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엄정한 형벌이 아닌 다방면의 논의가 선행돼야
[사설]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엄정한 형벌이 아닌 다방면의 논의가 선행돼야
  • 한대신문
  • 승인 2023.11.20
  • 호수 1575
  • 7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달 30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도입을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현행법상으론 무기 징역을 선고받더라도 20년 이 상 복역 시 가석방이 가능하지만, 개정안에선 법관이 무기형을 선고할 때부터가석방여부를명시할수있도록한것이다.법무부장관은지난 8월 가석방 가능성에 따른 국민 불안을 막고 흉악범 처벌 강화를 위해 정책을입법한다고밝힌바있다.그러나 해당 법안은 여전히 범죄 예방을 위한 실효성 문제와 자유권 침해 등 위헌소지가 있음에도 통과돼 성급히 마련된 땜질식 개정안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우선 가석방 없는 종신형과 같은 엄벌주의 정책은 범죄 억지력에 직접적인 효과가 없다. 실질적 사형폐지국인 우리나라보다 지역 대부분에서 사형제를 실시하고 있는 미국의 범죄율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2020년 우리나라의 *살인 범죄 발생비는 0.6명인 반면 미국에선 6.5 명에 달했다. 또 지난 2010년 하계 학술대회에서 한국형사법학회가 출 소자3만여명을대상으로한조사에따르면,처벌수준이15년이상높 아져도 재범 억제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처벌의 수위를 높인다고 해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단 전망은 매우 회의적이다. 법무부는 범죄예방을 위해 강력한 처벌이 답이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

심지어 현 개정안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권과도 충돌한다. 헌법 제37조 제2항에선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의 본질적인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수형자의 사회 복귀를 원천 봉쇄하며 인간의 기본적인 신체적·정신적 자유를 침 해한다. 실제로 △독일연방헌법재판소 △우리나라 헌법재판소 △유럽 인권재판소 등에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범죄자의 인권을 침해한단 것과 이들에게도 다시 자유를 향유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지적한 바있다. 이처럼 최전선에서 법을 수호해야 할 법무부 장관이 헌법에 위배되는 개정안을 해결책이라고 들고 나와선 안 된다.

효과없는 피의자에 대한 엄벌을 외치기에 앞서 정부는 범죄자의 교화를 위한 해결책을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교정 시스 템은 궁극적 목표인 재사회화를 달성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이다. 법 무부에 따르면 수용자 재범률은 10년째 22~24%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범죄자들은 가둬놓기만 하는 옛날 방식과 실효성 없는 교화 프로그램들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재범률을 낮추고자 한다면 범죄자들에 대한 교화 방안을 체계적으로 마련하는데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곧 피해자와 사회 모두를 지켜내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국가가 강력범죄에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방향성에 대해선 충분히 재고돼야 마땅하다. 엄벌주의를 보이는 정부 당국의 태도는 시민의 분노를 범죄자에게 돌릴 수 있을지언정,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함을 깨달아야 한다.


*살인범죄발생비:인구10만명당살인건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