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교권, 무너진 학교
추락한 교권, 무너진 학교
  • 김정원 기자
  • 승인 2023.08.28
  • 호수 1569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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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은 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현장에 나서야 하나요”
 

▲ 지난 21일, 사건이 발생한 초등학교 앞에 추모 화환이 늘어선 모습이다.
▲ 지난 21일, 사건이 발생한 초등학교 앞에 추모 화환이 늘어선 모습이다.

지난달 20일, 서울서이초등학교에서 2년 차 교원이 쓸쓸히 세상을 등진 사건이 발생했다. 학부모의 지속적인 악성 민원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에 추락한 교권에 대한 국가적 논의의 필요성이 대두됐으며, 교육계 종사자들은 교권을 보장받을 수 없는 현실에 교육 현장이 완전히 붕괴했다고 말한다.

교육활동 침해
‘교권(敎權)’은 교직에 종사하는 교원의 권리를 뜻한다. 이는 ‘교원의 교육권’과 ‘교원의 권위’를 함축한 말로, 교원이 정치나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주적으로 교육활동을 행할 권리를 의미한다. 임이랑<법률사무소 률> 변호사는 “소속 학교의 학생 또는 그 보호자 등이 교육활동 중인 교원에 대해 폭행, 모욕 등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행위를 교권 침해라 정의한다”고 설명했다. 즉, 교원의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저해하는 △명예훼손 △상해 및 폭행 △업무 방해 등의 모든 행위를 ‘교권 침해 행위’로 정의할 수 있단 것이다. 국·공·사립 유치원부터 「초·중등교육법」이 정의하는 학교에 근무하는 교원들은 모두 이 법률의 적용 대상에 해당하며, 기간제 교원 또한 예외 없이 포함된다.
 

이같은 교권 침해는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5월 교육부가 발표한 연도별 교권 침해 심의 건수에 따르면 교권 침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원격 수업이 이뤄진 2020년을 제외하고 2017년부터 연 2천 건 이상 발생했다. 거리두기의 완화로 대면 수업이 재개된 지난해엔 교권 침해 건수가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늘어나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교권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는 미흡한 실정이다. 현행 법률에선 교권 침해 발생 시 교원지위법에 따라 △교내·사회봉사 △출석정지 △전학 등의 징계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에만 적용될 뿐, 학부모가 교권을 침해할 시엔 별다른 제지를 할 수 없다. 실제 한국교원총연합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집계된 교권 침해 주체별 상담 건수 중 학부모에 의한 피해가 46.3%에 달했다. 임 변호사는 “현행 교원지위법으론 피해 교원에 대한 보호조치만이 가능하며 학부모에 대한 처분은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현장의 목소리
일명 ‘서이초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지난 한 달간 전국 각지에선 교권 침해를 경험한 교원들의 제보가 쏟아졌다. 이에 기자는 직접 현장을 찾아 교권 침해 문제에 대한 교원과 교육계 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봤다.

우선 교원들은 학교 현장에서 교권 침해 문제가 빈번하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교원 A씨는 “사례에 따라 그 경중의 차이만이 있을 뿐, 정말 다양하고 빈번하게 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생활기록부 기재 내용 중 일부의 수정 및 삭제 요청에 응하지 않자, 지속적으로 학급 경영에 불만을 토로하고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 △학부모가 학교에 찾아와 교원의 멱살을 잡거나 폭언과 욕설을 하는 경우 △학생들이 교원에게 성희롱을 일삼고 사진을 도용하는 경우 등 많은 사례가 존재한다. 교원 B씨는 “일부 학부모와 유선 상담을 진행할 때면 늘 과격한 표현에 시달려야만 했다”며 “늦은 밤 만취한 상태로 전화가 오기도 하고 학교에 찾아와 고함을 치며 교무실 물품을 파손하는 등의 폭력적인 행동을 한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 사망한 담임 교사가 사용하던 교실에 근조기가 놓인 모습이다.
▲ 사망한 담임 교사가 사용하던 교실에 근조기가 놓인 모습이다.

원인은 무엇인가
이런 교권 붕괴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학생과 학부모의 이기적 행태 △사교육 중시 경향 △급진적 정책 마련의 부작용을 지목했다. 먼저 내 자녀만큼은 남달라야 한단 부모의 인식이 자녀의 교육활동에 대한 이기적이고 지나친 간섭으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자녀가 부모의 영향으로 이기적인 태도를 견지하게 돼 교원의 생활지도를 원활히 받아들이지 않게 된단 것이다. 김철<경기대 교육학부> 교수는 “부모가 자녀에게 심은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이 현장에서 교원을 대하는 태도로 나타나면 교권 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경쟁의 교육 속에서 자리 잡은 사교육 선호 현상은 공교육에 대한 무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교육 만능주의는 공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간과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사교육이 공교육에 비해 상급학교로의 진학이나 성적 향상에 적합하다고 판단하면 학교 현장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 있다”며 “이런 인식들이 교원을 무시하는 태도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교권 침해가 급진적으로 마련된 정책의 부작용에서 비롯된 것이란 견해도 존재했다. 지난 10년간 미흡한 학생 인권을 향상하고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학생인권조례와 아동학대처벌법 등 다양한 정책이 시행됐으나, 제도의 이면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이뤄지지 않은 탓에 교원들의 합당한 생활 지도까지 어려워진 상황이다. 임 씨는 “다방면의 논의 없이 시행된 제도로 인해 교원들은 무분별한 아동학대 고소·고발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런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즉각 시정하지 않고 교원들의 목소리를 무시해 왔던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 결과, 현장의 교원들은 조금만 큰 소리를 내도 ‘정서적 아동학대’란 학부모의 비난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다.

