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우수상] 믿음 없는 클럽
[2023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우수상] 믿음 없는 클럽
  • 김도희<인문대 국어국문학과 19> 씨
  • 승인 2023.12.04
  • 호수 1576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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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얼마 넣었어?”

 

달래가 부조 봉투를 흘긋 훔쳐보며 말했다.

 

오만원? 십만원? 아니면 그보다 더?”

말 안 해줘. 너는 얼마 넣었어?”

적당히 넣었어 비밀

 

달래는 정확한 액수를 말하지 않고 정은의 오빠에게 봉투를 꺼냈다. 축의금 접수대에는 수많은 하얀 봉투들이 놓여 있었다. 나도 흰 봉투를 함께 건넸다.

 

텔레비전 사주기로 했는데

나는 식기세척기. 달래야. 어쩜 좋아. 돈은 없는데 우정은 있어. 돈이 마음을 표현하는 건 아니지만 정은이가 결혼할 때면 식기 세척기는 사 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이렇게 빨리 가버리면 나는 거짓말만 하는 사람 되잖아.”

정은이 보러 가야지

 

정은 오빠의 말에 신부대기실로 향했다. 신부 대기실은 예식장 뒤 쪽에 있었다. 방은 웬만한 집 거실보다 널찍했다. 방 안에 있는 가구는 벨벳 천 재질의 소파가 전부였지만 소파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텅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사람들 사이로 정은이 보였다. 정은은 비즈가 가득 붙어있는 웨딩 드레스를 입고 소파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정은의 옆 자리는 쉽게 앉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으려 몰려 든 탓에 빈 자리가 나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왔네?”

정은은 우리를 바라보고 한 마디 건넸다. 정은의 기다란 속눈썹이 눈에 띄었다.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낙타의 속눈썹이 생각났다.

 

뭐냐 그 어색한 질문은? 속눈썹이 하늘을 찌르겠어. 정은아.”

 

달래는 정은의 오른 편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귀에 속삭였다.

 

많이 긴장돼? 괜찮으면 보석 하나만 떼 가도 돼?”

긴장되는지 좋은 지 잘 모르겠어. 그냥 울고 싶어. 천만원짜리라서 울면 안되는데.”

천만원짜리면 워터프루프 써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럼 울어도 되는 거 아니야?”

 

소파에 앉아서 이런 저런 농담을 하는 모습을 보던 사진사가 큰 소리로 외쳤다.

네 신부 친구님들 사진 촬영하겠습니다. 신부님보다 앞으로 나오세요. 활짝 웃으면서 사진 찍겠습니다. 신부님도 카메라 보세요. 하나 둘 셋

 

찰칵!

 

카메라 셔터음이 울리자 그제서야 정은의 결혼이 믿겼다.

 

*

정은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한 달 전이었다. 저녁 8. 조금 늦은 저녁 식사로 치킨을 먹으면서 유튜브를 보는 평범하고 안정적인 저녁이었다. 정은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정은의 전화는 오랜만이어서 꽤 반가웠다.

 

지해야. 요즘 뭐해? 잘 지내고?”

나야 뭐 늘 똑같지. 아직 졸업 못 했어. 4학년 다니는 중이야. 어떻게 생각하면 할 일이 많은데 또 할 일이 없는 것 같기도 해. 뭘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제일 어려워. 어쩐 일로 전화했어?”

나 결혼해. 결혼한다는 이야기하려고 전화했지.”

거짓말.”

거짓말 아닌데. 다음주에 달래랑 같이 보자. 다음주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서울 갈게. 6시에 잠실. 괜찮아?”

알았어. 수요일에 만나. 그리고 거짓말인 거 아니까 그냥 보고싶다고 말해.”

내가 거짓말을 왜 하겠어.”

남자친구는 언제 생겼는데? 연애한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우리 아직 20대 중반이야. 너무 이르지 않아? 우리 정은이 아직 어리단 말이야

 

그 날 밤에는 한 통의 전화가 더 왔다. 정은의 결혼 소식을 들은 달래에게 온 전화였다.

 

박정은 결혼한대! 너도 전화 받았어? 나 어이없어서 운전하다가 교통사고 낼 뻔했어. 나야 정은이가 잘 살면 좋지만. 그래 잘 살라 그래.”

솔직히 거짓말 같지 않냐?”

한 두 번 당해야지. 그래도 믿음 없는 클럽오랜만에 만나네.”

 

휴대폰 너머로 달래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 뒤로는 오래도록 쌓인 싱거운 이야기를 나눴다. 달래는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따끔하다고 말했다. 가시가 박힌 것 같아서 병원에도 다녀왔지만 나이 든 의사 선생님이 노안이 와서 가시를 찾지 못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하루살이를 잔뜩 먹은 이야기를 해줬다. 강가에서는 입을 꾹 다물고 실눈을 뜨고 타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달래는 내 이야기를 듣고 여름이구나.’ 라는 말을 붙였다.

 

정은에게 카톡이 와 있었다. 보낸 링크를 누르자 잠실의 한 카페 위치가 떴다. 커피가 맛있는 카페라는 리뷰가 가장 상단에 떠 있었다. 그 밑으로 매장이 청결해요’, ‘인테리어가 멋져요.’ ‘매장이 넓고 쾌적해요.’ 리뷰에 많은 추천 수가 눌러져 있었다. 까먹지 않게 캘린더에 장소와 이름, 시간을 메모했다. 적어 둔 날짜와 시간에 맞게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로 향했다.

