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가작] 기다림의 끝
[2023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가작] 기다림의 끝
  • 오태영<공대 융합전자공학부 18> 씨
  • 승인 2023.12.04
  • 호수 1576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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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에 들어서자 더운 햇살이 가신 자리가 시원했다. 대천항과 원산도를 잇는 해저터널이었다. 시야의 가운데에서 시작한 천장 조명의 행렬이 차의 속도에 맞춰서 밖으로 사라졌다. 터널에 들어선 지 어느 정도 지나자, 도로가 고저 없이 평탄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풍경이 낯설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차가 없어서 터널 안은 조용했다. 규정 속도를 약간 넘기도록 엑셀을 밟았다. 통과하는 데 십 분이 넘게 걸리지 않을 테지만, 가끔은 어딘가 이동하는 짧은 순간도 참기 힘들 때가 있었다.

출발한 이래로 쉴 틈 없이 불평을 쏟던 엄마는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완공된 해저터널에 꼭 가야 한다고 말할 때와 달리, 집을 나서자 엄마는 나의 운전 습관부터 터널을 시공한 정권까지 비난해 댔다. 엄마의 입을 통해서 나는 보통의 남자들이 다 그렇듯 위험천만하고 무지한 운전자가 되었고, 정권은 환경을 해쳐서 시골 풍경을 망친 주범이 되었다. 언제부터 잠에 들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단 사실을 문득 깨닫고 간단히 주물렀다. 엄마의 감긴 눈에 마치 죽음의 무게가 얹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저 사람의 검지손가락을 잡는데 내 다섯 손가락이 전부 필요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엄마는 자기가 곧 죽을 것임을 알고 있을까. 그런 것도 같았다.

떠올려 봐. 가장 처음의 기억이 뭐야?’

환이 속삭인 말이 다시금 귓가를 간질이는 것만 같았다. 상황에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픈 엄마를 데리고 서해의 지하를 운전하는 것만큼이나. 환은 내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다. 환은 두 살 때의 기억도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나의 첫 기억은 네 살 때였다. 내가 네 살이었음이 기억나는 것이 아니라, 훗날 시기를 따져 보고 추정했다. 그때 난 잡동사니로 가득한 방을 건너기 위해 무척 집중하고 있었다. 오늘의 저녁이 인스턴트 스프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서 먹으러 오라고 재촉하는 누나의 말에 서두르다가, 플라스틱 자를 밟고 부러뜨렸다. 발바닥이 화끈했다. 누나가 다급히 다가와 부러진 자를 숨겼다. 그런 다음 내 가슴을 세게 내려쳤다. 숨을 쉬기 어려웠던 것은 기억해 낸 것이 아니라 그저 추측이었다. 누군가 가슴을 때렸으니 그럴 것이다, 하는.

다음 기억은 다섯 살 때였다. 엄마의 품에 안겨 있었다. 넓은 주름치마의 감촉이 좋았고, 익숙한 세제와 샴푸 향기가 났다. 숨을 깊게 들이쉬어서 오랜만에 맡은 그 향기를 담았다. 엄마는 빠뜨리는 것 없이 짐을 챙겨서 차에 타라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고, 누나는 가방에 이것저것 담았다. 이 방에 남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궁금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가 우리를 데려간 집은 걷기가 편했다. 천안 외곽 동면의 세대가 많은 시골 아파트였지만 조용했다. 아침부터 햇빛이 들었고, 창문을 열면 숲에서 맑은 공기가 흘러 들어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불당동의 더 좁은 집으로 이사할 때까지 살았다. 엄마의 집에서 우리는 정해진 시각에 잠들고 일어났다. 인스턴트 스프 대신 집에서 끓인 된장찌개를 먹었다. 엄마가 늦게 돌아오는 날이면 냉장고의 반찬을 꺼내고 냉동고의 밥을 데워서 비빔밥을 해 먹었다. 엄마의 집에서 살게 된 이후로 누나는 나를 때리지 않았다.

여섯 살 때 나는 누나와 같이 학교에 갔다. 초등학교 부설 유치원에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누나는 초등학교 사 학년에 다닐 나이였다. 아파트와 학교는 걸어서 삼십 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유치원 교사는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들을 돌봤다. 밥을 먹으면 화장실에 가서 양치를 하고 볼일을 보고 손을 씻고 나왔다. 손을 씻고 볼일을 보면 교사가 나긋나긋한 말투로 손을 씻는 이유를 다시 설명했다. 유치원이 끝나고 나면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과 놀았다. 그러다가 하나둘 집으로 가다 보면 항상 나 혼자 남았다. 나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아래 그네에 앉아 초등학교 건물의 창문들을 보면서 누나를 기다렸다. 초등학교 건물은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으므로 저 창문 중 어디에 누나가 있는지 몰랐다. 종이 울릴 때마다 횟수를 세어 두었다가, 마지막 종이 울리면 문을 바라봤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서 나오는 아이들 사이 누나가 혼자 나오는 것이 보이면 그네에서 내려왔다. 누나는 내 손을 잡고 은행나무가 빼곡한 길을 따라 걷고 하천을 건너서 아파트로 갔다.

