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아고라]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 김다빈 기자
  • 승인 2023.11.13
  • 호수 1574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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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은
                                                                     ▲김다빈 <부편집국장>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단 말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되면서부터 줄곧 허공을 낮게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십 대의 초반이 다 지나도록 고등학교의 기억을 놓지 못한 채 교복 입는 꿈을 꿨다. 어디엔가 두 발을 붙이고자 같은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 틈에 억지로 껴 보기도 했지만 열아홉의 감정을 느껴본 일은 없다. 스쳤다 떠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되려 그리움의 범위만 넓어질 뿐이었다.

방황하던 필자에게 한대신문은 정말이지 잘못 탄 기차였다. 현시점에 털어놓긴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듯 지원 당시의 필자 역시 학보사를 동아리쯤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들어간 이곳에서 거의 매 순간 필자의 선택을 후회했다. 혹자의 말을 빌려 ‘아무도 보지 않는 신문’ 따위를 만드는 데 온 신경을 쏟느라 놓친 어떤 것들은 한동안 필자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나는 왜 매번 악수만 뽑을까. 번번이 반려당하는 기획안과 좀처럼 오지 않는 인터뷰 답장을 기다리며 필자를 둘러싼 머피의 법칙을 원망했다.

고민 끝에 관두려 마음 먹길 여러 번이었지만 이상하게 도저히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간만에 느껴본 익숙한 소속감과 유대로 묶여있는 이곳의 사람들이 발목에 턱턱 걸려서. 당시 필자는 정식 취재는 해본 적도 없는 수습기자에 불과했지만, 선배 기자들을 보며 내가 가게 될 길이 그렇게도 몇 번이고 다시 펜을 들 용기를 주는 일이라면 같이 가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마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무언가를 움켜잡는 것 같다. 취재를 위해 모진 말을 들어가며 인터뷰를 하고, 밤을 새워 기사와 사투를 벌이다 먼지 가득한 신문사 한구석에서 새우잠을 자기 일쑤다. 때론 마음처럼 되지 않는 기사에 좌절도 하고 화도 내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곳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깎아낸 시간과 노력이 모여 하나의 신문을 만들어낸다. 애증이고 책임이라 하지만, 사실 숱하게 학보사의 존폐가 논의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신문사에 앉아있는 이들을 받치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필자는 분명 알고 있다.

밥을 같이 먹으면 식구라는데 필자에겐 고등학교 시절 매일같이 하루 한 끼는 꼭 같이 먹던 식구들이 있었다. 여전히 동네를 지나다 모교 교복이 보일 때면 급식실 한구석에 둘러앉아 친구들과 점심을 먹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여기 매주 두 번씩 함께 밥을 먹는 식구들이 있다. 시간이 흘러 이곳을 떠나게 되더라도 한동안은 목요일 저녁 7시가 되면 에이포 용지를 한가득 펄럭이며 곁눈질로 겨우 밥을 먹던 기억이 관성처럼 떠오를 것 같다. 그리고 그 곁에서 몇십 번의 밤을 함께한 사람들을 정말 오래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그저 잘못 탄 줄만 알았던 기차에서, 돌아보니 새로운 목적지에 도달해있다. 또 다른 행선지를 향해 발을 옮길 때가 오면 똑같이 맞춘 단복도 함께 찍은 사진도 없는 이 사람들을 난 어떻게 추억해야 할까. 앞으로 몇 번의 발간이 끝나면 내게 또 하나의 그리움으로 남을, 사랑하는 한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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