카페는 리뷰에서 말한 것처럼 공간이 넓었다. 테이블 사이에 간격도 좁지 않았다. 달래는 가장 안쪽에 앉아 있었다. 달래를 실제로 만나는 건 2년만이었다. 가장 마지막에 기억한 달래는 긴 까만 머리였는데 단발의 연갈색 머리였다. 예전과 분위기가 달랐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과거의 달래의 모습이 겹쳐 보일 때도 있었다. 약속한 시간보다 20분 정도가 지나서야 정은이 도착했다. 아이보리 색의 몸에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정은의 손가락에 반짝 거리는 반지가 눈에 띄었다.

 

청첩장 줘.”

 

달래는 손을 모아서 정은 앞에 내밀었다. 정은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입고 왔던 트위드 자켓을 벗고 검은 가죽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내가 사줘야 했는데 늦어서 미안해. 밥은 다음에 사 줄게. 아 참, 이거 가져가서 먹어.”

 

정은이는 가방에서 약과를 두 팩 꺼냈다.

 

이거 요즘에 구하기 힘들어. 집 앞이길래 줄 서서 사온 거야. 그리고 근황 이야기 좀 하자. 달래랑 지해는 요즘 교회는 다니니?”

 

달래는 질문을 받자마자 당황스러운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질문이 왜 그래. 난 안 다녀. 당연하게도 말이야. 교회 다녀서 뭐하니? 나는 차라리 양송이 수프에 모닝빵 찍어 먹으면서 텔레비전 보는 일요일 낮이 좋아. 믿음도 없는 애들이 교회는 왜 다녀?”

 

믿어보려고 하면 믿어지더라. 기도를 많이 했어. 회개도 많이 하고.”

응 알았어 이정은! 청첩장이나 내놔

 

정은의 말이 끝난 후에 우리 사이에는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정은은 그 사이에 가방 안에서 청첩장을 꺼냈다. 하얀 봉투를 뜯자 반짝이고 판판한 재질의 청첩장이 들어 있었다. 가장 앞면에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마주 보고 손을 잡고 있었다. 마주보고 있는 얼굴과 잡고 있는 손 사이에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룹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는 첫 걸음, 기쁜 자리로 와서 축하해주시길 바랍니다. 신랑 정하람 신부 이정은

나는 청첩장 표지 하단에 적힌 문구를 따라 읽었다.

달래는 믿기지가 않는지 청첩장을 요리조리 돌려가며 보았다. 청첩장에 그려진 은색 음각 하트만 반짝였다.

? 진짜다.”

그럼 가짜겠니? 좋은 사람이야. 부산에서 63. 딱 한달 뒤에 결혼해.”

남편은 어떤 사람인데? 어디서 만났어? 왜 한번도 말 안 해줬어? 하긴 우리가 만나는 것도 일년만인데 말 할 시간도 없었겠다.”

사진 보여줘. 잘 생겼어?”

교회에서. 너희들도 교회가. 결혼하고 싶으면. 신앙 생활하는 남자치고 나쁜 남자 없어.”

 

*

우리가 처음 만난 곳도 교회였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교회 소유의 땅과 건물이 있었다. 부모님은 매주 나를 그 곳으로 데려 갔다. 너무 많이 봐서 익숙해질 만도 했지만 교회는 쉽게 편해지지 않았다. 본당의 기다란 황토색 의자에 앉아서 예배를 드릴 때면 다른 생각을 할 때가 대부분이었다.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예전에 아프리카에 선교를 갔을 때 말이죠. 그 사람들은 가진 것이 없어서 건물도 없었어요. 그래도 천막을 치고 그 안에서 하나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하고 밤새워 춤을 추며 찬양했었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이면 장소와 관계없이 교회라고 할 수 있어요.”

 

전도사님은 격앙된 듯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손을 위 아래로 흔들었다. ‘나 같은 사람이 많다면 여기는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여기 더 있으면 여기는 교회가 아닌 걸까?’ 턱을 괴고 앞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십자가가 예배당 가장 가운데에 매달려 있었다. 스스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정의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혼자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믿음에 대해 정의할 수는 없었다. 시작을 해도 항상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주변을 바라보니 앞자리에 포니테일로 머리를 묶은 여자애가 엎드려서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말씀을 듣는 척하면서 다른 생각을 하거나 주보에 낙서를 하는 것이 최대의 일탈이었기 때문에 살짝 놀랐다. 처음에는 놀랐고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내가 기억하는 정은의 첫 인상은 그랬다. 다니엘 조로 가라는 전도사님의 말에 따라 다목적실로 향했다. 건물 1층에 있는 다목적실 안에는 아이들이 둥그렇게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선생님은 말씀을 나눌 시간이라며 a4 반쪽 사이즈의 종이를 나눠주었다. 종이에는 몇 개의 질문이 적혀 있었다. 가장 첫 번째 질문은 한 주 동안 가장 기쁠 때를 물어보았다. ‘이곳에서 학생들과 말씀을 나눌 수 있는 지금이라는 답변을 내놓은 선생님을 시작으로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질문에 답을 했다. 다른 아이들은 각자의 대답을 했지만 그다지 기억에 오래 남을 대답은 아니었다. 정은은 교회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 가장 기쁘다고 대답했다. 엄마가 사준 탕수육을 먹을 때가 가장 기쁘다고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정은과 친해지고 싶었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다목적실 바깥으로 나가는 정은의 팔을 잡았다. 정은은 짜증난 듯 뒤를 돌았다. 나는 정은과 눈을 마주치고 물었다.

 

너는 하나님을 믿어?”

잘 모르겠고 교회에 오고 싶지는 않아.”

주일에는 항상 정은의 옆 자리에 앉았다. 글씨를 적은 주보를 정은 쪽으로 밀었다.

