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우리가 그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
[장산곶매] 우리가 그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
  • 박선윤 기자
  • 승인 2023.09.04
  • 호수 1570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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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윤<편집국장>

 

필자는 여느 때와 같이 SNS를 내리다가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의 머그샷(mug shot, 범죄자의 인상착의 기록 사진)을 담은 상품들에 100억 원이 넘는 금액이 모금됐단 뉴스를 보게 됐다. 눈을 잔뜩 부라린 채 험상궂은 표정을 한 사진 속 그와 눈을 마주치며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다가도, 머그샷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단 사실이 금세 부러워졌다. 머그샷의 촬영은 필수지만, 공개여부는 피의자들의 선택에 달린 우리나라에선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모두 신상공개가 확정된 피의자의 사진들을 보며 언론에서 보도된 모습과의 괴리에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후 구치소로 이동하며 찍힌 언론에 공개된 사진에서조차 고개를 숙이거나 옷가지로 모습을 가려 일부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현행법상 한국에선 피의자 구속 시 촬영되는 머그샷은 피의자의 동의 없이는 공개되지 않는다. 동의가 없다면 신분증 사진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피의자들이 동의하지 않아 국민들에겐 CCTV 속 모습이나 증명사진만 공개되고 범죄자들의 현재 모습을 열람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25명의 신상이 공개됐지만 21명은 촬영 시점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신분증 증명사진을 사용했으며, 전체 인원 중 2명만이 머그샷 공개에 동의했다, 실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서 인도로 차를 몰고 흉기를 휘둘러 14명의 사상자를 낸 최원종의 신상 공개도 확정됐지만 그가 머그샷 공개를 거부하며 운전면허증 사진만 알려졌다. 하지만 언론 공개모습과 너무 다른 그의 실물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필자는 2주 전 지면에 담기는 새로운 증명사진을 찍고 싶어 사진관을 방문했다. 평소와 다르게 화장을 하고 가르마 방향도 바꿨다. 사진 촬영 후 사진사님께 점 삭제와 얼굴 비대칭 교정을 요청했다. 그러고 한껏 만져진 내 사진을 마주하니 새로운 사람인가 싶었다.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필자의 얼굴이 20% 정도 담긴 비슷한 누군가 같단 장난스러운 말들이 돌아왔다. 

뜬금없이 필자의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한 것은 마음대로 내 얼굴을 바꿀 수 있는 증명사진으론 안된단 말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눈꼬리 방향, 점 하나, 이목구비 크기의 변경으로 인상이 달라지는 것이 얼굴이다. 이것이 증명사진이 아닌 현재 모습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머그샷 공개가 필요한 이유다. 지금의 증명사진으론 실제 그들을 마주했을 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강력범죄자들의 신상공개가 될 때마다 머그샷 공개의 필요성을 외치는 대중들의 목소리와 함께 여러 기사들이 터져 나오지만 현시점까지 달라진 것은 없다. 여전히 범죄자들의 인권을 운운하며 바뀌지 않는다. 현재 국회에선 이와 관련된 법안 여러 개가 계류돼 있을 뿐이다. 유가족들이 ‘피의자들의 인권으로 인해 현재 얼굴이 담긴 사진을 공개할 수 없습니다’란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일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물론 피의자의 인권은 존중될 필요 없단 원색적인 비난을 하고 싶진 않다. 강압적 수사로 피의자들의 인권이 싸그리 무시되던 시절, 권력을 가진 자들이 범죄란 이름을 붙이면 범죄자가 되던 시절을 거쳐 만들어진 그들의 인권 전체를 부정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더욱 존중하고 집중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들이다. 피의자들의 얼굴을 제대로 공개해 제 n의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범죄자들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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