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들의 공부가 즐거워지는 날까지 쓰는 글
모든 아이들의 공부가 즐거워지는 날까지 쓰는 글
  • 박정민 기자
  • 승인 2023.11.20
  • 호수 1575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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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데 정해진 나이는 없다. 불혹의 나이에 사표를 내고 동화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서지원<국어국문학과 87> 동문은 아이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이야기꾼이 됐다. 「어느 날 우리 반에 공룡이 전학 왔다」로 시작된 동화 작가의 길은 베스트셀러의 연속으로 이어졌다. 또한 수학 동화책 집필은 그를 교과서 집필자의 길로 이끌기도 했다. 교육과 재미를 모두 잡은 동화 작가 서지원 동문을 만났다.


진심으로 좋아하면 생기는 일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는 서 동문. “글을 잘 썼다기보다는, 글 쓰는 게 좋았어요.” 책을 좋아하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책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그가 나고 자란 고향에선 어린이책을 쉽게 구할 수 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집에 있는 어른들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무렵 글쓰기에 눈을 떴다. “이전까진 성적도 형편없었는데, 갑자기 학업 능력과 글쓰기 실력이 수직으로 상승하기 시작했어요.” 어쩔 수 없이 어려운 책들을 읽었던 경험이 그를 대기만 성형 인재로 이끈 것이다. 서 동문은 이후 성장 과정에서 어떤 지도도 없이 홀로 글쓰기 인재로 자라났다.

그는 글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긴 어려울 것이란 생각에 고등학교 때까진 이공계를 택했지만 여전히 글쓰기를 좋아했다. 결국 서 동문은 대입을 앞두고, 대학 진학 상담을 계기로 전공 방향을 틀었다. “수험생 때처럼 재미없는 생활을 평생 하는 것보단 하고 싶은 것을 배우고 사는 게 훨씬 행복할 것 같더라고요.” 그리하여 이공계 학생이었던 그는 우리 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하게 된 것이다. 대학에 입학해서 “작가가 되고 싶어 국어국문학과를 선택했다면 잘못 왔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절망했지만, 서 동문은 대학에서의 배움이 훗날 직업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당시엔 쓸모없을 것 같던 언어학 수업도, 나중엔 인물의 사고방식을 정리하고 규정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됐어요.” 또한 서 동문은 사회 변동이 격렬했던 80년대 후반 시대상의 영향으로 사회적인 고민도 많았다. 그는 우리 학교 재학 중,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심층적으로 다룬 소설을 창작해 한양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이후 대학교 3학년 때 <문학과 비평>을 통해 소설가로 등단한 작품 역시 실제 사건인 ‘내 귀에 도청 장치’를 모델로 쓴 추리소설이었다. “시도, 소설도, 무수히 많은 습작도 썼지만 작가가 되고 싶어서라기보다 늘 하던 사회적 고민으로 한 일이었어요.”

한편 타자기로 글을 쓰던 그에게 컴퓨터의 등장은 진로 방향을 흔들 만큼 큰 진동이었다. 키보드의 매력에 빠진 서 동문은 발품을 팔며 하드웨어부터 배우기 시작해 소프트웨어까지 컴퓨터를 독학했다. “글쓰기 이후 처음으로 생긴 관심사예요. 어느새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러, 이 직종에서 글을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졸업 후 IT 전문 기자로 나아가게 된 그는 국내엔 몇 없는 IT 전문인이 되어 미국 잡지 한국지사와 유명 컴퓨터 잡지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다. 이어서 잡지를 내던 출판사에서 편집자 경험도 지낸 서 동문은 훗날 작가로서 활동하는 데 있어 이러한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표지에 이름이 쓰여 있다고 온전히 작가의 책이 아니라, 뒤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해요. 출판 과정을 잘 알고 있으니 가장 효율적인 결과물을 낼 수 있고, 편집자와의 갈등도 생기지 않아요.”