 

-우리 끝말 잇기 할래?

 

정은은 내가 보낸 주보에 동그라미를 두개 치고 다시 돌려보냈다. 그 날 이후로 우리의 주보는 매일같이 낙서로 가득했다. 끝말 잇기를 비롯해서 초성 퀴즈, 수도 맞추기, 물고기 키우기, 오목, 별자리 잇기, 숫자 야구 종이로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게임은 다 해서 질릴 수준이었다. 어른들이 우리는 떼어놓으려고 한 적도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지우개 가루를 가득 만들어서 예배당에 던져 예배를 중단시킨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우리 둘의 머리에 손을 하나씩 얹고 사탄의 꼬임에 빠져가지 않고, 믿음이 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기도했다.

선생님의 기도가 끝난 뒤에 믿음을 가지는 방법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정말로 궁금했다. 갑자기 마른 하늘에 벼락이 치듯이 믿음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믿음을 가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노력을 할 수도 없고 재미없는 걸 억지로 좋아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우리는 믿음이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하게 될 뿐이었다. 달래가 언제부터 우리와 친해지게 되었는 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달래는 자연스럽게 우리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끼워줘. 나도 하고 싶어.”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달래와 나 정은은 나란히 앉아서 주보에 낙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셋이서 할 수 있는 게임은 훨씬 적었지만 더 재미있었다. 하나씩 부분을 그려서 전체 그림을 그리는 게임도 할 수 있었다. 달래가 우리의 옆자리에 앉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때쯤 주차장으로 달래를 불렀다.

 

이름이 김달래라고 했지? 우리랑 놀고 싶어?”

이때까지는 그냥 놀았지만 테스트를 통과해야 돼.”

 

팔짱을 끼고 건들건들 말하는 정은 옆에서 나는 한마디씩 거들었다. 달래는 이상하다는 듯이 우리를 쳐다봤다. 우리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역할에 몰입한 배우처럼 느껴졌다.

 

너는 하나님을 믿어? 우리는 믿음이 없어야 하는 모임이야. 스스로 믿음이 없다는 걸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어야 해. 그런데 너는 교회 다니잖아.”

그건 너네도 마찬가지잖아.”

우리는 엄마 아빠 때문에 다니는 거야.”

 

달래는 부모님 두 분이 전부 교회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굳이 올 의무가 없었다. 우리는 달

래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혼자 매일 예배에 참석하는 달래가 신기했다.

 

나는 찬송 부르면 신나서 좋아. 또 교회에는 사람들이 북적 북적하고 간식도 주고 재밌단 말이야. 우리 오늘 논 것도 재밌었잖아. 그렇지 않아?”

 

정은과 나는 동시에 고민에 빠졌다. 우리와는 생각이 많이 다른 아이였다. 달래를 팀에 들여도 되는 지 한참을 고민했다. 우리 둘이 동시에 말이 없어지자 달래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너네가 원한다면 안 믿을게.”

 

달래는 그 뒤로 항상 우리와 함께 했다. 우리는 이 모임에 믿음 없는 클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은이가 우리는 믿음이 없어야 한다며 단호하게 붙인 이름이었다. 매주 예배가 끝나면 서로 우리가 가진 불경스러움을 자랑하듯이 꺼내 보였다. 달래는 찬송을 부를 때 동의하지 않는 구절에는 입을 꾹 다물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우리는 점차 대담해졌다. 예배 시간에 몰래 밖으로 나갔다가 예배가 끝나기 직전에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 불경스러움을 뽐낼 수 있는 일요일이 기다려질 지경이었다.

 

당연하게도 엄마와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 엄마는 화를 내고 타이르고, 심지어는 용돈으로 협박까지 했지만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나를 이길 수 없었다. 용돈을 주지 않겠다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는 떡볶이를 먹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교회 사람들은 나를 박지해라고 부르지 않았다. ‘안 권사님의 딸로 불릴 때가 더 많았다. ‘모태 신앙이니, ‘권사님의 딸같은 말들은 오히려 나에게 피곤했다.

 

우리 엄마에게는 그런 이름들이 부끄러워했다. 나는 모르는 척했지만, 다른 권사님의 자식들이 성경 암송 대회에서 1등 했다는 사실 같은 것을 은근슬쩍 이야기할 때에 엄마는 더욱 그랬다. 이렇게 다닐 거면 교회에 가지 말라는 말도 하곤 했지만 엄마의 마음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교회에 갈 거라며 옷을 갈아입는 딸을 안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정은도 나와 같은 신세였다. 정도로 따지면 정은이 나보다 더 심했다. 정은의 아빠는 신학 대학에 뒤늦게 입학해서 목회자의 길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엄마는 돈을 벌면서 아빠를 뒷바라지해주고 있었다. 정은은 아빠 이야기를 많이 했다. 아빠가 섭섭하다고 이야기할 때가 많았다.

 

바보 같은 교회라고 교회 욕을 할 때면 교회 입구에서 주보를 나눠주고 있는 정은의 아빠 모습이 생각났다. 정은이는 교회는 항상 지루하고 잠이 온다고 말했다. 정은이 그렇게 불경스럽게 교회를 다녔지만 아빠에게 크게 혼난 적이 없는 것은 똑똑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예배시간에 잠을 많이 자는 것 치고는 우리 중에 성경을 가장 많이 알았다. 사실, 중등부 전체 중에서도 잘 아는 편이었다. 엄마가 예배를 제대로 들었는지 퀴즈를 낼 때면, 정은이 답안지를 대신 작성해줄 때도 있었다. 정은이는 주기도문이랑 사도신경도 다 외운 드문 아이였다.

