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청년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상처받은 청년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 백가은 기자, 이예빈 기자
  • 승인 2023.09.04
  • 호수 1570
  •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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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학생 A씨의 하루는 느즈막히 일어나 한참 동안 휴대전화를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해진 시간에 등교나 출근할 필요도, 누군가와의 약속도 없기 때문이다. 배달 음식을 주문해 가끔 챙기는 끼니를 해결하고,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금방 해가 저문다. 그러다 인적이 드문 시간대가 돼서야 그는 집 한편에 쌓인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채비를 한다. 새벽 2시지만, 하루 중 처음이자 유일한 외출이다.

사실 이런 하루는 누구나 한 번쯤 보내봤을지 모르는 일과다. 하지만 A씨의 경우 이런 생활을 무려 반년이 넘도록 이어왔다. 이런 A씨는 자신을 ‘은둔형 외톨이’라 소개한다. 그가 은둔을 시작한 계기는 특별하지 않다. A씨는 “대학에 진학하며 함께 살던 가족과 떨어졌고, 취업 스트레스와 대인관계의 어려움으로 친구와의 만남도 점차 줄이다 보니 이렇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런 상황을 두고 “마치 출구가 보이지 않는 동굴에 갇힌 것 같다”고 말했다. 취업 실패에 대한 실망감으로 휴학과 동시에 시작한 은둔이 스스로에 대한 더 큰 실망으로 돌아와 점점 사람을 만나거나 밖에 나가길 꺼리게 된 것이다.

고립·은둔 청년, 도대체 뭐길래
 

고립·은둔 청년(은둔형 외톨이)은 정확히 어떤 상태의 청년들을 말할까. 구체적인 개념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존재하지만, 고립·은둔을 판단하는 것에 있어 종합적으로 고려되는 세 가지는 △공간 △대인관계 △기간이다. 김혜원<호서대 청소년문화 상담학과> 교수는 은둔형 외톨이(고립·은둔 청년)를 두고 “가족 외 사람들 혹은 누구와도 대인관계를 맺지 않은 채 자신의 방이나 집 등 한정된 공간에 머물고, 이 같은 상황이 3~6개월 이상 이어진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즉, 고립·은둔 청년은 대체로 자신의 방이나 집 안에만 머물고, 대인관계가 거의 없으며, 이 상태를 일정 기간 지속한 사람을 뜻한다.

고립·은둔 청년이 최근 갑자기 등장한 사회 문제는 아니다. 지난 1990년대 말 일본에서 수많은 청소년이 등교를 거부하고 청년 실업률이 큰 폭으로 증가하며 탄생한 ‘히키코모리’가 그 유래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2000년대부터 알려진 바 있지만, 중요하게 다뤄지진 않았다. 김 교수는 “2000년대에 들어서 은둔형 외톨이를 다룬 연구나 방송이 등장하긴 했으나 대중의 관심이 금방 식었다”고 설명한다. 고립·은둔 인구를 파악하는 조사가 시행되거나 사회적 관심이 생기는 단계까진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엔 우리나라에서도 청년들이 고립되는 현상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이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경력 단절 △위축된 인간관계 △취업난 등을 겪은 청년들이 회복에 어려움을 겪으며 은둔을 택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2021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경제 활동이나 사회적 교류를 멈춘 일명 고립·은둔 청년의 수는 무려 53만 8천 명에 달한다. 수치로 보면 전체 청년의 5% 정도지만, 2년 만에 무려 20만 명이 넘게 늘어나며 그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처럼 고립·은둔 청년이 증가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서울시가 지난 5월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청년들 다수는 고립·은둔의 계기로 △실직과 취업난 △심리적 정신적 어려움 △대인관계의 어려움 등을 선택했다. 김 교수는 “1등만이 인정받는 성공지향 및 학벌 만능주의로 끝없는 경쟁을 해야 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은 청년들이 갈 곳을 잃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청년들이 취업을 준비하거나 취업에 성공한 또래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우울감을 느껴 고립·은둔을 시작하게 된단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고립·은둔 청년들은 평균적인 서울시 청년보다 성인기 전후로 더 많은 부정적인 대인관계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고립·은둔 청년 대다수가 △가족 중 누군가가 정서적으로 힘들어했던 경험(62%) △집안 형편이 갑자기 어려워진 경험(58%) △지인으로부터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던 경험(57%) 등이 있다고 응답했다. 대인관계 형성에 있어 부정적인 경험을 한 것 또한 고립과 은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립·은둔 청년 문제는 몇십 년 후에 다른 사회 고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단 점에서 한 세대에 그치지 않고 여러 세대에 파급력을 줄 수 있다. 청년 시기 고립된 상태가 중·장년, 그리고 노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청년 히키코모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한 지난 1990년대 이후, 해당 세대의 은둔 생활이 중장년까지 이어져 그다음 사회 문제의 씨앗이 됐다. 바로 80대의 부모가 50대의 자식을 부양한단 뜻의 ‘8050 문제’다. 우리나라도 이미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서울시 거주 청년들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20~24세에 은둔을 시작한 청년은 39%로 가장 많았고, 그런 은둔 생활이 5년 이상 이어졌다고 답한 비율도 29%가량에 달한다. 이른 나이에 시작한 고립·은둔의 장기화가 벌써 시작된 것이다.