아파트에 도착해서 바로 집으로 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보통 아파트 뒤편의 공터로 가서 시간을 보냈다. 공터라고 하기엔 나무가 많았지만, 숲이라고 하기엔 나무의 밀도가 너무 낮았다. 척박한 모랫바닥을 밟으며 누나는 나를 이리저리 데려갔다. 가끔 열매가 달린 나무가 있으면 먼지를 털어서 내 입에 넣어줬다. 꽃을 뽑아서 주면 꿀을 빨아 먹기도 했다. 밖에서 따 먹는 것들은 끝맛이 썼다. 단맛은 희미했다. 앉아서 쉬는 바위도 있었다. 햇빛이 들어서 이끼가 없는 것이었다. 충분히 쉬면 다시 숲을 돌았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집에 돌아오면 다섯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당시 나는 누나가 이끄는 대로만 돌아다녔다. 다른 아이들은 아파트의 놀이터에 모여서 놀거나 집에 일찍 들어갔다. 혹은 부모가 있는 친구의 집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누나는 다른 무리와 어울리지 않았다. 부지런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돌아다녔다. 산책과는 거리가 있는 행위였는데,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니다가 쉴 때조차도 내가 힘들어하기에 쉬는 것에 가까웠다. 누나는 매일 오는 숲 혹은 공터를 돌아다니는데도 긴장했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누나를 기다리는 것이 내 일이었듯이, 누나도 누나의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닐지. 지금의 나조차도 당시의 누나를 헤아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너도 언젠가 이렇게 될 거야.’

누나의 상냥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는 철제 침대에 누워 있었고, 나를 보고 말하고 있지 않았다.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것을 제외하고도, 유치원 교사의 목소리와는 분위기가 분명 달랐다. 누나의 것은 친절하지 않았다. 절대적인 언어의 단호함과 무심함을 숨기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너도 알겠지.’

 

 

터널을 나오자, 햇살이 다시금 도로를 때렸다. 숲이나 도로, 간판 등에 반사되는 빛이 날카로웠다. 엄마도 잠에서 깼는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앞을 보고 있었다. 아스팔트 색이 검고 차선이 뚜렷한 것으로 봐선, 터널을 지으면서 도로도 새로 포장했을 터였다. 섬도 터널과 마찬가지로 차가 별로 없었다. 공사 예정지로 보이는 빈터가 곳곳에 있었다. 머지않아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장 또한 한산했다.

엄마는 일어난 후로 별 말이 없었다. 환이 챙겨준 짐을 꺼내려다가 엄마를 보니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는 춥다고 차 문을 도로 닫아 달라고 했다. 날이 따뜻한 데에 비해 과하게 추위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간헐적으로 몸살 기운이 심해지는 증상이 한 달쯤 전부터 반복되고 있었다.

가방에서 체온계를 꺼내 재어 보자 정상이었다. 이마에 손을 대 보니 땀이 흘러서 오히려 서늘했다. 내 손이 닿는 감촉이 싫었는지 엄마가 역정을 냈다. 도리어 운전이 험해서 멀미가 난 것이라고 나를 탓하며 매섭게 노려봤다. 그러다가 나를 상대하는 것조차 피곤하다는 듯 눈을 감고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댔다.

엄마는 이제껏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화를 낸 적이 별로 없었다. 화를 내는 것은 감정에 관한 일이다. 감정은 엄마와 큰 상관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어릴 땐 주걱으로 엉덩이나 손바닥을 맞았고, 맞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대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잘못했다고 뉘우칠 필요 없이 내가 한 행동을 설명하면 그만이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감정 기복이 심해진 것은 최근의 일이었다. 내가 당장 직장을 관두고 천안으로 내려와야 한다거나, 오늘 터널에 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뜬금없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몸살 기운이 자주 일어나는 것을 포함한 모든 일들이 전부 최근 한두 달 사이 변한 것들이었다. 이 때문에 지난주부터는 서울에서 내려와 천안 집에서 함께 지냈다. 내가 대학에 가기 전까지 엄마와 둘이 살았던 집이었다. 몸살 기운은 분명히 있었지만, 열이 없어서 약조차 처방받을 수 없었다. 정신과나 심리 상담은 엄마가 한사코 거부했다. 정신과는 병이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것이라며, 신용할 수 없다고 했다. 진단서가 없기 때문에 나는 연가를 전부 써서 휴가를 낼 수밖에 없었다. 나처럼 어린 사원이 장기 휴가를 쓰는 일은 드물었다. 심지어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지도 않았지만, 다행히 다들 이해해 줬다. 그럼 다 괜찮은 걸까. 세상에 한 사람이 사라지는 것이 줄 수 있는 영향은 얼마나 될지 궁금했다.

차를 반쯤 그늘에 주차했는데도 내부가 금세 후덥지근해졌다. 엄마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시동을 다시 켜고 에어컨을 약하게 틀었다.

조금 쉬다가 출발할까?”

엄마한테 물었으나 대답은 없었다. 출발하기 전 여기에 와야 한다고 나를 재촉할 때와는 달리 이곳이 어딘지, 혹은 주위는 어떤지 관심조차 없어 보였다. 조금 누워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역시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자세가 불편해 보여서 조수석 시트를 뒤로 천천히 젖혔다. 나 또한 머리가 아팠기에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쉬었다. 맞닿은 유리창이 뜨거웠다.