 

우리의 활동은 아무 문제없이 일 년 넘게 지속되었다. 교회에서 몰래 나와 떡볶이를 먹거나 그림이나 포스터를 그려 교회 벽에 덕지덕지 붙여 두기도 했다. 장날에는 시장에서 호떡을 사 먹었다. 때로는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들어오는 사람들을 놀래키기도 했다. 교회 안에서 노는 것이 지루해질 때쯤 달래는 수영장에 가자고 했다.

 

달래가 다니는 수영장은 교회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도시의 중심지까지 가야 했다. 버스는 거의 사람이 타지 않아서 자리가 비어 있었다. 가장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길이 좋지가 않아서 구불구불한 길을 넘을 때마다 과속방지턱을 따라 덜컹거렸다. 조금씩 올라오는 멀미 기운 때문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우리 중에 넌 누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해?”

 

달래가 갑자기 나를 바라보더니 물어보았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지만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눈이 큰 달래가 제일 예쁘고 그 다음은 나, 그리고 정은이. 내가 제일 예쁘다고 대답하고 싶은데 달래가 눈도 크고 또렷하니까.”

 

정은이는 예쁜 것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달래는 매일 거울을 보고 옷도 예쁜 걸로 사고 틴트도 시간이 날 때마다 바르니까. 아무래도 달래가 제일 예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럼 정은이는? 정은이는 어떻게 생각해?”

 

달래는 가장 왼 쪽에 앉아 있는 정은이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정은은 대답없이 고개를 홱 돌리더니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달래는 머쓱한 듯 혼자 말하더니 눈을 감았다. 버스는 조금 더 덜컹거리다가 수영장에 도착했다. 샤워를 하고 수영장에 들어갈 때까지 아까 했던 대화가 신경 쓰였다. 수영모를 쓴 달래와 정은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예쁜 얼굴은 뭘까? 달래도 정은이도 둘 다 예쁜데.

달래는 레인을 돌며 수영을 했다. 정은이는 레인의 끝 부분에 서 있었다. 달래가 레인을 돌고

있는 사이에 정은에게만 들릴 크기로 말을 걸었다.

 

정은아 나는 네가 제일 예뻐. 아까는 달래가 물어봐서 그렇게 답한 거야.”

 

정은은 살짝 웃더니 달래를 따라 레인을 돌았다. 정은의 실력은 그렇게 좋지 못해서 한번 헤엄을 치고 발끝으로 살금살금 걷고 또 한번 헤엄을 치고 발끝으로 살금살금 걷기를 반복했다. 한 바퀴를 돌고 돌아온 달래가 나에게 물어봤다.

 

아까 둘이 무슨 이야기했어?”

너 이쁘다구.”

 

샤워를 끝내고 수영장 바깥으로 나오자 해가 지고 있었다. 나무로 된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예배가 끝날 시간으로부터 2시간이 넘게 지나 있었다. 꺼두었던 휴대폰을 키자 엄마에게 부재중 전화가 세 통 넘게 와 있었다.

 

엄마한테 혼나겠다.”

나도 완전 망했어.”

 

셋은 서로를 바라보면서 크게 웃었다. 교회 건물 바깥에서부터 정은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은은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아빠가 있는 쪽으로 갔다. 정은의 우는 소리와 정은 아빠의 큰 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혼나고 있는 것 같아서 속이 상했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 뒤로 몇 주간 정은은 보이지 않았다. 달래와 나는 평소와 같이 활동을 재개했지만 정은의 빈 자리는 크게 느껴졌다.

 

-언제와?

 

-좀만 기다려. 아빠가 다른 교회 보냈어. 화 풀리면 다시 돌아갈 듯?

 

정은의 답장처럼 몇 달 후에 자연스럽게 정은은 돌아왔다. 그렇지만 몇 달 후 자연스럽게 정은은 돌아왔고 우리는 평범한 클럽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항상 무엇을 하고 놀면 재미있을지를 연구했고, 이제 꽤 머리가 컸기 때문에 교회 예배를 가지 않고 놀러 가는 것에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교회 근처에 있는 명상 단체에 찾아 간 적도 있었다. 스스로 지도자라고 칭한 사람은 명상의 일곱 단계에 대해 알려줬다. 우리는 지도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마음의 작은 조각부터 큰 숲을 상상하라는 말에 우리는 눈을 감았다. 나는 마음 조각과 숲은 상상하지 않았지만 겉모습은 그럴 듯하게 따라했다. 달래와 정은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여섯 단계를 다 깨우쳐야 일곱 단계를 갈 수 있다고 말해줬다. 첫 체험은 무료지만 다음부터는 오만원씩 내야 했다. 친구들의 손을 잡고 건물을 빠져나오는 건 정은이었다. 명상 중에 쫓겨나듯이 나오는 바람에 나는 명상을 열심히 해서 7단계를 가겠습니다.”라는 말을 급하게 지도자에게 해야만 했다.

 

너네 저런 걸 믿는 건 아니지?”

순 사기꾼이야. 우리는 믿음이 없으니까 괜찮아. 우리 팀이라서 다행이다. 그치?”

 

정은은 우리의 리더였다. 정은이 리더를 하고 싶다고 말한 적은 없었지만 그 누구도 반대 한 적도 없었다. 나는 믿음이 가장 없기 때문에 적당하다고 생각했고, 달래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정은의 말을 잘 들었다. ‘잔반 남기지 않기 협회라든지, ‘유에프오 연구소라는 낯선 간판이 붙어 있는 헌 건물에 들어가기도 했다. 문을 두드리고 안을 들여다보거나 말을 걸어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항상 기대했던 것 보다는 별 것이 없었다. 천연 숯 염색 방에 들어가서 셋이 함께 염색을 하기도 했다. 그런 일을 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 기분을 느꼈다.

