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동물원, 변화의 바람 불까
눈물 젖은 동물원, 변화의 바람 불까
  • 김여진 기자, 이정윤 기자
  • 승인 2023.11.20
  • 호수 1575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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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철창 안 갈비뼈가 앙상한 사자, 좁은 수조 속 폐사된 돌고래의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동물 복지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동물원과 수족관 안에서 그간 수많은 동물이 희생됐다. 이에 「동물원수족관법」의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오는 12월 14일, 개정된 법안이 시행된다.

동물들의 감옥
기본적인 동물 복지조차 지켜지지 않는 시설에서 수많은 동물이 고통받고 있다. 많은 동물원이 맹수들을 좁은 실내에 가둬놓고, 심지어는 먹이 체험 프로그램을 위해 일부러 동물들을 굶기기도 한다. 재정난을 변명으로 더위와 추위를 막는 기본적 시설을 마련하지 않은 동물원도 많다. 정진아<동물자유연대 사회변화팀> 팀장은 “동물이 자신의 본능이나 습성을 전혀 충족하지 못하는 환경에 처하는 경우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며 △같은 곳을 계속 빙글빙글 도는 정형행동 △털을 뽑는 등의 자해 △하루 종일 무기력에 빠져 잠만 자는 이상행동을 보이곤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올 초 대구의 ㅇ 테마파크에선 빛 한 줌 없는 지하에서 사자, 하이에나 등의 맹수를 전시해 논란이 됐다. 장희지<동물해방물결> 활동가는 “동물의 기본 욕구조차 충족 시켜줄 수 없는 환경이었고, 동물들은 스트레스로 인해 정형행동을 보이고 있었다”고 처참했던 동물원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대부분의 동물은 자연 수명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수족관의 상황 역시 심각했다. 돌고래는 평균 수명이 약 40년에 달하지만, 수족관 속 대부분 돌고래는 수명의 10분의 1도 살지 못하고 폐사한다. 정 팀장은 “좁은 수조에서 돌고래가 내는 초음파는 벽에 부딪혀 메아리로 울리며 돌고래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며 “지능이 높고 사회성과 자의식을 가진 돌고래는 이렇게 감금된 환경에서 쉽게 질병에 걸리고, 심한 경우 폐사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 대구의 한 실내 동물원에 있는 백사자의 모습이다.

동물 학대를 묵인해 온 법과 제도
문제의 동물원과 수족관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일차적인 문제는 동물원과 수족관의 설립이 너무도 쉽단 점에 있었다. 현행법에 따르면 형식적인 등록 요건과 일정 수준의 규모만 충족하면 누구든 동물원과 수족관을 설립할 수 있다. 이렇듯 허술한 법 아래, 동물을 수용할 능력이 되지 않는 동물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김애라<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대표는 “전국 동물원의 수가 120여 개 정도 되는데 이 중 100여 개의 동물원이 소규모 동물원으로, 동물의 기본적 습성조차 고려하지 않는 채 운영되고 있다”고 그 심각성을 설명했다.