 

 

가끔은 공터에 들르지 않는 날도 있었다. 누나가 학교에서 혼자 나오지 않을 때였다. 옆에는 주황색 티를 입은 여자애가 있었다. 이름을 말해줬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점이 있다면, 여자애는 항상 주황색 티를 입고 있었고 항상 즐거워 보였다. 티셔츠는 해질 대로 해져서 얇았고, 일반적인 주황색이라기에는 갈색에 가까웠다. 여자애는 누나보다 두 살 어렸다. 둘이 함께 건물을 나오는 날이면 누나는 나를 먼저 집에 데려다줬다. 그러면 집에서 누나나 엄마가 올 때까지 혼자 기다렸다.

언젠가 한 번 같이 가고 싶다고 한 적이 있었다. 누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단호한 거절이었다. 여자애가 말했다.

? 같이 가자. 오고 싶다는데.’

누나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애는 잘됐다며 두 손으로 짝짝 손뼉를 쳤다. 나도 덩달아 신이 났던 것 같다.

누나가 돌연 내 양쪽 어깨를 단단하게 잡더니 말했다.

엄마한테 말하면 절대 안 돼. 알겠지?’

내가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엄마한테 종종 이야기한다는 점을 누나는 알고 있었다. 누나는 내가 잘 알아들었는지 확신이 들 때까지 내 두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플 정도로 쥐고 있던 어깨를 놓고는, 계속해서 앞장서서 걸었다. 여자애가 다가와서 귀에다가 속삭였다. 퀴퀴한 냄새가 났다.

우리 집은 어른이 없어. 그러니까 너도 자주 놀러 와!’

고개를 끄덕였지만, 왠지 누나가 다시 나를 데려올 일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애의 집은 같은 아파트지만 다른 건물이었다. 엘리베이터의 위치나 복도의 생김새가 전부 달랐다. 엘리베이터에서 소변 냄새가 나는 건 똑같았다.

집에 들어섰을 때 집들과 가장 다른 점은 가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말할 때 목소리가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느끼는 감각은 언제나 기이한 기분을 줬다. 누나가 들어가 버린 방으로 여자애가 나를 데려갔다.

여자애는 창문을 열고 훌쩍 뛰더니 그 위에 걸터앉았다. 복도로 뚫린 창문이었다. 누나는 내가 못 보게 하려는 건지, 어디선가 과자를 꺼내서 먹였다. 엄마는 인스턴트 식품이나 과자, 음료수 등을 절대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허겁지겁 먹었다. 누나한테도 과자를 주려고 여자애 쪽을 보니까, 여자애한테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여자애는 눈을 감고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 연기를 먹었다. 그 모양이 마치 구름 같아서 과자보다 더 맛있어 보였다.

저게 뭐야, 누나?’

누나는 알 필요 없다고 했다. 여자애가 누나한테도 권했지만, 누나는 괜찮다고 했다. 내가 없을 땐 누나도 저걸 먹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과자를 다 먹고 나자, 둘은 서로 기대어 앉아서 가만히 있었다. 내가 있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지만, 아주 가끔 대화를 나눴다. 일종의 놀이 같았다. 여자애가 먼저 주제를 제시하면 누나가 대답하는 형식이었다.

장래 희망.’

우체국 배달부.’

아직 먹어보지 않은 음식.’

아직?’

언젠가 먹을 음식.’

달팽이 요리.’

있을 수 없는 일.’

바다 아래를 걷는 것.’

하나 더.’

네가 어른이 되는 거.’

여자애가 키득거리며 웃었고, 누나는 그걸 바라봤다. 어쩌면 즐거워하는 것도 같았다. 그 놀이에 내 방식대로 참여하는 방법이 있었다. 누나의 대답을 하나하나 상상해 보는 것이었다. 달팽이 요리를 먹어보거나 바다 아래를 걷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어른이 된다는 건 무슨 기분일지 등등. 여자애 옆에서 보이는 누나의 모습이 낯설었지만, 어쩌면 그게 누나의 모습일지도 몰랐다. 무언가 기다릴 때면 생각이 소용돌이처럼 머릿속을 휘저었다. 기다림에 지친 나를 언젠가 누나가 돌아봐 주고 마침내 집에 마침내 데려다줄 때까지, 나는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어제는 환이 서울에서 내려와 내 방에서 함께 잤다. 만난 지 고작 이 주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도, 환은 한 달은 족히 넘긴 것처럼 나를 대했다. 마중 나갔던 지하 주차장에서 우리는 서로를 안은 채로 오랫동안 서 있었다.

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많이 힘들었지.’

환이 등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내가 힘들었나, 힘들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엄마가 아파서 힘들다는 말은 자명하게 느껴졌지만, 사실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환이 안아줬을 때 내가 위로받고 싶어 했단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대로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엄마는 거실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었다. 환을 만나러 내려가기 전에 요리하고 있던 것을 마저 마무리하고, 셋이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사는 환과 식사할 때와는 달리 조용했다. 환과 교제를 시작한 지는 오 년이 지났지만, 환은 엄마를 만난 것은 물론이고 천안에 온 것조차 처음이었다. 식사하는 내내 환이 긴장한 상태인 것이 역력히 느껴졌다. 가끔 나를 힐끔 바라보기만 했다. 엄마는 아들이 데려온 남자가 누군지 묻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는 듯 보였다. 다만 손님이 있는 탓인지 식사를 끝내고 바로 안방에 들어갔다. 밥 먹고 체온을 재야 하는데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괜히 식탁 위에 꽂혀 있던 체온계를 만지작거리는데, 허벅지 위에 큼직한 손이 얹혔다. 환이 내게 물었다.