엄마와 차를 타고 집을 돌아갈 때면 교회에 대한 죄책감이 다시 찾아오기도 했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면 그런 것을 까먹어버리곤 믿음 없는 사람을 자처했다. 우리의 활동은 안정적이었다. 정은에게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문자를 보냈고 정은은 적당히 우리의 의견을 종합해서 우리를 데려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은에게 문자를 보낸 날이었다.

 

-정은 다음 주에 우리 바다 갈래? 아니면 새로 생긴 다이소 구경 갈래? 그것도 아니면 뭐하지? 재밌는 생각 있어?”

정은은 문자를 읽으면 빠르게 답장을 주는 편이었다. 하루가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아서 하나의 문자를 더 보냈다.

 

-리더 문자 읽어

 

문자를 보내자 마자 답장이 도착했다.

 

-미안. 나 예배 드려야 될 것 같아.

-아빠가 가래?

 

정은에게서 그에 대한 답장은 오지 않았다. 뭔가 이상했다. 달래에게 문자를 했다. 정은의 뒷담화를 하고 싶은 마음도 약간은 있었다.

 

-달래 이번주에 뭐할래? 정은이는 예배 드리러 가야 된대. 아빠 때문인듯?

-미안. 나 이번주에는 예배 드릴래

-너는 왜?

 

달래에게서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달래와 정은이가 예배를 가는 빈도가 잦아졌다. 뭔가 수상했다. 혼자서 클럽 활동을 할 수는 없었다. 예배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달래는 가장 첫 줄에 앉아 있었다. 첫 줄은 찬송대원을 하는 아이들만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전도사님은 달래가 이번주부터 찬송대원으로 함께 하겠다는 이야기를 붙였다. 정은이는 달래 바로 뒷줄에 앉아 있었다. 나는 가장 끝에서 둘을 지켜보았다.

 

전도사님은 다니엘서의 한 구절을 읊었다. 한 주 동안 가장 하나님께 감사했던 순간을 물어보기도 했다. 지목하지도 않았는데 달래가 먼저 손을 들었다. “이 자리에 오신 것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달래가 너무나도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정은이는 달래 옆자리에 앉은 남자애를 쳐다보고 있었다. 갈색의 북실북실한 머리를 가진 비쩍 마른 애였다. 그 남자애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달래는 잘생긴 남자애가 우리 교회에 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기도할 때 옆 얼굴이 정말 날카롭게 잘 생겼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달래의 이야기보다 실물은 그렇게 잘생기지는 않았다. 나는 그 남자애를 푸들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푸들은 모태 신앙이고 꽤 독실해 보였다. 교회로 오자마자 자진해서 찬송대원을 지원했다고 하니 말 다했다. 푸들은 우리와 동갑이었다. 아빠가 회사를 옮긴 탓에 이사를 오게 되었고 우리 교회에도 다니게 되었다. 교회 근처의 중학교를 다니고 집도 교회 맞은 편의 아파트였다. 달래는 그렇다 쳐도 말 한마디도 없던 정은 마저도 푸들을 좋아하게 된 것은 믿을 수 없었다.

 

달래는 발표가 끝난 뒤에 자리에 앉아서 푸들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푸들도 뭐가 좋은 지 웃고 있었다. 고작 한 명의 남자 때문에 이 클럽이 없어질 정도라면 이런 모임은 없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달래와 정은이 미웠다. 이 모든 건 푸들 때문이었다. 남자애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소리를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이 개새끼야 너 같은 애는 교회에 없어야 해 당장 가버려

입으로만 벙긋거리면서 욕을 하는 건 꽤 통쾌했다. 나는 마음껏 미워할 수 있었고 그 애는 사실을 모르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이 클럽은 정말로 무너진 것처럼 보였다. 정은과 달래의 사이가 나빠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달래와 정은은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고 말을 걸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보내던 문자 메시지도 오고 가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은 주일에 예배당에 들어가 남자애의 뒤통수에 대고 욕을 하는 게 전부였다. 몇 주동안은 사이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이전에 약속해둔 부산 여행을 간다면 다시 사이가 좋아질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는 여행의 이름을 여름맞이 부산 임원진 회의로 지어 붙였다. ‘여름맞이 부산 임원진 회의는 정은이 제안했다. 5월에 교회 창문에 황사가 불어 먼지가 가라앉은 걸 한참 보던 정은이 뜬금없이 여행을 가자고 말했다. 성경학교를 가는 날짜에 맞추어 부산으로 워크숍을 가자는 것이었다. 원래 교회 성경 학교는 김해에 있는 교회들이 다 함께 수련회장을 대여해서 23일동안 예배를 한다. 부모님에게 성경학교를 가는 척 거짓말을 하고 부산에 가는 것이었다. 클럽의 임원진으로서 성경학교보다 부산에 여행을 가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는 쪽지에 동그라미를 크게 그리고 제출했다. 동의의 의미였다.

 

이 들킬 게 뻔한 터무니없는 계획은 나름대로 꼼꼼한 기획이 있었다. 1.아침에 모두가 잠든 시간에 집에서 나온다. (성경학교에 간다는 쪽지를 남기고) 2. 우리 셋은 교회 앞에서 무사히 만나서 사진을 찍는다. 3. 찍은 사진을 가족에게 보내고는 휴대폰을 끈다. 4. 그리고 시외버스를 타러 간다. 그렇다면 적어도 몇 시간은 벌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 부산에 가서 들킬 때까지 논다. 이런 계획이었다. 나는 취침은 10시가 넘어도 청소년을 적발하지 않는 부산의 찜질방을 세 곳 정도 메모해 두었다. 이런 계획은 한 통의 문자 메시지로 무너졌다.

