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넘은 음주 예능, 이대로 괜찮을까?
도 넘은 음주 예능, 이대로 괜찮을까?
  • 이정윤 기자
  • 승인 2024.01.01
  • 호수 1577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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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소정<경기도 부천시 21> 씨는 최근 음주 예능에 빠져있다. 특히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배우가 나오는 음주 예능은 더욱 흥미롭게 소비한다. 최근 음주 예능이 큰 인기를 얻으며 인기 아이돌이 나온 음주 예능은 올해 한국 최고 인기 유튜브 영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렇듯 음주 예능은 많은 이들의 관심 아래 하나의 콘텐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새로운 예능 트렌드, 음주 예능
음주 예능은 술과 함께 편안한 분위기에서 더 깊고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OTT 플랫폼에선 음주 장면을 규제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OTT에서 음주 예능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음주 예능은 현재 많은 시청자의 관심을 받으며 방송 콘텐츠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평소 음주 예능을 즐겨보는 허 씨는 “음주 예능의 컨셉도 각기 다르고, 진행자의 분위기도 모두 달라서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고 전했다.

스타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다
음주 예능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스타의 이색적인 모습 때문이다. 음주 예능을 통해 연예인이 취하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단 점이 팬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정형적인 모습만 보여주던 연예인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적다”며 “술을 통해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호감도를 상승시켜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는다”고 설명했다.
음주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인기에 영향을 줬다. 과거 TV 프로그램에선 아이돌이 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금기시됐다. 그러나 음주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점차 화하며 상황은 바뀌었다. 김영재<국문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전통적 미디어에선 금기시됐던 음주, 흡연 장면이 점차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비교적 자유로운 표현이 가능한 유튜브, OTT를 중심으로 이런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자칫하면 음주에 대한 시각 왜곡할 수도
한편 음주 예능이 음주를 과도하게 미화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음주 예능엔 ‘힘든 하루 끝에 한 잔’, ‘기분 좋은 한 잔’과 같이 음주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이 많다. 이복근<청소년건강진흥재단> 이사장은 “음주에 대한 긍정적 묘사가 은연중에 음주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며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음주에 대한 경각심이 약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음주 장면에 자주 노출될수록 음주를 긍정적으로 생각해 음주의 빈도가 늘어난다는 것이다.
음주 예능은 어린 연령층이 음주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도록 자극한단 점에서 더 문제가 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음주 장면에 노출될수록 긍정적 음주 기대와 음주 동기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소년층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출연하는 음주 예능은 청소년의 모방심리를 자극하기 쉽다. 이 이사장은 “청소년층은 동경하는 인기 아이돌이 미디어 속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에 영향을 받아 자연히 음주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높아져 이를 따라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게다가 이러한 음주 예능은 특별한 연령 인증이 없어 10대 이하의 어린 연령층도 클릭만 하면 바로 시청할 수 있기에 접근성이 매우 높다.

자유와 규제 사이 합의점 찾아야
최근 들어 음주 예능에 대한 논란이 심화되자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선 ‘절주문화 확산을 위한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에 2가지 내용을 추가했다. 추가된 내용은 첫째, 음주 행위를 과도하게 부각하거나 미화하는 콘텐츠는 연령 제한 등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의 접근성을 최소화해야 한다. 둘째, 경고 문구 등으로 음주의 유해성을 알려야 한다이다. 구학모<한국건강증진개발원 건강증진사업센터 음주폐해예방팀> 팀장은 “미디어 플랫폼 내에서 지나친 음주 장면, 선정성이 포함된 음주 콘텐츠가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다”며 “유튜브 음주 콘텐츠 중 90%가 유해한 음주 장면을 포함하고 있지만, 음주 유해성을 고지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고 가이드라인의 목적을 설명했다.
그러나 강제가 아닌 권고사항 수준의 가이드라인이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TV의 경우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에 의거, 음주를 미화조장하거나 잘못된 음주 문화를 일반적인 상황으로 인식하게 하는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법적제재를 받을 수 있다. 반면, 유튜브와 OTT를 제재하는 「정보통신망법」엔 음주 장면을 규제하는 조항이 부재하다. 결국 콘텐츠 제작자에게 가이드 라인을 지킬 것을 권고하는 것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 이사장은 “미디어 속 음주 장면이 그릇된 음주 문화를 형성할 수 있기에, 유튜브나 OTT 스트리밍 서비스를 포함한 모든 미디어 매체에서 음주 장면에 대해 강한 규제를 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각에선 음주 장면의 제재가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 문화평론가는 “무분별하게 콘텐츠를 규제할 순 없다”며 “창작의 자유와 음주 방송에 대한 우려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은 모범 사례를 만들어 그 변화를 이어가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음주 예능이 음주를 미화한단 비판을 받고 있다. 더 나은 음주 콘텐츠와 올바른 음주문화 정착을 위해 제작자와 관련 기관 모두의 노력이 동반돼야 할 시점이다.


도움: 구학모<한국건강증진개발원 건강증진사업센터 음주폐해예방팀> 팀장
김헌식 문화평론가
이복근<청소년건강진흥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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