자기 방은 어디야?’

우리는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환은 나를 돌려세우고는 키스했다. 맞잡아 오는 습한 손이 느껴졌다. 환의 손길은 항상 느릿하면서도 절박했다. 쉽사리 손을 뻗지 못해 머뭇거리면서 멈추지는 못해서, 그러함과 그러지 못함 사이 어딘가 어중간한 상태로 다가왔다.

우리, 다 벗고 있자.’

환이 수줍은 듯 말했다. 하지만 내가 응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대로 우리는 싱글 사이즈 침대에 누워서 마주 봤다. 눈가가 화끈거리고 뻑뻑한 느낌이 들었다.

나 혹시 열나는 것 같진 않아?’

환은 이마를 만져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기억하는 체온 그대로야.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렇게 말하는 환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마치 시작부터 해피엔딩임을 알 수 있는 영화 속 주인공 같았다. 그래서 그 품을 더 파고들었다. 서늘하면서도 부드러웠다.

언젠가 열이 내리지 않아 엄마가 안아줬던 기억이 났다. 밤새 열에 시달려서 엄마는 나를 목욕시키고 미지근하게 적신 수건으로 닦았다. 덜덜 떨고 있는 나를 벗기고 엄마도 벗었다. 우리가 있던 방 바로 건너편, 안방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엄마는 효과적으로 체온을 정상화하는 방법이라며 나를 꼭 안았다. 아직 차가웠지만, 적신 수건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웠기에 그 품을 파고들었다.

집요하게 내 숨을 눈으로 좇으며 환은 가장 처음의 기억이 무엇인지 물어봤다. 물론 어릴 적 살던 방에 왔기에 물어봤을 터였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

눈을 감아도 뚜렷하게 떠오르지는 않았다. 어디까지가 기억이고, 어디까지가 추측이었을까.

엄마였을까? 기억은 잘 안 나.’

그저 환의 손길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환이 말했다.

나도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어. 바닥에 비치는 햇빛을 보고 있었던 것 같아.’

누굴 기다렸는데?’

날 바라봐 줄 사람.’

그답게 실없는 말이라 웃음이 나왔다. 환은 진지하게 들어달라며 간지럼을 태웠다.

그게 너란 말야. 평생 기다려온 사람.’

그게 나라고?’

.’

그렇게 한동안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평온한 침묵을 깼다.

실은 요즘 가끔 누나가 보여.’

환의 두 눈은 오직 나만 담고 있었다.

한 달 정도 됐을 거야. 어디선가 날 보고 있는 것만 같아 돌아보면, 누나가 멀찍이 나를 향해 서 있어. 그러다가 다시 보면 없어.’

어제 아침 일찍 엄마한테 열이 없음을 확인하고 혼자 집을 나섰다. 병원에 먼저 들렀다. 간단한 약을 몇 가지 처방받고 나왔다. 다시 길을 나섰다. 상담받으러 가기 위함이었다. 상담은 한 시간을 넘지 않았다. 정신과의 문을 나섰을 때, 엄마가 한 말이 맞았다는 것을 인정했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거울을 보았을 때 보이는 사람이 나라는 것만큼, 사실 뻔한 내용들이었다. 결국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인지 질문을 받았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가 언젠가 누나 손을 잡고 똑같은 경험을 했던 걸까. 누나를 데리고 온갖 병원을 들렀을 터였다. 내가 짐작하는 것보다도 더 많이.

어쩌면 가까워지고 있는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언젠가 그 병에 걸리게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나 봐. 내가 그걸 기다려 왔단 것도.’

환은 모든 게 괜찮다는 듯, 일정한 리듬으로 나를 쓰다듬었다.

너는 어때? 괜찮아?’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는지 환이 잠시 뜸을 들였다. 눈시울이 붉은 것도 같았다.

실은 엄청 불안했지. 요즘 많이 달라 보였으니까. 마음이 식은 건가 싶기도 했고.’

내가 다시 웃자, 환이 이번엔 옆구리를 꼬집었다.

그것만 아니면 돼.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든, 내가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다 좋아. 죽어도 내 품에서 죽어.’

뭐야, 그게.’

환이 멋쩍은 듯 답했다.

무엇보다도, 다 괜찮을 거야. 그럴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쓰다듬는 손길만큼은 그대로였다.

 

 

엄마가 가만히 앓는 소리를 냈다. 힘에 겨운지 얼굴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체온계를 꺼냈으나, 엄마가 그걸 보고 거칠게 내 손을 쳐냈다. 체온계가 자동차 시트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컸다.

아까 이미 잰 거, 또 재서 뭐 하게?”

하는 수 없이 손수건을 꺼내서 건넸다. 엄마는 받아서 이마를 한두 번 두드려서 땀을 닦더니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고는 도로 눈을 감았다. 원산도에 도착했는데도 차에서 내릴 기미가 없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이제 안 춥다.”

