 “학내 구성원 하나하나가 정치적 책임감을 갖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며 “정치적 무관심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학생회가 그 자취를 감추고 학생자치가 무너질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비대위원장들은 현 행정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비대위 체제가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대위원장 선출 방식이나 여건 등은 제자리걸음이기 때문이다. 조씨는 “대부분의 단과대에서 비대위원장 선출이 투표로 강제되는 경향이 있다”며 “원하지 않더라도 자리를 맡았을 경우 수반되는 문제점들과 한계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부 비대위원장들은 선거 과정의 부실한 운영 역시 해결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씨는 “선거 관리 부실이 선거 무산을 이끌어 비대위 체제가 종종 등장한다”며 “선거 집행차원에서 선거관리위원회 간 원활한 소통과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학생들의 대표가 없다는 것은 곧 누구도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을 수 있단 뜻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 비로소 학생들의 목소리가 학교에 닿게 될 것이다. 우리학교의 학생사회가 다시 일어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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