이렇듯 고립·은둔 청년의 심각성이 커지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에선 해결책 강구에 나섰다. 2023년 보건복지부 업무 추진 계획에 새로운 복지 수요로 취약 청년이 등장하는가 하면, 지난 4월 국무회의에선 은둔형 청소년을 위기청소년 특별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청소년복지지원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다. 또한 일부 지자체에선 이미 몇 해 전부터 고립·은둔 청년 문제를 실감하곤 그들을 세상과 다시 연결하기 위한 지원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청년들을 돕기 위해 앞장선 단체 세 곳을 만나봤다.

광주 ‘은둔형외톨이 지원센터’
광주광역시(이하 광주시)는 지난 2019년 전국 최초로 「은둔형외톨이 지원조례」를 제정하며 빠르게 해당 사업에 뛰어든 지역 중 하나다. 해당 조례는 은둔형 외톨이를 ‘사회·경제·문화적으로 다양한 사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정 기간 이상을 한정된 공간에서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생활해 정상적인 사회 활동이 현저히 곤란한 사람’으로 명시하고 지원 체계를 마련했다.

나아가 광주시에선 지난해부터 은둔형 외톨이의 회복력 강화를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목표 삼은 은둔형외톨이 지원센터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광주 은둔형외톨이 지원센터에선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고립·은둔 당사자와 그 가족의 단계적 회복을 돕는다. 전문적인 상담을 진행하거나, 참가자들과의 자조 모임을 통해 대인관계를 연습시키고, 식물 기르기나 아로마테라피를 이용해 규칙적인 생활 습관 형성을 유도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센터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당사자와 가족들은 누군가의 지도와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 센터 활동이 큰 힘이 됐다고 의견을 모은다. 가족 참가자 B씨는 “2기 부모 교육을 통해 실제 은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며 “은둔형 외톨이를 이해하게 된 경험이 생각의 틀을 깨고 자녀를 기다리는 것에 가장 큰 도움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은둔 당사자 C씨의 경우 “늘 집에만 있어서 지루했는데 한 번씩 (센터) 선생님과 이야기할 수 있어 좋았다”며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카페에 나갈 채비하는 것도 좋았다”고 전했다.

제주 ‘청년센터’

                                ▲ 제주 청년센터 내부에 마련된 고립·은둔 청년 지원 공간의 모습이다.

제주도의 경우 고립·은둔 청년의 단계적인 사회 진출과 일자리 창출을 통한 자립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지난 2017년 「제주특별자치도 청년 기본조례」 제19조에 따라 설치된 제주 청년센터는 제주 청년들에게 문화·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취업을 돕는다.

제주 청년센터는 지난 1월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 ‘우찾사, 우리들의 시간을 찾는 사회생활 연습실’을 개설했다. 이는 가상회사를 운영하거나 또래 청년과의 교류를 활성화해 고립·은둔 청년들이 사회로 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참여자로 선발된 15명은 성격과 성향에 따라 5명씩 한 모둠으로 구성돼 7주간의 프로그램을 함께한다. 직장에서 단체생활을 경험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이를 자연스럽게 연습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그 취지다. 이들은 매일 출석하며 각자 설정한 목표를 달성할 경우, 일주일에 5만 원의 수당도 받을 수 있다. 송민경<우찾사> 담당자는 “(우찾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도 하고 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된 분들이 계셨다”고 전했다.

제주 ‘더 큰 내일 센터’

                                                   ▲ 제주시에 위치한 더 큰 내일 센터의 외관이다.

제주 청년센터가 청년들의 기초적인 사회생활부터 자립까지를 돕는 기관이라면, 더 큰 내일 센터는 지역사회와 청년들이 관계를 맺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이다. 청년들은 이곳을 통해 지역사회의 기업에 취직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창업에도 도전할 수 있다.

더 큰 내일 센터는 ‘탐나는 인재’라는 프로젝트형 사업을 진행 중이다. ‘탐나는 인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34세 미만의 청년이라면 누구나 대상자다. 사업 지원 대상자로 선발되면, 참가자들은 월 150만원씩 최대 2년간 경제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나아가 참가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이론과 실습을 병행한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첫 6개월은 제주의 지역사회를 이해하는 교육을, 다음 6개월은 제주 지역사회의 기업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돕는다. 황석연<더 큰 내일 센터> 센터장은 “이런 방식을 통해 지금껏 더 큰 내일 센터를 거친 참가자들의 취업률은 87%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해당 프로그램의 참가자는 20대뿐만 아니라 취업은 했지만 직장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적성에 맞지 않아 재취업을 준비하는 30대도 있다. 황 센터장은 “재취업 과정에서 청년들이 두려움을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더 큰 내일 센터는 이런 상황에 놓인 청년들도 돕는다. 직장을 그만둔 기간 동안 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소속감도 느끼고 급여도 받으며 취업 상태로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사회로부터 고립된 청년들이 큰 폭으로 늘어나며 전국구로 해결책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촘촘한 지원 체계도 중요하지만, 실패가 두려워 숨지 않아도 되는 건강한 사회 분위기가 형성될 때 비로소 은둔을 택하는 이들이 줄어들 것이다. 더 많은 우리 청년들이 건강하게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고립·은둔 청년들에게 닿기 위한 섬세한 노력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본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 중앙협력본부의 초청으로 진행한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 제주 팸투어’에 참여해 작성된 기사입니다.


도움: 광주 은둔형외톨이 지원센터
김혜원<호서대 청소년문화상담심리학과> 교수
송민경<우찾사> 담당자
황석연<더 큰 내일 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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