단호하게 말하고는 대뜸 차 문을 열고 나섰다. 따라 나오자 선선한 바람이 스치며 땀이 떨어졌다. 뒷좌석에서 집에서 챙겨온 가디건을 꺼내 엄마한테 건넸다. 엄마는 그것을 보고 별말 없이 걸쳤다. 그러면서 해변 쪽을 바라보면서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엄마의 손은 무게 없이 손 안에 가볍게 들어왔다.

지나가면서 차와 커피를 파는 트럭 한 대를 마주쳤지만, 영업하고 있지는 않았다. 말라서 죽어가는 소나무들의 숲을 천천히 지나쳤다. 이윽고 넓고 둥그렇게 땅을 파고드는 모양새의 해변이 나왔다. 햇살이 뜨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해변에는 사람이 몇몇 산책을 하고 있었다. 모래가 젖어 있는 부분이 넓은 것을 보니, 간조가 가까워지는 중인 듯싶었다. 저 멀리 부부로 보이는 한 쌍은 종아리 정도 높이까지 파도를 맞으며 걷고 있었다. 목줄을 푼 리트리버가 수영하다가 부부에게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걸 가만히 바라보던 엄마가 손을 놓고는 신발을 벗어서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초입에 두었다. 그러고는 뭐 하냐며 어서 신발을 벗으라고 했다. 우리는 손을 잡은 채로 젖은 모래를 밟았다. 차에서 힘들어하던 것과 달리 엄마의 안색은 오랜만에 생기가 도는 듯 보였다. 들떠 있는 것도 같았다. 전혀 추위에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파도가 닿자, 순식간에 발목을 감쌌다가 도로 멀어졌다. 차가운 감각이 몸을 순식간에 훑고 지나갔다. 몸 안에 남아 있던 내가 아닌 것들이 한숨에 쓸려간 것만 같았다. 문득 언젠가 환을 데리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파도를 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엄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뿐이라는 충동에 가까운 직감이 찾아왔다. 무엇을 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물었다.

엄마는 첫 기억이 뭐야?”

엄마는 시시하다는 듯 시선을 깔았다.

기억도 안 나지, 그런 건.”

그러면서 썰렁한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웃었다. 나도 더 묻지는 않았다.

별로 걷지는 않은 것 같은데 모래 위를 다녀서 그런지 쉽게 지쳤다. 엄마한테 잠시 멈춰달라고 한 뒤, 모래를 털어 편평하게 만들고 그 위에 앉았다. 해가 바다 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네 시가 갓 넘은 시각이었다. 왠지 밤이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몸이 무겁고 나른했다.

아예 등까지 바닥에 대고 누웠다. 엄마는 그제야 편하게 앉아 무릎에 팔을 얹고, 수평선을 응시했다.

엄마, 몸은 괜찮아?”

엄마가 나를 돌아봤다. 그렇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왜 온 거야?”

엄마가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오자고 한 것 아니었나?”

내가 오자고 했다고?”

그래.”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오늘 늦은 아침을 먹을 때, 엄마가 핸드폰을 보다가 갑자기 오자고 했던 것이었다. 알고리즘 추천 영상을 봤겠거니, 했는데. 엄마의 증세가 심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게 상관이 있는 건 아니지. 온 김에 조개나 사 놔.”

엄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햇빛이 눈을 찌르는데도 자리가 편하게 느껴졌다. 잠깐 눈을 감고 싶었다. 누우니까 중력의 몸의 모든 부분을 세심하게 끌어당겼다.

 

 

지나고 보았을 때 더 선명하게 느껴지면 그것은 착각이기 때문일까. 어떤 상황은 때때로 돌이켜 보면 분명했다. 그때 누나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인지하는 것과 인지한 사실이 내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은 다른 차원이었다.

나는 여느 때처럼 플라타너스 아래에 앉아 누나를 기다렸다. 누나가 종이 충분히 울리지 않았는데도 나오거나, 종이 충분히 울렸는데도 나오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 원래 해맑은 편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럴 때면 누나의 안색이 훨씬 어두웠다. 함께 걸을 때는 평소보다 힘들어하는 듯 보였다. 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에 누나는 자주 무언가 발견한 듯했고, 막상 가 보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때문에 길이 멀어지기 일쑤였다. 누나는 예전보다 쉽게 지쳐서 더욱 힘들어했다. 하지만 공터는 빠짐없이 매일매일 산책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 엄마한테 말했어?’

누나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 유치원 뒤로 나를 데려가서 거칠게 나를 벽에 몰아세웠다. 그런 적도 없었고, 엄마도 전날 누나한테 별다른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숨이 가쁜 탓인지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너 때문에 엄마한테 맞았어. 담배나 피우는 썅년이라면서 개처럼 처맞았다고.’

그런 말을 하는 누나한테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벌벌 떨면서 그런 적 없다고만 했다. 무엇이 어떻게 된 건지 전혀 모르겠어서, 그저 누나가 그만하기만을 바랐다.

그래?’

누나가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내 손을 잡고 평소처럼 걸었다. 조금 지나자 안색도 평소와 같이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든 것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다만 누나가 잡았던 손목이 아팠다.