 

-나 가족 여행가서 부산에 못 갈 것 같아. 미안

 

성경학교 이틀 전에 온 달래의 문자였다. 그 당일 날 아침에는 정은에게 문자가 왔다.

 

-미안 나 오늘 아파서 부산 못 갈 것 같아.

 

달래와 정은에게 문자 두 통을 받고 휴대폰을 껐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눈물이 났다. 얼굴 옆으로 맺힌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숨을 크게 쉬었다.

 

하나님. 달래와 정은이랑 싸우지 않게 해주세요. 예전처럼 같이 놀 수 있게 해주세요. 사이가 멀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누가 시키지 않고 스스로의 입에서 아멘이라는 단어를 내뱉는 건 처음이었다. 한 음절 한 음절을 끊어서 읽었다. 하나님이 어쩌면 들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스스로의 모습이 우스웠다.

 

가만히 누워서 반복해서 기도를 읊어도 밤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오래도록 누워 있어도 잠이 오지 않았다. 바보 같은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안 좋은 생각만 반복해서 지나갔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창문 밖이 어두워 질 때쯤 엄마가 문을 열었다.

 

박지해! 엄마가 이상한 애들이랑 놀지 말라고 했지?”

 

엄마는 화난 말투였다. 말의 속도도 빨랐다.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화난 목소리를 들으니까 서러운 기분이 들었다. 괜스레 눈물이 더 났다.

 

? 무슨 일 있어?”

뭘 잘했다고 울어? 그럼 무슨 일 있지. 교회에서 네 친구들이 싸웠단다. 머리채 잡아 뜯고 난리도 아니야. 우리 교회만 있는 것도 아니고 교회 열 개가 넘게 있는 데 싸운 건 우리 교회 애들 뿐이야. 앞으로 부끄러워서 성경학교를 갈 수가 없어.”

 

침대에서 몸이 일어나졌다. 너무 뜻밖의 소식에 눈물이 멈췄다.

진짜로? 엄마. 달래랑 정은이가 성경학교를 갔다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달래와 정은의 모습을 상상했다.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 문자를 보내는 둘의 모습부터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모습까지 영화처럼 스쳐 지나갔다. 버스에서 우연히 둘은 눈을 마주쳤을 것이다. 달래는 어쩌면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었을 지도 모르고 정은이는 무시했을 수도 있다. 푸들의 옆자리에는 누가 앉았을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푸들 때문이었다.

 

다음 주에 교회에 나갔을 때는 달래도, 정은도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예배드릴 때 옆에 앉아 있던 여자애가 너네 친구들은 교회 안 온대?” 물어보는 걸 듣고 나서야 내가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자애는 그 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줬다. 그 날 달래와 푸들은 이상하리만큼 붙어 다녔다고 말했다. 푸들이 정은에게 말을 걸 때면 달래가 노려봤다. 달래와 정은의 사이가 묘해서 친한 줄 알고 있었던 중고등부 사람들도 당혹스러웠다. 그러던 중에 예배 시간에 둘이 속닥거리더니 정은이 달래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달래도 정은의 손을 뿌리치며 때렸고 주변 사람이 말려도 말을 듣지 않았다. 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인 성경 학교는 우리 교회 때문에 잠깐 예배가 중단되었고 둘은 그 날로 교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성경학교를 끝냈다고 했다. 말을 다 듣고 나서 예배 시간 첫 줄에 혼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는 푸들의 뒤통수가 보였다.

 

정은과 달래는 교회로 다시 나오지 않았다. 정은의 부모님도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다른 교회로 옮겼다고 했다. 나만 혼자 예배당에 앉아 있었다. 예전에는 이럴 때 뭘 하면서 시간을 보냈더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말씀을 지루했고 기도는 재미가 없었다. 전도사님은 공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했다. 주보에 그림만 잔뜩 그렸다. 엄마는 예배당에 얌전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 했다. ‘믿음 없는 클럽활동 전에는 어떤 시간을 보냈더라. 주변을 둘러봤다. 몇 년전에 처음 왔을 때와 학생들 수는 비슷했다. 30명 가량의 아이들이 예배당에 있었다. 조금 줄은 것 같기도 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았고 나보다 어른 아이들도 꽤 많았다. 원래 알던 얼굴들 중에 사라진 사람들도 많았다. 교회를 그만 다니기로 마음 먹은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이사를 간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정은이와 달래도 없었다. 그래도 예배는 진행되었다. 다른 아이들에게 정은이와 달래가 없어진 것은 큰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성경학교에서 싸운 일은 가십거리로 종종 들렸지만 다른 이야기들에 묻혀 넘어가고 있었다.

 

달래와 정은이가 없는 사이에 다른 중고등부 아이들과 꽤 친해졌다. 믿음에 관한 이야기만 아니면 말도 꽤 잘 통했다. 달래와 정은의 싸움에 대해 얘기해준 여자애와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 학교 성적이나 진로에 대한 이야기, 평범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친구들이 없어도 교회를 갈 만했고, 그 전만큼 교회를 가는 것이 싫지도 않았다. 간혹 달래와 정은의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마지막의 추억을 생각하면 문자를 입력하려던 손도 멈춰졌다.

 

*

정은과 달래가 없는 교회에 점차 익숙해지던 때에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발신자 제한 번호로 온 전화였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 교통 사고 당했어. 병문안 와.”

