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다면
치료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다면
  • 박정민 기자
  • 승인 2024.01.01
  • 호수 1577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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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겐 코로나19 방역기획관으로 기억되는 기모란<의학과 85> 동문은 예방의학 전문가다. 그는 본교에서 의학 학사학위와 예방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기 동문은 예방의학과 교수 활동과 함께 보건복지부 감염병관리위원회 의원, 대한예방의학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메르스 대책위원장에 이어 코로나19 대책 위원장까지, 보건의학 현장에서 숨가쁘게 달려온 기 동문의 여정을 들어보자.


예상대로 되는 것 하나 없던 청춘

기 동문은 그의 유년 시절을 당돌한 아이로 회상했다. “초등학교 땐 남자아이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당찬 성격이었죠.” 중, 고교를 모두 제1회 입학생으로 진학한 그는 다소 어수선한 학습 환경에서도 활발한 학창 생활과 함께 회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매사에 열정적이었던 그에게 의사란 꿈이 일찍부터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외교관이 되고 싶었어요. 문과 계열에 흥미가 많았죠.”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권유로 이과 계열에 진학하고, 부모님의 설득에 의해 가까스로 의대 진학을 결정하게 됐다.

그의 대학 생활은 순탄치 못했다. “학교의 파격적인 장학금 제도에 너무 많은 학생이 몰렸고, 장학 수혜자를 줄이려 학점 디플레이션이 일어났어요.” 재수강과 제적의 위협 속에서도 꿋꿋이 좋은 성적을 유지했지만, 어려움은 끝이 아니었다. “1987년엔 우리 학교가 학생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탓에, 실습하러 등교하려면 최루탄으로 가득한 교정을 뚫어야 했어요.” 결국 한동안 학교가 문을 닫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한 번에 치른 초유의 사태를 인상적으로 기억한단 그는, “공부와 시험에 집중하느라 다른 진로를 생각해 볼 겨를조차 없었죠.”라 전했다. 그러나 험난한 대학 생활 속에서도 그는 지치지 않았다. 기 동문은 “대학생들의 열정을 누가 막겠어요.”라며 △독서 동아리 가입 △여성학 동아리 결성 △의료 봉사 활동 참여 경험을 회상하기도 했다.

의대 졸업 후, 정신의학과를 지망했던 기 동문은 당연하게 생각했던 레지던트에 탈락했다. 당시 여성 전문의가 없던 정신의학과의 특성 때문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비어버린 1년을 채우려 무작정 낯선 곳으로 향해야겠다고 결심했죠.” 경북 영양의 한 병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그는 즉시 그곳으로 향해 외래 진료와 응급실 진료를 맡았다. “생각지도 않은 외딴 지역에서의 생활이 저를 예방의학의 길로 안내했어요.” 당시 근무하던 병원이 보건소와 매우 가까웠던 점과 지역 사회 의료에 대한 경험으로 공중 보건에 관심이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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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 동문이 고양의료발전포럼에 참석한 모습이다.


예방의학 전문의, 조금은 특별한 의사

그는 예방의학 전공이 다른 의학 전공과는 다른 점이 많다고 소개했다. “예방의학 전문의는 병원이 아니라 주로 대학교에 있어요. 환자의 치료보다 질병의 예방을 목적인 기초의학에서 유일하게 전문의 과정이 있는 독특한 분야죠.” 그는 영양 병원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양대학교 예방의학 교실의 레지던트와 서울대학교 보건학 석사 과정을 병행했던 시기를 가장 바빴던 시간이라 기억했다.