그날 이후 이 주 정도 지났을 때였다. 공터를 산책하다가 햇빛이 드는 바위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누나가 목을 가다듬더니 내 이름을 불렀다. 누나는 내 어깨를 아플 정도로 꽉 쥐고 말했다.

아빠가 온대.’

아빠?’

. 아빠가 오기로 했대.’

누나가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빠가 와서 무엇을 어쩌라는 것인지 묻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왠지 신이 났던 것도 같다. 내가 따르는 사람의 분위기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니까.

내일 저녁에 여기로 올 거야.’

당시에도 이런 공터에 아빠가 온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왜 여기로 와?’

엄마 몰래 오는 거거든. 너도 절대 말하면 안 돼. 알겠어?’

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로 하라는 것을 제외하면, 누나는 내게 어떻게 하라고 따로 지시하지는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누나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가벼워 보였다. 내 기억 중 가장 생기 있는 모습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혹시 모른다는 마음에 아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평소와 마찬가지로 유치원이 끝난 다음 그네에 앉아 누나를 기다렸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누나와 함께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다는 점이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아빠를 만나는 것을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때 나한테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하진 않았으니까. 내게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은 항상 누나나 엄마, 유치원 교사 혹은 친구들이었다.

날씨는 온화했다. 친구들이 모여 있다가 하나둘씩 아파트로 돌아갔다. 나는 그대로 남아서 종을 세면서 기다렸다. 일찍 나오는 날은 아니었다는 것을 먼저 확인했다. 다음으로는 다른 학생들과 같이 끝나지는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자애도 다른 아이들의 무리 사이에서 정문을 나왔다. 그때와 똑같은 주황색 티를 입고 있었다. 혹시 여자애와 같이 나왔나 싶었는데, 누나는 곁에 없었다. 여자애는 멀찍이 나를 보고 해맑게 다가왔지만, 귀찮을 뿐이었다. 퀴퀴한 냄새가 바람을 따라 느껴졌다.

언니는 어딨어? 너랑 있는 줄 알았는데.’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 가만히 있었다. 여자애가 멋대로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기에 퉁명스럽게 쳐냈다. 여자애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나랑 눈높이를 맞추고는 말했다.

언니 이미 갔나 본데 나랑 같이 놀러갈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피곤하지 않아? 그렇게 맨날 언니 기다렸다가 가려면. 유치원은 일찍 끝날 텐데.’

이상한 질문처럼 느껴졌다. 누나와 함께 집에 가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이었다. 기다림이 달가운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기다림이란 선택의 여지를 포함하고 있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저 그 끝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여자애는 머리를 기어코 쓰다듬고는 사라졌다. 종이 울릴 때마다 이따금 열리는 학교 문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한 번씩 울릴 때마다 마음속 불안감이 배로 부피를 키웠다. 그렇게 마지막 종이 울릴 때까지 누나는 나오지 않았다. 누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문득 추워서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이렇게 늦은 시각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던 것이 처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차장에 남은 자동차도 몇 남지 않았다. 커져만 가는 불안을 억지로 억눌렀더니 판단이 가능했다. 학교에 남은 학생은 없어 보였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누나는 나 없이 집으로 갔다. 아빠가 더 일찍 온 것일지도 몰랐다. 혹은 늦게라도 나를 찾아서 학교로 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누나가 나를 찾아 다시 오는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딱히 없었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서 항상 누나와 걷던 길을 혼자서 걸었다. 해가 높이 떠 있을 때만 걸어갔던 길이었다. 주위가 어두워지니 나무 한 그루조차 다르게 보였다. 이렇게 혼자서 길을 가도 되는 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인도 맞은편에서 모르는 사람이 걸어올 때마다 손에 땀이 났다. 그럴 때마다 가야 하는 길에 집중했다. 한순간이라도 생각의 실을 놓치면 다시는 기억하지 못할 것처럼.

누나와 함께 걸을 때보다 훨씬 빨리 아파트에 도착했을 테지만, 가장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해가 지고 나니 아파트 건물은 기이하게 하늘에 가까워 보였고, 주차장은 숨기는 공간이 많아 보였다. 또래 아이들은 물론이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아파트에 빼곡히 붙어 있는 창문은 하나같이 반짝였다. 다른 가족들은 다들 서로 함께 있는 걸까. 동화 속 화목한 가족들처럼 김이 오르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있을 터였다.

곧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혹시 공터에 누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아빠가 온다는 누나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던 것도 같다. 기억조차 희미한 아빠가 온다는 것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걸까. 아빠가 갑자기 올 이유도, 만약 온다고 해도 그 사실을 누나가 알려줄 리가 없다는 것도 알았던 것 같다. 엄마는 평소처럼 바빴다. 조용히 셋이서 저녁식사를 마친 후엔 티비를 봤다. 아홉 시가 넘기 전에 잘 준비를 모두 마치고, 누나와 나는 방에 들어가서 잤다. 아빠가 온다고 하기엔 누나 빼고 모든 것이 너무나도 그대로였다.

