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리셋해드립니다”… ‘회빙환’ 코드 열풍
“인생 리셋해드립니다”… ‘회빙환’ 코드 열풍
  • 강은영 기자
  • 승인 2024.01.01
  • 호수 1577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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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몰락 귀족’, ‘눈떠보니 과학고 천재’ 등 이목을 끄는 문구의 정체는 바로 인기 웹소설의 제목이다. 웹소설 플랫폼에선 이런 비슷한 느낌의 제목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주인공이 회귀해 원수를 갚거나, 평범한 주인공이 웹소설 속 여주인공에 빙의해 잘생긴 남자 주인공과 맺어진다. 또, 아예 다른 인물로 환생해 모든 일을 척척 해결하기도 한다. 이러한 △회귀 △빙의 △환생은 웹소설 내에서 자주 사용되는 코드로, 일명 ‘회빙환’이라 불린다. 

해당 코드는 웹소설 산업을 중심으로 시작돼 △웹툰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흥행 수표로 떠오르고 있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웹소설 「성스러운 아이돌」 △웹툰 「이번 생도 잘 부탁해」 등 많은 작품이 회빙환 코드를 사용해 큰 인기를 얻었다.

회빙환은 독자에게도 만족도가 높은 서사적 장치다. 이융희 문화연구자는 “최근 독자들은 답답하거나 불확실한 내용 전개보단 확실하게 즐길 수 있는 ‘사이다’ 서사를 선호한다”며 “회빙환은 이런 독자의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송니움 작가는 “주인공이 회귀 전 겪었던 일을 이미 알고 있음으로써 기존과 다른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스토리에 독자들도 색다른 재미와 긴장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평소 회빙환 작품을 즐겨 본다는 박지은 씨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주인공이 거침없이 복수하고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 대리 만족된다”며 “회빙환은 사이다 전개를 만들면서 빠른 이해를 돕는 매력적인 장치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런 회빙환 코드는 서사를 집약적으로 보여줘 창작자가 애용하는 장치다. 네이버웹툰 「버려진 나의 최애를 위하여」의 류호 작가는 “유튜브 쇼츠나 틱톡 같은 숏폼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짧고 빠른 호흡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경우가 많은데, 회빙환의 빠른 전개 방식이 독자의 몰입감을 끌어올린다”고 설명했다. 젊은 소비층은 짧고 빠른 전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회빙환 이를 충족한다. 창작자가 정통 방식으로 기승전결을 충족하려면 서사와 인물의 갈등 구조 등을 설명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할 수밖에 없으나, 회빙환은 이를 압축적으로 나타낸단 것이다. 

콘텐츠 플랫폼 업계도 회빙환 코드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류 작가는 “회빙환으로 인해 빨라진 내용 전개는 결국 높은 결제율로 이어지기 때문에 웹소설 플랫폼 회사에서도 해당 코드를 사용한 작품을 찾는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이 문화연구자는 “회빙환은 웹소설 마니아층에게 오랫동안 소비되면서 흥행성이 어느 정도 검증됐으며, 이러한 콘텐츠가 생소한 사람들이 많아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했을 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며 “최근 콘텐츠 시장은 투자금이 메마른 상황이라 안정적이고 보수적인 투자 전략으로서 회빙환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회빙환 코드를 남발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박 씨는 “요즘 창작물들은 똑같은 스토리에 주인공만 바뀌는 느낌이다”라며 아쉬움을 보였다. 회빙환이라는 한정된 설정 안에서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다 보니 소비층도 진부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 문화 연구자는 “최근엔 빙의와 회귀를 적절히 섞어 기존 회빙환 코드에 변주를 주거나, 평행우주처럼 색다른 세계관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기법으로 작품의 특색을 살리고 있다”고 답했다.

류 작가는 “회빙환이라는 클리셰를 여러 번 뒤집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소하려 하지만 최근 이처럼 클리셰를 비트는 스토리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진부함을 온전히 해소할 방안은 작가로서 계속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회빙환을 소재로 한 양산형 작품이 넘쳐나고 있는 콘텐츠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작품에 끊임없는 변주가 필요하단 것이다. 


도움: 류호 작가
송니움 작가
이융희 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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