박사과정까지 마친 그는 을지대학교의 제1회 교수자로 예방의학 교실 교수 활동을 시작했다. “교수로서의 업무뿐만 아니라, 교과목 개설부터 학교의 전반적인 체계 제정에도 참여해야 했어요. 마치 회장을 맡았던 학창 시절처럼요.” 이후 이직한 국립암센터대학원대학교에서도 제1회 교수자로 초빙됐다. 예방의학 교실에서 국립암센터대학원대학교로의 이직에 있어 두 직장의 관련성에 관해 묻자, 기 동문은 “감염에 의해 생기는 암이 있다는 걸 아시나요?”라 반문했다. “감염 질환 중에서 만성 감염 질환, 즉 한 번 걸렸다가 없어지지 않고 계속 가는 감염 질환 때문에 생기는 암이 있답니다.” 감염의 예방과 치료가 곧 암의 예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을지대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암관리학과에서도 감염과 관련이 높은 암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 기 동문이 대학예방의학회의 학술대회에서 발언 중이다.
                                      ▲ 기 동문이 대학예방의학회의 학술대회에서 발언 중이다.


예방의학이 빛을 보는 순간

기 동문은 예방의학 전공자들의 모임인 대한예방의학회의 위원장을 지냈다. “대한예방의학회는 감염병이 발생하면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에 외부 전문가로서 참여를 요청받곤 해요.” 이에 그는 메르스 사태와 코로나19 팬데믹 대응 대책위원회에 참여했다. 10년이 지난 메르스 사태를 생생히 기억한단 기 동문은 메르스 사태가 한국 의료계를 크게 성숙시켰고, 코로나19의 방지턱이 되어줬다고 말했다.

기 동문은 “메르스바이러스에 노출됐던 이들 중 마스크를 정상적으로 착용했던 병원 의료진들은 한 명도 감염되지 않은 것을 봤어요.”라며 마스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고 코로나19 대응에서도 마스크 쓰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고 말했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이 종교 집회 등의 사건과 함께 지역사회 확산으로 이어지자, 기 동문은 무심코 사회적 거리 두기를 떠올렸다. “예방 의학계에선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개념이에요. 그런데 비전공자들에겐 생소했던 거예요.” 그는 집단 감염 발생 다음 날 코로나 대책 심포지엄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유행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 결과와 함께 폭발적 확산 및 사회 마비를 완충할 방안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제안했다.

코로나19 초기 대응을 성공적으로 이끈 그는 2021 대통령실 방역기획관으로 임명됐다. 기 동문은 경제 정책부터 외교 정책까지 대부분의 국가 계획이 감염병 문제와 연결된 상황에서, 전 세계 코로나 상황에 대한 자문과 정책 결정에 참여한 경험으로 많이 배웠다고 회상했다. 한편 가장 어려웠던 것은 정부에 소속된 직위란 점이었다. 복지부와 질병관리청 등 다양한 부처의 입장은 일원화돼야 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예방의학 전문가 입장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어요. 대통령실에 소속된 이후로 언론과 직접 접촉이 끊겼죠.” 그는 오보와 대중의 오해에 대해 직접 설명할 수 없어 안타까운 적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팬데믹이 잦아들고 일상을 되찾은 현시점, 기 동문은 “지금까지 해오던 감염 관리 분야에서 연구를 계속 이어갈 계획이에요.”라 밝혔다. ODA 사업에 참여해 온 그는 최근 우간다에서 감염에 의한 암 관리 사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질병 관리 관련된 정책과 시스템을 만드는 데 계속 참여해서 더 건강한 지구촌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학생들에게는, “지금 인기 있는 분야만 바라보기보단, 관심 분야를 찾아 지속하면 언젠가 빛을 보는 날이 온답니다.”라 전했다. 그는 예전엔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할 정보가 없었다며 “다른 길을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던 대신, 남들에게 좌우되지 않을 수 있었어요.”라 말했다. “지금은 정보가 너무 많아 흔들리기 쉽죠. 본인이 좋아하는 게 있다면 확고하게 자기 길을 가야 한단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학창 시절부터의 모든 여정이 어딘가의 ‘첫’ 주자였던 기 동문. 때때로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택한 그의 선택이 기 동문을 개척의 길로 이끌었다. 험난했던 순간조차 담담하게 회상하는 그의 용감한 발걸음이 이끌 예방의학의 발전을 기대한다.
 


사진 제공: 기모란 예방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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