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끝없는 콤마, 그리고 마지막 마침표.
[장산곶매] 끝없는 콤마, 그리고 마지막 마침표.
  • 박선윤 기자
  • 승인 2023.12.04
  • 호수 1576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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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선윤 <편집국장>


밤 11시. 아무도 없는 한대신문 임시사무실에서 이번 호에 발간될 신문에 실릴 문예상 작품들과 심사평을 정리하다 ‘아 나 내일모레 마지막이지’란 생각이 문득 들어 마지막 장산곶매를 끄적여 본다. 잠시만, 왜 임시사무실이냐고 물어볼 다른 미래의 기자들, 선배들, 우리의 독자들을 위해 설명해 주자면, 40년 만에 우린 새로운 신문사를 얻게 됐다. 오랜 기간 학교와 씨름하다가 드디어 필자의 임기 동안 공간을 설계하고, 기자들의 손으로 낑낑 대며 묵은 짐들을 다 빼내 잠시 임시사무실로 이사 왔다. 오랫동안 신문사를 들어올 때마다 자리를 지키던 ‘초대 설립자가 작성했다는’ 그 신문사 현판도 떼어냈다. 사설방에 있던 큰 현판을 뒤집으니 ‘사전검열 철폐! 편집자율권 쟁취!’란 글귀를 적어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선배 기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단 것은 우리만의 비밀로 남겨두자. 오래된 신문사란 것을 다시금 느낀다. 3달 후면 마주할 우리의 새로운 공간이 너무 궁금하고 다음 학기 필자는 ‘구경’와야겠다.

마지막 신문의 글을 이렇게 이사 이야기로 낭비하는 것은 사실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서다. 시원하고 후련하게 떠나려는 필자를 신문사의 모든 기억들이 발목을 잡는다. 신문사에 발을 들이는 순간, 처음 도움으로 인터뷰하며 무서웠던 기억, 취재원에게 받았던 기념품을 엄마에게 자랑하던 순간, 기숙사 쥐 사진을 받고 신문에 실을 수 있어 신나하던 것, 마감날 새벽 3시에 날아갔던 필자의 어설픈 첫 기획, ERICA캠퍼스 공청회에서 질문하며 카메라에 잘 나오려 눈을 부릅뜨던 것, 버스를 기다리며 노트북을 들고 쭈그려 앉아 방중 기획안을 수정하던 순간, 기숙사 공사장에서 취재원과 기싸움하던 것, 버스정류장에 앉아 문제의 순간을 포착하려고 덜덜 떨고 있을 때 필자를 녹여준 따듯한 정류장 의자, 첫 장산곶매를 쓰자고 노트북을 켜두고 3시간 동안 멍때렸던 것, 기자들과 노닥거리며 끝나기를 기다렸던 조판, 창고 방에서 짐을 빼고 먼지 속에서 콜록거리던 것,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모든 기억들이 얽힐 대로 얽혀 필자를 복잡하게 만든다.

오랜 역사를 가진 신문사에 잠깐의 힘을 보탤 수 있어서 좋았다. 필자를 품어주고 키워준 신문사에서, 국장이 되어 한대신문을 잠깐이라도 돌볼 수 있어 좋았다. 최선을 다했지만, 좋은 돌보미였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국장 자리에서 체감했던 한대신문의 위기, 기자들의 고생, 쌓여가는 신문들과 같은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 보고자 발버둥치고 노력했지만 결국 해답은 내놓지 못하고 떠난다. 줄어드는 독자들과 학교의 예산 축소로 인해 굴러가는 내리막길에서 잠깐의 브레이크를 잡으며 비상을 기대했지만 오르막길을 오를 수 있는 새로운 모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왜 이렇게까지 신문사에 진심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분명 1학년을 마친 겨울방학에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있던 필자에게 소일거리가 되겠거니 하고 들어왔던 신문사인데, 다른 사람들의 기사가 어떻든 필자의 기사만 좋으면 그만이었는데, 편집국장으로 있었던 한 학기가 너무 애틋하게 만들어버렸다. 필자를 품어주었던 이 공간이, 신문사 사람들이 더욱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내일, 1달, 1년, 10년 뒤 꺼내볼 이 시간들이 아름답고 아픈 추억으로 남겨질 것이고, 너무 소중했다. 40년이 넘어도 신문사의 기억을 그리워 하는 동인 선배님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 것도 같다. 절대 못 잊을 기억들이다. 그동안 이 공간을 지키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선배들과 2023년 2학기 기자단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신문사에서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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