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시선 끝에 상상력 한 줌
날카로운 시선 끝에 상상력 한 줌
  • 박정민 기자
  • 승인 2023.09.18
  • 호수 1571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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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이슈는 토론장과 뉴스에서만 들을 수 있을까? 소설이라는 매체로 ‘고독사’, ‘기후변화’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온 작가가 있다. 김기창<사회대 사회학과 98> 동문은 소설 「모나코」를 통해 첫 작품부터 ‘오늘의 작가상’을 타며 등단했고, 작가로서의 행보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부드러운 어조로 세상을 날카롭게 겨냥하는 소설가 김기창 동문을 만났다.

어느 날 갑자기 소설가
혜성처럼 나타난 문학가지만, 처음부터 소설에 큰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라는 김 동문. 그가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건 영화였다. 그는 “전형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이었죠. 먼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기엔 천진난만한 성격이었어요.”라 회상했다. 입시에 다다라 글 쓰는 것에 자신 있던 그는 국문과에 진학했지만, 이는 실수였다. “국문과는 글쓰기보단 이론을 배우더군요.” 적성을 깨달음과 동시에 글 쓰는 직업을 갖기로 다짐한 김 동문은 직업에 맞춰 반수를 결심했다. “당시 사회학과에 진학하면 언론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글 쓰는 일을 떠올리자니 기자라는 직업도 고려하게 됐고, 이 전공으로 오게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 입학 후 그의 마음을 흔든 것은 우연히 과 선배를 따라 가입한 영화연구회 동아리였다. 어릴 적부터 키워왔던 취미인 영화의 존재가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당시엔 전공과 무관하게 동아리 내에서 영화계로 진출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동아리를 통해 직업적으로도 영화계로 관심사가 옮겨갔죠.” 단편 영화 촬영 경험 속에서 연출이 적성에 맞지 않음을 확인한 그는 영화에도 ‘시나리오 작가’란 글 쓰는 역할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를 꿈꾸게 된다. 사회학 전공과 독서는 시나리오 작가의 대표적인 역량인 넓은 지식을 갖추는 데 최적이었다. “특히 군 복학 후 학교생활이 활발하지 않던 때엔 책과 함께 하루를 보냈어요. 가장 많이 읽던 시기엔 읽은 책에 번호를 매겨 달력에 표시하며 뿌듯해했죠. 3년 동안 400여 권의 책을 읽고 졸업했습니다.”

그의 마음과는 달리,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문은 너무나도 좁았다. “작가 활동만 이어갈 순 없었어요. 전공을 살려 글을 쓰는 다양한 직업을 병행했죠.” 객원 기자부터 논술 강사까지, 그는 펜과 종이만 있으면 직업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입시에서 논술이 축소되고 학원 규모가 축소되는 걸 바라보던 김 동문은 입시 체제에 삶이 좌우된다는 생각에 회의감이 들었다. 그는 복잡한 마음에 여행을 다녀와 새로운 시도로 소설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보통의 경우 작가 등단에 주로 단편을 내는데, 시나리오 집필 경험의 영향인지 첫 작품을 장편으로 썼어요. 운이 닿았는지, 말도 안 되는 기회로 당선이 됐고요.” 이를 계기로 김 동문은 이전에 하던 일들을 천천히 줄여가며 소설에 집중하게 됐다

사회를 관통하는 문학을 쓰다
“왜 하필 소설이었나요?” 기자의 물음에 김 동문은 “작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을 ‘질문’이라고 했습니다. 소설은 세상에 질문하는 매체라고요.”라고 답했다. “돈키호테가 세상에 나왔을 때 그에겐 세상이 다 수수께끼처럼 보였다죠.” 그의 영향을 받아 세상에 대한 의문이 불쑥불쑥 떠오른다는 김 동문. 거시적인 시선이 더해진 그의 소설은 작가가 개인의 상황에서 발전시키는 보통의 창작 과정과 사뭇 다르다. “저는 내면의 감정과 열망에 대한 감각이 무딘 편이에요. 여기서 오는 장점은 문제에 한 발짝 물러나 여러 가지 주제를 바라볼 수 있단 거죠.” 그러다 보니 그에겐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 문제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싶었어요.” 예컨대 그가 처음 썼던 「모나코」의 주제는 ‘고독사’였다. “그때 한참 일본에서 고독사 문제가 대두됐는데, 국내 통계자료를 찾아보니 한국도 머지않아 다름없는 상황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거주 지역에 노인 분들이 많았던 것도 계기가 됐죠.” 그는 사회문제를 소설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보편적인 생각의 틀을 깨고자 발상을 전환했다. “고독사라 하면 가난한 노인을 떠올리기 마련이잖아요. 하지만 고독사와 재력은 무관한 것 같아요. 그래서 부유한 노인의 고독사를 담은 소설을 썼습니다.”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고, 생물이 멸종해 가는데 왜 우리는 운명을 바꿀 생각을 안 하는지에 대해 계속 의문이 들었어요. 특히 한국이 이 문제에 무심하단 생각이 컸죠.” 