착실한 직장인으로 지낸 그가 동화 작가로 전향하게 된 것은 어느 날 밤에 문득 든 생각 때문이었다.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저 자신이 없더군요. 회사가 아니라 나를 위해 노동을 하고 싶어졌어요.” 한 번 시작된 고민은 해결되지 않은 채 그에게 마음의 병을 안겼고, 긴 고민 끝에 그는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서른아홉 살 12월 31일이었어요. 넉 달이 넘게 반려되었던 사표가 받아들여 졌고, 새해의 시작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아픈 게 사라지더군요."


우연인 듯 필연의 연속

처음엔 동화 쓸 생각이 없었단 서 동문이 계속 써오던 소설과 시 대신 동화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자녀의 영향이 컸다. “아이와 대화하고, 아이의 일기장을 몰래 읽는 게 참 재밌었어요. 그러자 어린이를 위한 동화책을 만드는 것도 즐거워졌죠.” 그에겐 자극적인 성인 대상 소설보단 순수한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는 게 마음이 편안했다. 일주일 밤을 새워 쓴 첫 책은 「어느 날 우리 반에 공룡이 전학 왔다」로, 작품 속 공룡은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이들을 상징하고 있다. 그의 진심이 닿았는지 해당 작품은 다음 해 <책 읽는 서울 올해의 책>으로 선정돼 많은 교육기관에서 공연과 연극으로 상연됐고,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이어서 써낸 작품들도 줄줄이 화제가 돼 지금도 여전한 인기를 끌고 있다. 동화 작가로 전향하며 그에게 제2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 서 동문의 첫 작품 「어느 날 우리 반에 공룡이 전학왔다」 표지이다.
                               ▲ 「어느 날 우리 반에 공룡이 전학왔다」가 역할극으로 상연된 모습이다.


그가 작가를 시작할 당시엔 어린이를 위한 수학 동화책이 많지 않았다. “내 아이들부터 수학을 동화책 보듯 즐겁게 공부하게 해주고 싶단 마음으로 수학 동화를 쓰기 시작했어요. 수학을 동화로 스토리텔링 한다는 건 기존에 거의 없었던 시도였기에 많은 공부를 해야 했죠.” 공들인 도전이 크게 성공하며 서 동문의 수학 동화는 시리즈물로 거듭났다. “그러던 중 교육부로부터 초등 국정 수학 교과서를 집필해 달란 요청을 받았어요. 교육부에서 스토리텔링 기법을 사용하기로 했는데, 기존의 집필진들만으론 어려운 일이었대요.” 그가 지난 2011년에 시작한 교과서 집필은 현재까지 12년째 쉼없이 이어지고 있다. 서 동문은 “교과서는 학습 목표가 뚜렷하다 보니 다의성을 가진 동화책에 비해 예술성이 부족해 아쉬웠어요. 최근 초등 교과서가 통일된 국정 교과 서에서 선택지가 늘어난 검정 교과서로 전환돼 기쁩니다.”라며 앞으로도 교과서 체계가 더욱 유연해져 자유로운 교과서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그는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에서 영어 동화책도 출간했다.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는 그동안 제가 쓴 동화책과 교과서 집필 등을 보곤 20권의 책을 청탁했어요.” 이후 3년에 걸쳐 「 Oxford Path Maths Adventure」라는 수학 창의 동화책을 영문판으로 출간했고, 지금도 해외 여러 나라에서 판매 중이다. 교과서를 집필하게 된 것도, 옥스퍼드에서 책을 내게 된 것도 모두 자신이 계획하지 않은 우연의 연속이었다는 서 동문은 “무엇이든 사랑하는 일을 찾아서 뜨거운 열정으로 산다면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가능성의 길이 열리더라고요.”라고 전했다.