교육부의 대응
이렇듯 날로 심해지는 교권 침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 당국에선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17일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안)」를 발표하고, 오는 1일부터 공포·시행을 예고했다. 해당 고시안은 △긴급 상황의 물리적 제지 △문제 학생의 이동·분리 조치 △수업 방해 물품의 분리·보관 등에 대한 허용을 담고 있다. 또한 교원이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근무 시간 외 상담 거부권 △상담 사전 예약권 △특정 상황에서의 상담 중단권 등에 관한 내용도 추가됐다. 학생과 학부모의 책무를 강화해 교원의 교육 활동을 보호하고, 정당한 생활 지도를 보장하겠단 것이다. 교육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교권을 확립하고 모든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해 고시안을 마련했다’며 ‘무너진 교실을 바로 잡고 교육 현장을 탈바꿈시키는 중대한 계기가 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 교실 외벽에 마련된 추모 공간의 모습이다.
▲ 교실 외벽에 마련된 추모 공간의 모습이다.

현장에서 바라는 것은
그러나 교육부의 대책 마련에도 불구하고 고시안의 시행이 확정된 이후, 교원들은 교육 현장 개선을 위해선 더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고시안의 수정·보완을 통한 제도의 실효성 확보 △보호자의 학교 조치 이행 법제화 △학내 사고에 대한 교원 책임 축소 등이 시급하단 것이다.

우선 새롭게 시행될 고시안의 수정과 보완을 통해 기존에 존재하던 제도와의 충돌을 방지하고 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해달란 입장이다. 고시안에 명시된 ‘학생의 극단적 행동으로 인한 긴급 상황 발생 시 물리적 제지 허용’은 「학생인권조례」와 「아동복지법」에 근거해 아동학대 혐의로 판단될 수 있는 민감한 사항이다. 현장에서 시행 중인 법안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보완돼야 안정적인 생활지도가 가능하단 것이다. A씨는 “급하게 마련된 만큼 허점이 여럿 존재하기에 제대로 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며 “교원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도록 일부 개정이 필요할 것”이라 전했다.

뿐만 아니라 학부모의 교권 침해 행위에 대한 제재 방안이 마련돼야 한단 주장이 제기됐다. 현행법으론 학부모가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더라도 달리 제재할 방안이 없고, 이번 고시안에서도 치료·상담에 대한 권고의 ‘조언’만을 규정하고 있기에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단 것이다. 이에 교원들은 학부모의 교권 침해 행위에 대해서도 △과태료 부과 △서면 사과 및 재발 방지 약속 △특별교육 등의 제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B씨는 “올바른 교육을 위해선 교원의 지도와 동시에 가정에서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학부모의 무분별한 행태에도 아무런 보호 체제 없이 맨몸으로 맞서야 한단 사실이 두렵고 서글프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교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 사고의 책임을 모두 교원이 부담하게 해선 안 된단 의견도 있었다. 현행 제도에선 교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 사고의 책임은 오롯이 교원에게 있다. A씨는 “일과 중 학생이 다치거나 싸우는 모든 일을 교원이 혼자 책임져야 하기에 제대로 된 교육활동을 행하기 어렵다”며 “교원이 의도하거나 악의적으로 행한 일이 아님에도 교원에게 책임을 묻는 현행 제도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교실 외벽에 마련된 추모 공간의 모습이다.
▲ 교실 외벽에 마련된 추모 공간의 모습이다.

앞으로의 교육 현장은
교원들의 호소에 지난 23일 교육부는 다시 한 번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종합방안’을 발표하며, 정상적인 교육환경 보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교권 침해에 대한 대응조치 강화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대책 마련 △민원응대시스템 마련 △불합리한 학생인권조례 개선 지원 △학부모의 책무성 강화 등을 예고했다. 그러나 향후 시행까지 안정적으로 다다를 수 있을진 아직 미지수다. 임 씨는 “교육부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의식한 듯, 교육 현장 개선을 위한 많은 방안이 담겼다”면서도 “개별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추진 계획이 마련되지 않았기에 현장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전했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 전달의 역할을 넘어, 미래 사회 구성원에 대한 사회화를 진행하는 공간이다. 이에 현장에선 “교권을 강화하여 타인을 함부로 대하겠단 것이 아닌 그저 상식적이고 정당한 교육 환경을 만들고 싶을 뿐”이라며 “교육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지금의 교육 현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훗날의 사회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조차 모르고 자라날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매일, 매 순간 더 나은 ‘사람’을 키워내기 위해 애쓰고 있는 이들에 대한 보호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움: 김철<경기대 교육학부> 교수
임이랑<법무법인 률> 변호사
사진 제공: 김건주 시민기자
https://blog.naver.com/simga__singa/223164894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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