동물원을 체계적으로 관리 규제하는 시스템이 없단 것도 문제로 지적돼 왔다. 모든 동물은 각자 적합한 환경과 습성이 다름에도 현행법엔 각각에 대한 시설 기준이 부재해 열악한 환경에서 동물을 전시해도 이를 규제하기 어려웠다. 즉, 물리적 학대가 적발되거나 아사 등으로 죽는 상황이 돼서야 겨우 처벌이 가능했던 것이다. 김 대표는 “문제의 동물원 운영자들도 이런 법의 허술함을 알고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부실한 법과 제도는 동물들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하지 못했다. 갈비뼈가 드러난 채 좁은 우리에 갇혀있던 ㅂ 동물원 사자 바람이의 경우 7년 동안 지자체의 환경 점검이 있었음에도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아왔다. 시민의 고발이나 언론 등을 통해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는 이상,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동물원을 처벌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 동물 복지 증진될까
처참한 동물원 환경을 개선하고자 오는 12월 14일부터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이 시행된다. 기존의 동물원 등록제는 허가제로 전환돼, 동물원 및 수족관에 대한 허가 기준과 관리 체계가 강화될 예정이다. 심예구<동물자유연대 정책팀> 활동가는 “개정안엔 동물원과 수족관이 행정기관의 규제 및 모니터링을 받아야 할 법적 근거가 구체적으로 마련됐다”며 “야생동물 전시 사업의 무분별한 유치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전문검사관 제도가 도입돼 동물원 및 수족관의 설립부터 운영까지 체계적으로 관리될 예정이다. 전문검사관 제도가 도입되면 지자체에서 지정한 전문검사관이 시설의 관리 상태를 점검하고 사육 환경의 적정성 등을 전문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심 활동가는 “해당 제도가 도입되면 동물원 설립 전 지자체에게 동물원의 전반적인 관리 계획에 대한 허가를 받고, 설립 이후에도 검사관이 지속적으로 동물원을 모니터링하게 된다”며 “동물 복지를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하위법령을 통해 폐사·질병 발생 위험이 높은 종을 신규로 보유하는 것이 금지된다. 특히 고래류가 신규 보유 금지 종으로 지정된다. 따라서 국내 수족관에 남아있는 고래류 21마리를 마지막으로, 국내에선 전시용 고래류를 신규로 보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에 더해 동물 복지를 위협하는 동물 체험과 이동전시 역시 금지된다. 그간 △올라타기 △만지기 △먹이 주기 등의 전시 동물 체험 활동과 이동전시는 국민에게 야생동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단 점에서 진행돼 왔다. 하지만 이형주<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는 “이는 엄연히 동물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로, 법안 개정을 통해 변화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라쿤 카페처럼 야생동물을 전시하고 체험하는 유사 동물원 역시 운영이 금지돼, 몇 년 안에 사라질 전망이다. 김 대표는 “△거북이 △라쿤 △알파카 등을 전시하는 이색 동물 카페는 동물보호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유사 동물원은 동물원 법의 적용 대상도 아닌 탓에 문제가 많았지만, 법의 개정을 통해 개선될 전망이다.

개정안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
한편 개정안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정부는 현재 운영 중인 동물원에 대해 오는 2027년 12월 13일까지 전시 기간을 유예했다. 신설된 기준에 맞지 않는 동물원에 대해 약 4년간 허가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기간을 주는 것이다. 이혜원<동물자유연대 동물복지연구소> 소장은 “허가제로의 전환은 긍정적이지만 유예 기간이 너무 길어 동물들은 5년 동안 또다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유사 동물원 운영 금지로 인한 자영업자의 막대한 피해를 우려하는 입장도 존재한다. 손미숙<라쿤 카페 ‘라쿤브라더스’> 점주는 “자영업자의 의견은 하나도 반영하지 않고, 폐업이 싫다면 동물원으로 바꾸라는 식의 무책임한 통보만 있을 뿐이다”며 “모든 이색카페가 동물에게 부적합한 환경이 아닌데 일부 사례만 두고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개정안 시행에 따라 폐업된 시설에 남을 동물의 거처도 우려된다. 이기원<한국동물원수족관협회 KAZA> 사무국장은 “환경부에서 운영이 중지된 동물원의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립생태원 근처에 보호시설을 2곳 만들었다곤 하지만, 규모 자체가 크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에 보호 시설이 동물들을 다 수용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우려를 표했다.

어릴 적 우리에게 동물원은 귀엽고 멋진 동물 친구들을 볼 수 있는 즐거움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동물원 속 정당화 된 ‘동물 학대’는 그간 많은 논란을 빚었고, 이에 오는 12월 동물원수족관법의 개정안이 시행된다. 비록 완전한 법은 아니지만 이는 ‘첫걸음’으로서의 의의가 있다. 다만 이 첫걸음이 넘어질 위기는 없는지, 앞으로의 걸음은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사진 제공: 동물해방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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