차기작 「마산」 역시 사람들 사이에서 쉽게 간과되는 지방 소멸, 지방 대학 청년 문제를 시대별로 다룬다. 「마산」은 「모나코」, 「방콕」에 이어 그가 ‘공간 3부작’이라고 부르는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듯, 장소가 주는 특정한 분위기가 있어요. 그렇다 보니 장소를 먼저 떠올리면 상상력을 자극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론 한국의 도시를 다뤄야겠다고 생각해 고향인 ‘마산’을 주제로 정했습니다.”

소설을 쓰기 전에 항상 자료 수집에 신경 쓴단 김 동문. “정보 수집 도구는 주로 책인데,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을 쓸 땐 관련 자료도 오랫동안 모으고 취재도 다녔어요. 지금 준비 중인 장편 「마산」은 취재를 20번 가까이 했습니다.” 그는 정보 수집 과정에서 의외의 사실을 종종 맞닥뜨리곤 한다. “차기작 준비로 마산의 대학생을 취재할 때, 예상과 달리 지방 대학 차별 상황에 큰 고민이 없더라고요. 이처럼 가까이에서 보면 단순히 구상했을 때와 다를 때가 많습니다.”

작가는 날마다 위기의 연속이라지만, 그럼에도 김 동문은 글 쓰는 일을 지속한다. “창작이란 게 술술 나오면 참 좋겠지만, 사실 잘 써지지 않거든요. 이러한 문제는 책상에 마냥 앉아있는 것으론 해결되지 않죠.” 그럴 때면 그는 책이나 영화를 보거나, 산책을 한다. “그동안 글 쓰는 것을 놓지 않고, 한 문장이라도 더 발전시키려고 해요. 일종의 환기인 셈이죠.” 첫 페이지, 첫 문장이 가장 어렵다는 김 동문이 집필 과정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소설을 3분의 1정도 썼을 때다. “그땐 아이디어가 자꾸 떠오르거든요. 글 쓰는 데 가속이 붙죠. 발간 직후보다도 즐거움이 더 큰 순간이에요.” 창작 과정에서의 탄력 구간이 그에겐 가장 큰 동기부여다.

김 동문은 사회의 변동을 끌어내는 문학의 힘을 믿는다. 그의 소설은 주제마다 특정한 문제를 겨냥하고 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가 다 녹아있다. 결국 그의 소설을 관통하는 근본적 키워드는 ‘불평등’이다. “계층과 계급 문제, 그것으로 인한 차별 문제, 그렇게 파생되는 불평등이 완화되면 대부분의 사회 문제도 대체로 완화될 겁니다.” 그는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이전까지 국내 소설에서 기후변화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 없었는데, 저서를 발표하고부터 기후 위기와 관련된 소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어요.”라며, 출판업계에서 기후 문제가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문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어 반갑다고 한다.

독자에게, 작가에게.
김 동문이 청년층 독자들에게 바라는 바는 단 하나, ‘책을 많이 읽어달라는 것’이다. 그는 디지털화와 함께 독자들이 떠나고 있다며, 독서 인구의 감소가 문제 인식의 기회를 축소한다고 아쉬워했다. 이어서 그는 “영화 같은 매체가 줄 수 없는 감각이 있어요. 영상의 감각이 스쳐지나가는 거라면 글의 감각은 피부에 스며드는 거죠. 그런 부분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소설만이 줄 수 있는 흥분과 감동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금 소설을 쓰시려는 분, 등단을 준비하는 분들에겐 다양한 글을 써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각종 OTT가 존재하는 이 시대엔 소설도 써보고, 대본도 써보는 게 좋은 역량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기자 활동부터 시나리오 집필까지 경험한 김 동문의 조언이다. 그는 “처음 글을 쓸 때 스티븐 킹의 「글쓰기의 유혹」이라는 책을 읽고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라며 말을 이었다. “이 작가는 하루에 6시간씩 소설을 썼답니다. 낮엔 일하고 밤엔 퇴근 후 꾸준히 소설을 썼던 거죠. 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 꾸준하게 매일 글을 쓰는 연습이 중요한 겁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재밌는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사회 문제에만 관심 있는 거라면 신문이나 전문 서적을 보면 된다고 생각해서요.” 창작 과정 중, 주제 선정의 첫 번째 조건을 ‘재미’로 꼽은 김 동문은 “아무리 중요한 문제여도 장르적으로 재밌게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으면 시도하기 어려워요.”라 전했다. “딱딱하고 어두운 소재를 다루지만, 저는 제가 그걸 재밌게 풀어낸 작가로 비치길 바랍니다. 비극적인 결말을 많이 쓰는 이유도 그런 맥락이에요. 주로 현실 사회의 문제를 다루는 만큼, 해피엔딩이 오히려 찝찝할 때가 있더라고요. 희극보다 더 재밌는 비극을 쓰고 싶습니다.”

그가 이토록 재미를 강조하는 것은 대중에게 본질을 전달하는 것의 중요성을 통감한 까닭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소설에 담긴 김 동문의 메시지는 세상을 분명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소설에서 나아가 드라마, 영화 대본 등 다양한 글을 쓰고 싶다는 김 동문. 앞으로도 곳곳에서 그의 목소리가 세상을 흔들기를 기대한다.


사진 제공: 김기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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