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헤매일 결심, 헤매인 결실
[아고라] 헤매일 결심, 헤매인 결실
  • 김연우 기자
  • 승인 2023.09.04
  • 호수 1570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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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우 대학보도부 정기자
                                                                           ▲김연우<대학보도부> 정기자

필자는 “원래 그런 거야”란 말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원래 그렇단 말은 주로 부당한 것을 관례로 포장할 때 쓰이는 변명이기 때문이다. 나이와 붙어서 쓰일 때 특히 그렇다. ‘원래 네 나이 때는 공부만 하면 되는 거야’, ‘원래 학생은 그런 거 생각할 필요 없어’라는 말, 다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자랐으리라 생각한다. 필자 또한 그렇게 모든 관심을 차단당한 채 스무 살이 됐다.

미디어를 통해 학습해 온 ‘스무 살=설렘’이라는 개념과 달리, 필자의 스물은 느닷없고 당황스러웠다. 허허벌판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미성년의 시간 동안 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사회탐구 과목으로 무엇을 고를지, 학원을 앞 시간에 갈지 뒤 시간에 갈지 정도였다. 그런데 나이 한 살 늘었단 이유만으로 객관식이던 삶이 하루아침에 주관식이 돼 버린 것이다. 필자는 처음으로 주어진 너무 많은 선택지와 그 선택의 결과를 혼자서 감내해야 한단 사실에 압도됐다. 지금껏 풀어본 문제엔 정확한 답과 해설까지 존재했는데, 마주한 삶에선 어떤 게 답일지 몰라 도망치기 일쑤였다.

관성의 법칙은 사람에게도 작용하는지, 이런 필자의 악습관은 쉬이 고쳐지지 않았다. 문제는 그런 필자의 모습을 스스로 견딜 수가 없었단 것이다. 다른 친구들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가고 척척 성과를 쌓는데 스스로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게 한심했다. 친구들은 맑게 흘러가는 계곡물 같은데, 필자는 고여서 썩어가는 웅덩이 같았다. 그렇게 자격지심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커다란 자격지심이 작은 마음을 꽉 채울 즈음, 필자는 언제까지고 도망칠 순 없단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그래서 뭐가 됐든 해보고 후회하잔 결론에 다다랐다.

작은 결심으로 보일지 몰라도, 필자에겐 탈피의 순간이었다. 마음에 피어난 자격지심이 삶을 대하는 스스로의 태도를 돌아보게 했고 종국엔 나아가기로 결심했으니 말이다. 물론 마음을 고쳐먹은 뒤에 ‘평생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란 동화 속 결말처럼 세상이 아름답게 변하진 않았다. 도망 다니며 깎아 먹은 시간은 절대로 되찾을 수 없기에 필자는 더 노력해야 했다.

그럼에도 필자는 도망 다니기 바빴던 지난날들이 아쉽지 않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 시간을 통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성과와 관계없이 어떤 가치를 지닌 사람인지 배웠다고 생각한다. 진작에 배웠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말엔 동의하지만, 자아 성찰에 적기는 없다. 지금도 충분히 ‘진작’이라고 여긴다.

물론 더 험난한 삶의 여정을 겪게 될 것이란 걸 안다. 충분히 자랐다고 자부한 자신이 우스워질 순간도, 스스로가 미워지는 순간도 오겠지만 결국엔 이겨낼 것이다. 훗날 더 넓은 세상을 만난 필자는 그간의 경험을 손에 쥔 채 두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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