 

부산의 어떤 대학 병원이라고 했다. 정은은 저번주에 자전거를 타고 도서관에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큰 덤프 트럭이 정은의 자전거를 덮쳤다. 정은은 용수철처럼 하늘을 향해 몸이 솟구쳤다. 그 뒤로는 어떤 기억도 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거라고는 정신을 차렸을 때 눈 앞이 온통 하얀 색이라는 것뿐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드라마처럼 한 손에는 진료 차트를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안경을 올리며 정신이 좀 드세요?” 라는 말을 했다. 그제서야 자신이 아프다는 걸 알았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달래에게 전하기는 뻘쭘하니 말을 전해주고 같이 오라는 말도 덧 붙였다.

 

달래는 정은의 사고 소식에 깜짝 놀란 목소리였다. 울먹거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버스를 환승해서 병원 앞으로 도착했다. 달래는 병원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정은이 병실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달래와 가만히 앉아 있었다. 정은에게 전화를 걸자 정은의 벨 소리가 멀리서 작은 소리로 들려왔다. 소리는 점점 커졌다. 정은과 건물 앞에서 마주쳤다. 휠체어를 타고 있지도 죽기 직전도 아니었다.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며 걸어왔다.

 

나 거짓말 친 거 아니야. 교통 사고 나기는 했어.”

 

정은은 인사를 하기도 전에 변명하듯이 말했다.

 

덤프트럭?”

아니 그냥 자전거. 그런데 넘어져서 아팠어. 다리도 부러졌고.”

정은의 목발을 아무 말없이 바라보았다. 붕대가 감겨 있었고 그 위로 파란 색의 보조기가 있었다. 겨드랑이에는 한 쌍의 목발을 짚고 있었다. 정은은 여느 일요일과 다름없는 말투로 말했다.

 

나 앉고 싶어. 우리 빙수나 먹으러 가자.”

 

달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 옆에 작은 빙수집에 들어갔다. 다섯 개 정도의 메뉴가 있는 조그만 빙수 집이었다. 계단이 높지는 않았지만 입구에 다섯 개 정도의 계단이 있었다. 달래와 각자 한쪽 팔을 잡아서 부축을 해주었다. 정은은 절뚝거리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빙수가게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일층에 나무로 된 책상과 의자들이 있었다. 정은은 지갑을 꺼내서 망고 빙수 하나를 결제했다. 의자에 앉자마자 우리 사이에는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달래는 정은의 눈치를 보더니 입을 뗐다.

 

나 걔랑 몇 달 안 사귀고 헤어졌어. 진짜 별로더라

는 분명 푸들일 것이다. 소문으로만 돌던 달래와 푸들의 연애는 사실로 밝혀졌다.

100일 사귀었나? 내가 교회 안 가니까 매주 교회 가자고 조르는 거 알지? 내가 그러고 어떻게 교회를 가겠어 쪽팔리잖아.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믿음이 신실한 애는 또 처음 봤어. 데이트 할 때마다 기도하고 만나자고 했다니까. 키스할 때 허리를 잠깐 만졌는데 내 손을 밀쳐내는 거 있지?”

 

혼자서 말을 이어가다가 달래는 어색하다는 듯 혼자 웃었다. 달래는 머쓱할 때 말이 많아진다. 정은이는 달래의 말을 끊었다.

 

빙수나 먹자

나는 볼에 가득 빙수를 집어넣고 먹는 달래와 얼음 위에 망고를 얹어 먹는 정은을 쳐다보았다.

우리 이제 화해하는 거지?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 더 이상의 남자는 없어. 알았지?”

 

달래는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 순수함이 달래의 장점이기도 했다.

 

남자친구는 아예 사귀면 안돼?”

그래도 정 사귀고 싶으면 사귀어도 돼

 

내 대답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이전의 관계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예전 같은 시절이 다시는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은은 성경학교에서 머리를 뜯고 싸우는 딸이 부끄럽다는 아빠의 말과 함께 다른 교회로 옮긴 뒤였고, 달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부산의 예술 고등학교 입시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달래는 부산에 있는 기숙사에서 살았다. 우리가 없으면 달래는 교회를 다닐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다시 교회에서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믿음 없는 클럽은 해체하지 않았다. 몇 년을 만나지 않아도, 일년에 한 번 정도 연락을 하는 사이라고 해도, 누군가 친한 친구가 있냐고 물을 때면 달래와 정은을 생각했다. 단짝 친구라는 단어는 달래와 정은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믿음 없는 클럽은 재 결성 이후에 두 번 모임을 가졌다. 정은은 다리가 부러진 이후에 믿음이 공고해졌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믿음이 굳어진다.’ 와 같은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정은의 아버지는 신학대학을 무사히 졸업했고, 정은은 교회에서 전도사 아버지 밑에서 앞 자리에서 말씀을 듣고,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탈하지 않는 성도로 자라났다. 고등학교가 지나고 청년부에서는 회장까지 맡았다.

 

그 사이에 달래는 그림을 그렸다. 달래가 예술적인 감각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다. 우리의 포스터를 곧장 잘 그렸고, 교회 벽에 색이 잘 드는 돌멩이로 낙서를 할 때도, 주보에 낙서를 할 때도 항상 재능 있었다. 그런 재능을 뽐내듯이 짧은 입시 준비기간에도 50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시각디자인으로 유명한 여자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정은은 종종 우리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그 중 몇몇의 전화는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아프리카로 이민을 갈 거라는 전화가 온 적도 있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우리가 만나지 못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는 협박 같은 말에 우리는 쉽게 홀렸다. 리더의 말은 꽤나 효과적이었다. 다른 사람이 만나자고 전화를 할 때는 만나지 못했지만, 정은이 말을 할 때면 이상하게도 전국 어디에 있든 위치가 우연히 겹쳤고, 시간이 우연히 비었다.

