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과거에서 온 편지
[취재일기] 과거에서 온 편지
  • 이지원 기자
  • 승인 2023.11.20
  • 호수 1575
  • 6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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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원 대학보도부 차장
                                                                                 ▲ 이지원 <대학보도부> 차장

처음 신문사에 발을 들이며, 이곳에서 기자의 꿈을 모두 펼치겠다고 당당히 자부했다. 고난의 방중회의와 셀 수 없는 발간을 거치고 나니 녹음이 지고 해가 짧아졌다. 시간은 정말이지 순식간에 스쳐갔다. 기획안 하나를 완성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수습기자는 한 학기의 정기자 생활을 거쳐 어느덧 한 부서의 차장이 되었다.

차장이란 새로운 역할이 생기자마자 가장 처음 작성한 기사를 펼쳐 보았다. 갓 수습기자 딱지를 뗀 필자는 본지 가장 높은 곳에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까!”라고 당차게 적어두었다. 어색한 표정으로 찍은 증명사진 아래, 수십 번의 퇴고 끝에 적어내린 글을 보며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정말 꺾인 적 없었냐고.

당연히 거짓말이다. 꺾이지 않기 위해 배에 힘을 주고 심지 있게 버티려고 했지만, 힘든 학보사 생활이 필자를 가만 두지 않았다. 번번이 반려된 기획안은 차곡차곡 쌓여 모니터를 가득 채우고, 마음엔 한 틈의 빈 공간 없이 조바심과 두려움이 가득 들어찼다. 인터뷰가 되지 않아 날아가기 직전의 기사를 붙들고 선잠에 들며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기도를 올리기도 했고, 열심히 준비한 기사가 조판 당일에 날아가는 악몽이 학기마다 반복됐다. 동료들의 한숨이 모두 필자를 향하는 것만 같았다.

더 잘 하고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현실과 역량의 벽이 필자를 가로막았다. 저 너머로는 정말 ‘성공할’ 사람들의 영역 같았다. 불안과 조바심에 전부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단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 어느 날 필자에게 과거에서 온 편지가 도착했다. 패기의 정기자가 오늘의 필자에게 보낸 안배였다. 과거의 필자는 그곳에 “그럼에도 한대신문을 포기할 수 없다”고 적어 두었다. 이제 와서 과거의 ‘이지원 기자’에게 되묻고 싶다. 아무것도 모르는 갓 새내기 기자가 뭘 알아서 한대신문을 포기할 수 없다고 그렇게 자신 있게 얘기하는지. 딱 9개월 전, 필자는 이 글이 투고될 위치에 해답을 적어 두었다. “포기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글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한 줄 기사로 누군가를 웃고 울게 만들 수 있다는 바보 같은 소리를 믿는다. 항상 더 나은 글을 쓰고 싶고, 사람들에게 여운을 주는 글을 쓰고 싶어 차장이란 직책을 달았다. 바보 같은 신념으로 살다 보면 넘어질 때도, 지쳐 쓰러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일어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강한 의지를 품고 있단 증거임을, 멋모르는 새내기 정기자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더 잘해보려는 마음은 절대 실패가 아니다. 필자는 아직도 멋진 기자란 꿈을 향해 수백 번이고 넘어지고 절망할 것이다. 그러나 이젠 실패가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수천 번 담금질을 통해 단단해지는 강철처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철없는 고꾸라짐을 간절히 응원한다. 중요한 것은 ‘꺾여도 다시 일어서는 마음’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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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 2023-11-21 11:00:15
기자님 항상 응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