그가 동화를 쓰는 이유

서 동문이 동화를 쓰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다름 아닌 ‘교육’이다. “아이들의 욕망에는 자연스레 부모의 욕망이 비치기에, 아이들은 부모님께 사랑받고 싶고 공부를 잘 하고 싶어해요.” 그는 아이들의 바람을 동화라는 매체로 이뤄주고 싶은 마음이다. “출판사의 원고 의뢰에는 정확한 대상 연령이 표기돼있는데, 특히 교육 동화를 쓸 땐 연령별 아이들 특성 숙지가 더욱 중요해요. 아이들은 성장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각자 나이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거든요.” 효과적인 교육 동화를 쓰려면 그 나이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야 한다는 서 동문은 “소재를 찾을 때,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하다 보면 대부분 유년기에 비슷한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자신의 옛 기억들도 같이 살아나요.”라 덧붙였다.
 

                                ▲ 서 동문이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독자와의 만남을 진행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교육 동화와 교과서 집필 과정이 요리와 비슷하다고 전했다. “맛없고, 먹기가 괴롭지만, 꼭 먹어야 하는 재료를 맛있게 요리해야 하죠. 지식과 학습을 맛있게 요리해 주는 것이 스토리텔링입니다.” 그는 지식을 스토리텔링 한다는 것은 더 쉽고 재미있게, 그래서 기억에 남고 누구나 읽을 수 있게 만들어서 지식을 대중화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해 캐릭터를 중요시하는 그는 주인공이 아이들의 공감을 얻어내길 바란다. “저는 불완전한 캐릭터가 좋아요. 제가 쓴 영웅물 중엔 학교에선 실수도 잦고 칭찬 한 번 못 받아 본 아이가 몰래 영웅 역할을 하는 내용도 있어요.” 완벽한 우상 같은 인물보단, 아이들의 시각에서도 해낼 수 있단 생각이 드는 캐릭터가 오랜 시간 서 동문이 사랑받아 온 비결이다.

내내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또 잘해온 서 동문이지만 글 쓰는 과정은 항상 순탄치 않다. “내가 가진 감정을 글자로 표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주인공이 슬픈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독자를 울려야 하죠.” 지금껏 300권이 넘도록 많은 책을 써낸 그 역시 매번 쓸 때마다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맛은 무(無)맛이란 그는 “스트레스가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거든요. 이를 즐기느냐, 회피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맛있게 요리가 될지, 무(無)맛이 될지가 결정되는 거예요.”라 덧붙였다.

그런 서 동문에게 동화를 쓰는 과정 중 영감의 원천을 묻자, 그는 “작가는 기억의 우물을 갖고 살아요.”라 답했다. 기억의 우물에서 길어 올린 기억의 잔상들로 글을 쓴단 그는 우물이 마르면 글을 쓸 수 없다고 전했다. “그 우물이 마르지 않도록 특별한 관리를 하죠. 햇빛이 들어오지 않게 두꺼운 커튼을 치고 비 오는 소리를 틀어놓는다던가, 일 년에 한 번씩 인도의 명상 마을에 다녀온다던가, 무작정 여행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 서 동문이 서울경동초등학교에서 강연하고 있다.



글 쓰는 사람의 역할이란

현재 난독증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와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는 서 동문. “교육 소외 계층 어린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난독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또한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 출신 교수와 함께 이공계 학문을 인문학과 융합시키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 “틀에 갇힌 지식이 아닌,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창의성의 바탕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 겁니다.”

그는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작가를 넘어 ‘창작가’가 돼야 한다고 전했다. “책을 글로만 쓰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지금은 디지털 콘텐츠가 다양한 방면으로 확장돼 있으니까요. 사실 책을 쓴다는 건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내는 행위예요.” 그는 사람들이 경험하고 싶어 하는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진짜 노동과 가짜 노동을 구분하고,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노동’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자신을 위한 노동이 인생을 가치 있고 행복하게 만들 거예요.”

후배들을 만나면 ‘이대로도 잘하고 있다’는 격려를 해주고 싶다는 서 동문. 그는 “완벽한 나라는 건 허상일 뿐이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자고 말하고 싶습니다.”라며, 우리가 산다는 건 아름답고 착한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갖고, 마음껏 사랑하는 것이란 말을 남겼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글을 쓰지만, 실은 세상 모든 이들의 행복을 바라는 서 동문의 우물은 영영 마르지 않을 것이다.
 


사진 제공: 서지원 동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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