 

정은은 항상 후회했다. 교회에서 머리채를 잡고 싸운 일이나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방황했던 일들을 한낱 철없을 때의 실수로 여기는 것 같았다. 정은은 너희들과의 추억은 소중하다고 대답했다. 우리의 추억이 실수처럼 생각될 때면 서운한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성경학교에서의 사건이 정은에게 미쳤을 영향을 생각했다. 성경학교를 가지 않은 나 에게도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 일인데 정은에게는 더 컸을 것이다. 정은이 옮긴 다른 교회에서는 모범적인 모습을 보였다. 아버지는 그런 정은을 기특하게 여겼고, 자신의 뒤를 이어 목회자의 길을 걷기를 바랐다. 정은은 목사님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겠다며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지방 전문대학교의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에는 더 많은 시간을 교회에서 보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와 자신 교회의 몇몇 청년, 그리고 늦게 전도사가 된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함께 갈 것이라는 계획을 말했다.

 

예전과 같지 않았지만 과거의 추억이라는 공통점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자리는 재밌었다. 정은은 달래와 나의 집으로 소포를 보내줬다. 코끼리 모양의 나무 조각상과 가죽 신발, 그리고 나무 목걸이 같은 무용하지만 기념이 될 만한 의미가 있는 제품이었다. 겉 봉투에는 보내는 이와 함께 보내는 이의 주소가 적혀 있었다.

 

-이정은. 경상남도 김해시 율하로 21-35 801.

 

정은의 코끼리를 책상 위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올려 두었다. 책상에 앉아 있을 때마다 코끼리가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목걸이는 보석함에 넣어두었고 가죽 신발은 신발

장안에 넣었다. 그 뒤로는 정은이 결혼식을 한다는 말을 전할 때까지 만난 적 없었다. 달래와 정은이를 둘이서 만난 적도 없었다. 간단한 안부를 묻는 전화를 일년의 한 두차례 할 때도 있었지만, 학교 친구들을 만나고 애인을 만나고, 자신의 일을 하다 보면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되지는 않았다.

 

*

아몬드 모양의 반짝이는 샹들리에가 빛을 받아서 반짝거렸다. 정장을 입은 여자가 큰 나무 문을 열었다. 반짝거리는 샹들리에 아래에 정은의 얼굴이 보였다. 정은의 동그란 이마도 빛을 받아서 반짝거렸다. 그건 조금 웃겼다. 마른 몸을 두 배는 키워주는 부피가 큰 웨딩드레스를 입고 한 발 자국씩 버진로드를 나아갔다. 전도사 아버지는 정은의 왼 손을 잡고 한 발자국씩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아까 문을 열었던 여자는 웨딩드레스의 끝자락을 잡고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길의 끝에는 앞서 입장한 남편이 서 있었다. 입꼬리를 올리고 웃고 있었다. 화장을 받아서 하얘졌을 남편의 둥근 볼도 반짝거렸다. 정은이가 예뻐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달래는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남편 얼굴이 쿠키 반죽 같아. 넙적해. 우리 정은이는 예쁜데. 정은이가 아깝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더 작은 목소리로 달래의 귀에 속삭였다.

 

버진로드를 사뿐 사뿐 걸어가는 정은의 발걸음에 끝에는 남편이 있었다. 정은이 어떤 신발을 신었을 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알고 싶었다. 이런 날에 정은이가 어떤 신발을 신을 지가 궁금했다.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십시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언약을 통해서 둘이 아닌 하

나가 되는 것이 부부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려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말하노라 에베소서 53132.”

 

정은의 교회 목사님이 주례를 보는 동안 달래는 내 귀에 내내 이야기했다. 박수를 치라고 하면 박수를 치고 사진을 찍을 때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불만사항을 반복해서 이야기했다.

 

지해야. 나 어떡하면 좋지? 이 결혼식의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성경책을 손에 들고 남편에게 건네면서 목사님은 마저 말을 이었다.

 

부부의 연으로 하나님 앞에서 가장 진실된 부부가 되기를 바랍니다. 남편은 가정의 머리로

서 이끌고 아내는 도우며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남편 정하람군은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하고 아내 이정은양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부부는 기쁠 때나, 상황이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돈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젊을 때나 늙을 때나 함께 해야 합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하나님 안에서 사랑하십시오.”

 

정은은 남편과 네! 라며 짧고 정확한 발음으로 대답을 했다. 이제 저들은 진짜 부부가 되는

구나 생각했다.

 

가정의 머리인 남편과 순종하는 아내는 한 마디도 바뀌지가 않네. 내가 가본 모든 결혼식이다 그랬어.”

우리 정은이는 순종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야 되는데

 

달래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나이도 9살이나 많고, 못생기고 뚱뚱하고가진 건 믿음 하나뿐인가?”

 

나는 달래의 말에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으면서 뒤통수를 향해 째려보며 입모양으로 외쳤다.

 

나쁜 놈아 좋은 말 할 때 정은한테 잘해라.”

 

결혼 예배가 끝나고 기도할 때는 함께 손을 모았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언제나 함께 사랑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목사님이 기도할 때 나도 손을 모아서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가 늘 함께 마음속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함께 우리 있음을 지켜주는 것 감사합니다. 많은 아픔이 있어도 정은이가. 달래가 행복하게 해주세요. 특히 정은 이가 항상 원하는 것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눈을 뜨자 달래가 옆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달래와 결혼식 뷔페를 갔

. 뷔페에서 가장 크고 비싸 보이는 게를 집어서 발라 먹었다. 그런 대로 게는 크고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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