역시 공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 키만큼 올라오는 관목들과 얇은 나무들이 드리워낸 그림자가 흙바닥에 얼룩을 만들었다. 누나와 함께 앉아서 쉬던 바위에 걸터앉았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누나를 기다렸다. 햇빛을 쬐던 자리였지만, 서늘한 달빛이 그나마 비추는 곳이었다.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기다리면 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기다리면 온다고 믿어야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수풀 속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놀랐지만, 시선을 돌려 무엇인지 꼬박꼬박 확인했다.

춥지는 않았다. 땀이 흘렀던 것도 같다. 곧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나든 아빠든 이미 집에 있을 거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늦은 시각이었으니 엄마한테 혼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는 것조차 낯설었다. 아파트의 현관 복도가 기이할 정도로 길어 보였다. 복도의 끝이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창문 몇몇 개가 복도를 너무 어두워지지 않을 정도로만 비추고 있었다. 우리 집의 창문은 어두웠다.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고 나서야, 항상 누나가 열쇠를 가지고 문을 열었음을 깨달았다. 초인종을 눌렀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친구들은 우유 주머니에서 꺼내기도 하던데, 우리 집은 아무것도 없었다. 열쇠 구멍에 손가락을 끼워 봤지만, 살점이 살짝 낄 뿐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은 엄마나 누나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결국 문에 기대서 앉았다. 홀로 남겨진 것이 외롭고 무서워서 울었다. 어쩌면 아빠를 보고 기뻐하는 누나를 보고 싶어 했던 것도 같다. 기대가 무참히 깨져버린 자리는 그만큼 아픈 감각이 차지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울고만 있는데, 누군가 등을 두드렸다. 화들짝 놀랐지만, 익숙한 얼굴이었다.

옆집 아줌마야. 잠깐 들어와 있을래?’

옆집 아주머니는 엄마한테 연락받았다고 했다. 엄마가 누나와 급하게 갈 데가 있어서 못 왔는데, 잠시 챙겨달라고 해서 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고도 했다. 엄마가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다가 결국 옆집 아주머니한테도 도움을 요청한 모양이었다.

내가 살던 곳 바로 옆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벽에 예수의 그림과 성경 문구가 걸려 있었다. 가족사진은 없었다. 같은 평일 텐데 우리 집보다 넉넉해 보였다. 식탁을 빼고는 모든 불이 꺼져 있었다.

아주머니는 식탁에 나를 마주 보고 앉아서 내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동안 어디 있었는지 물어보며 나를 많이 기다렸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따라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초인종 소리가 들릴 때까지 옆집에 머물렀다. 아홉 시가 넘어서야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다. 엄마는 몹시 피곤해 보였다.

엄마는 누나와 내가 둘이 쓰던 방에서 내가 잠들 때까지 함께 있었다. 그 후로 누나가 집에 돌아온 적은 없었다.

 

 

눈을 떴더니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젖은 모래는 그 빛을 그대로 반사했다. 바람이 불지 않아 파도가 잔잔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와 바다와 땅의 경계가 희미했다. 꽤 깊게 잠들었던 건지 몸이 추웠다. 엄마는 누워서 잠들어 있었다. 몹시 평온해 보였다. 입술이 파란 것 같기도 했다. 땀방울이 살짝 맺혀 있는 것 같아서 이마를 만져봤는데 뜨거웠다. 옆에는 바지락 한 봉지가 놓여 있었다. 잠들어 있는 동안 어딜 다녀오기라도 한 걸까.

바지락을 들자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엄마가 깼다. 눈이 부실까 봐 손으로 작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괜찮아?”

엄마는 힘겨운 듯 인상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 때문에 추운 바람을 너무 많이 맞은 것이 분명했다. 주변 경관은 충분히 볼 만했지만,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해수욕장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휑한 도로에 가로등이 켜졌다. 초입에 두고 온 신발을 마저 신었다. 완전히 말랐는지 모래가 아무런 접착 없이 떨어졌다. 몇몇은 남아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엄마도 묵묵하게 신발을 신었다. 들고 있는 검은 봉지가 묵직했다.

얘네 살아 있을까?”

엄마는 대답하지 않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주차장에는 내 차만 남아 있었다. 누나가 타지 않은 조수석 쪽 뒷좌석에 바지락을 잘 묶어서 뒀다. 그러고 운전석에 앉으려는데, 엄마가 나를 막아섰다. 엄마는 바지락을 꺼내서 조수석 좌석에 얹어두고는, 뒷좌석 문을 다시 열고 내게 말했다.

무리하지 말고 뒤에 앉아.”

엄마가 운전하겠다는 걸까. 이마에 송골송골하게 땀이 맺혀 있는 걸로 봐선 엄마한테도 운전은 무리였다. 상태가 점점 안 좋아져서 이젠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내가 뒷좌석에 앉기 전에는 엄마도 서서 나와 대치할 것처럼 보였다. 일단 앉을까. 엄마가 괜찮아질 때까지 쉬었다가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었다. 조금만 쉰다면 괜찮아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엄마는 내가 앉은 반대편에 앉고 문을 닫았다. 뒷좌석의 시트를 조금 눕혔더니 엄마가 놀랐다.

우리 아들, 좋은 차 타더라.”

실없는 소리였다. 엄마가 손을 뻗어서 나를 눕혔다. 허벅지를 베고 누운 꼴이 되었다.

