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대 증원, ‘빠르게’가 아니라 ‘바르게’
[사설] 의대 증원, ‘빠르게’가 아니라 ‘바르게’
  • 한대신문
  • 승인 2024.01.01
  • 호수 1577
  •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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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뇌출혈 사망 사건과 지난해 대구 응급실 뺑뺑이 사건 이후 필수의료 공백 해결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점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월 ‘지역 완결적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발표했다. 특히 필수의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 18년간 연 3천58명으로 동결됐던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겠단 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신중한 고려 없이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한다면 오히려 공공의료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우리나라 의료계는 증원될 의대생을 제대로 가르칠 교육 여건이 되지 못한다. 의대생은 본과 1~2학년 때 전문적인 임상의학의 기반이 되는 기초의학을 배운다. 그런데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의과대학교육 현황 파악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21년 평가에서 전국 40개 의과대학 중 4곳은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이 제시하는 최소한의 기초의학 교수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질의 기초 교육을 못 받는 의대생도 있는 현재 상황조차 해결하지 않고 정원 확대가 감행되면 교육의 질은 더욱 부실해질 것이 자명하다. 국민은 안심하고 생명을 맡길 수 있는 의사를 원하는 것이지 면허만 가진 의사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지역의료 인프라가 부족해 의사들이 수도권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현재 대부분의 지방의대가 지방에 대학병원을 두지 않고 수도권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어 전공의가 수련할 병원이 부족하다. 실제로 울산건강연대 양동석 정책위원에 따르면 사립대 33.3%가 인프라 부족으로 미인가 학습장에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결국 지역에 자대병원이 없는 지방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은 수도권으로 향하는 것이다. 의사의 수가 늘어나도 전공의가 수련할 수 있는 지역병원을 마련하지 않으면 결국엔 수도권 쏠림 현상은 막지 못할 것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이 효과를 보기 위해선 지역 필수의료 인프라 보강과 수도권·비수도권의 전공의 비율을 맞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피과 의사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비수도권 지역뿐만 아니라 수도권 병원까지도 △가정의학과 △산부인과 △소아과 △신경외과 등 필수의료과는 기피과로 낙인찍혀 전공의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필수의료를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의사들은 과로에 시달리고 있다. 수도권에서도 필수의료 전공의가 충원되지 않는 상황에 환경이 열악한 지방병원에 갈 의사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의사 수를 늘려도 필수의료로 이끌지 못한다면 정책의 목적을 달성할 순 없다. 정부는 전공의들이 필수의료에 지원하도록 근로 여건과 근무환경 등 전반적인 처우 개선과 경제적 보상 등의 유인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의대 정원 확대는 필수의료가 강화되길 바라는 국민들의 목소리다. 그렇지만 세심하게 검토하지 않은 의대 증원은 오히려 의료 붕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정부는 방안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문제에 대해 세심하게 논의해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해결책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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