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쟁의 장으로 몰락한 정기국회, 민생은 뒷전으로
[사설] 정쟁의 장으로 몰락한 정기국회, 민생은 뒷전으로
  • 한대신문
  • 승인 2023.09.18
  • 호수 1571
  •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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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반상회에 가도 이렇게 시끄럽진 않습니다.” 지난 5일, 정기국회의 대정부질문을 진행하던 국회의장이 의원들과 국무위원들에게 경청을 호소하며 전한 말이다. 한 해 동안의 국가 살림을 검토하고 법률 정비를 진행해야 할 정기국회에선 시작부터 고성과 조롱이 오가며,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언사들만이 난무했다. 국정 전반에 대한 건설적인 대화가 이뤄지긴커녕 주도권 싸움의 장으로 전락한 것이다.

정기국회 초반에 이뤄진 대정부질문에서부터 정부의 실책을 지적하고 정치적 대안을 모색한단 본연의 의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국회의원 간 질의에선 ‘쓰레기’, ‘빨갱이’ 등의 거친 표현으로 언쟁이 벌어졌고, 법무부 장관에겐 현안과 무관한 총선 출마 여부 질의가 오가기도 했다. 나아가 국무위원들의 오만한 답변 태도까지 더해져 국민들의 한숨만을 자아냈다. ‘역대 최악의 대정부질문’이란 평가를 받고 있는 이번 정기국회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방향성을 잃은 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자리에서 어떻게 민생을 논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같은 판국에 진영 싸움에만 치중하는 여야의 당대표들로 인해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제1야당 대표는 지난달 31일 정기국회 개회 직전 국정 쇄신을 말하며 명분이 모호한 단식에 돌입했다. 이를 두고 여당 대표는 “관종(관심에 목매는 사람) DNA만 엿보인다”며 강도 높은 비난을 보냈다. 회기 내에서의 협상을 통해 이견을 줄이고, 갈등을 중재해야 할 이들이 오히려 극단적 행태에 앞장서 서로를 조롱하는 것이다. 당 지도부가 주도하는 정쟁의 여파가 정기국회에까지 닿아 법안에 대한 원활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게 된다면 그에 따른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으로 돌아온다. 가뜩이나 힘든 민생고에 부질없는 정쟁 놀음까지 지켜봐야 하는 국민의 불쾌함에 대해 이들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정기국회는 특히나 중요한 현안이 많아 파행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국정감사와 새해 예산 및 결산 심사, 지난 회기 때 계류된 법안 처리 등 불철주야로 매달려도 빠듯한 100일의 여정이다. 여야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편 △교육 현장 개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대응과 같은 새로운 법안의 추진을 예고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지금과 같은 비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면 마땅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막을 내릴 것이 뻔하다. 여야 간 대치에 눈이 멀어 대정부질문에서의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당리당략에 빠져 정치(政治)의 본질을 잊어버린 이들을 향한 불신이 최고조에 다다르고 있다. 정기국회는 국민의 삶 속에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화합의 장이다. 여야는 이제라도 국민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되어 기대에 충실히 부응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필요한 것은 막연한 이념 갈등이 아니라 내실 있는 정기국회이다. 임기 내내 비생산적인 정쟁과 필요 이상의 대립으로 일관한 21대 국회가 마지막까지 무책임한 태도로 남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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