환이라고 했나. 네 친구 불렀으니까 올 때까지 기다리자.”

환이를 불렀다고?”

그래. 금방 올 거야.”

걘 서울에 있을 텐데. 못 올 거야.”

내가 부른 거 아냐.”

대체 무슨 말인지. 이마에 엄마의 손이 얹혔다. 희미한 기억 속 열이 날 때 포갰던 몸처럼 서늘했다.

 

 

병원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말라비틀어진 음식 냄새 같기도 하고, 푸석한 먼지 냄새 같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기뻐하는 사람이 좀처럼 없었다. 복도는 길고 갈래가 많았다. 모든 곳에 적어도 한 사람은 있었다. 다들 아프거나 바빴다.

병실에 들어섰을 때 누나는 바빠 보이지 않았다. 문에서 바로 옆에 있는 자리였는데도 누나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엄마와 내가 왔는데도 돌아보지 않았다. 환자복을 입은 누나는 무척 작아 보였다. 그래도 엄마보다는 상태가 좋아 보였다. 엄마는 울지도 웃지도 않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툭 치면 그중 하나가 될 것 같았다. 반면 누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무표정을 유지할 것만 같았다. 병원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평생 있었고, 앞으로도 평생 있을 것처럼 보였다.

엄마가 바닥 침대를 꺼내서 나를 앉혔다. 간호사가 엄마를 불러서 병실을 나갈 때까지 누나는 가만히 있었다. 엄마가 병실을 나간 순간 누나는 고개를 돌려서 날 봤다.

너도 언젠가 이렇게 될 거야.’

누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눈은 웃고 있지 않아서 위화감이 들었다. 유치원 교사의 것과는 말투도 표정도 너무 다르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때가 되면 너도 알겠지.’

누나가 상체를 숙여서 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당시 나한테는 알 수 없는 소리일 뿐이었다.

누나 병 걸린 거야?’

병은 무서운 것이었다. 걸리면 죽을 수도 있었다. 누나가 병원에 왔으니, 심각한 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를 더욱 낮춰서 말했다. 속삭임에 가까웠다.

누나가 걸린 병은 유전병이야.’

유전병?’

내가 큰 소리로 되묻자, 누나는 검지로 입을 가리며 주의를 줬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답했다.

그래.’

유전병이 뭔데?’

아무도 들을 수 없도록 작게 속삭였다.

유전병은 아빠나 엄마한테 물려받는 병이야. 아빠도 이거에 걸려서 죽었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무서울 뿐이었다. 눈을 깜빡이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누나는 두 눈을 부릅뜬 채로 나를 바라봤다.

언젠가, 너도 걸릴 거야. 이 병이 너한테도 언젠가 찾아온다는 뜻이야.’

결국 울음을 터뜨렸던 것 같다. 병실 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보였을까. 간신히 물었다.

언제?’

누나는 맑게 웃으며 답해줬다.

너도 그때가 되면 알 거야.’

누나가 여전히 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괜찮아.’

 

 

엄마가 타고 있는 자리에 누나가 있었는데. 엄마가 그냥 앉았어.”

이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엄마 앞에서 처음 발음하는 단어가 있었다. 그만큼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괜찮아.”

엄마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실은 오늘 내내 누나가 보였어.”

그랬구나.”

엄마는 괜찮아?”

조금 힘들어.”

엄마가 웃으며 답했다. 내가 일어나려고 하자, 엄마가 막았다.

더 누워 있어.”

상냥하면서도 단호했다. 엄마가 단호한 것은 익숙하지만, 상냥한 것은 낯설었다. 어려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누구한테 간호받고 있는 거지. 엄마를 간병하려 낸 휴가인데, 도리어 내가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환이 보고 싶어.”

곧 올 거야.”

엄마가 타이르듯 말했다. 환이 엄마한테 따로 연락처를 준 걸까. 환은 분명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갔을 텐데, 어떻게 곧 온다는 걸까.

귀엽더라.”

엄마가 대뜸 말했다.

무슨 말이야?”

좋은 애라고.”

엄마도 나도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시간을 보내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었다. 아무리 재촉해도, 잊어버려도 시간은 흘렀다.

어두워진 차 안을 밝은 빛이 순식간에 훑고 지나갔다. 멀리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서 앉아 보니 막 도착한 택시가 보였다. 원산도까지 오는 택시라니. 자동차에서 내리는 환이 무척 피곤해 보였다. 택시는 바로 떠났다. 환이 다가오고 차 문이 열리자, 바람이 더욱 싸늘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오래 기다렸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환이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면서 사이드미러를 조작했다.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자, 환이 뒤돌아봤다.

내 보험도 들어놨어.”

언제?”

혹시 모르니까.”

환이 멋쩍게 웃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자동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서쪽 하늘은 완전히 어둡지 않았다. 가로등이 도로를 밝게 비췄다. 터널이 순식간에 하늘을 가리자, 끝없는 직선 도로가 펼쳐졌다. 엄마의 손을 꽉 잡았다. 환이 와 줘서 그런 건지, 긴장이 풀리고 다시 몸이 나른해졌다. 낮잠을 너무 오래 잔 탓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잠에 들면 터널의 끝을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 끝에 넷이 무사히 도착하길 바라며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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