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글의 뒷바닥을 보며
[장산곶매] 글의 뒷바닥을 보며
  • 지은 기자
  • 승인 2023.06.05
  • 호수 1568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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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 편집국장
                                       ▲ 지은<편집국장>

2년 동안 기자 활동을 하며 한대신문 속에 담긴 글이 걸어온 발자취를 따랐고, 그것의 뒷면을 보았다. 정제된 채 네모 칸을 꽉꽉 채워서 나오는 수많은 글자의 향연 뒤엔 누군가의 눈물과 고난, 기쁨과 감동이 녹아 있다. 때론 찌질하기도 하고, 버겁기도 한 글의 뒷바닥에서 필자는 편집국장으로서 묵묵히 노를 저어갈 뿐이었다.

철저한 이성으로 무장돼야 할 ‘언론’이지만 그 뒷바닥엔 감정과 감정의 치열한 싸움이 존재한다. 취재를 위해 학보사로부터 겨우 한 발짝 밖으로 나간 순간부터, 눈물과 분노의 순간은 끝없이 이어진다. △어리다고 무시하며 △학보사 활동을 가치 없다고 여기고 △잘못을 숨기려 말에 부정적인 감정을 넣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 기자의 잠을 방해한다. 인터뷰 한 줄을 위해 ‘나쁜’ 사람들에게 굽실거려야 하는 것은 물론, 죄송하고 감사하고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길 바라고… 따위의 빈말을 기계처럼 내뱉어야 할 것이다.

치열하게 밖에서 싸우다가 신문사에 다시 돌아오면, 또 한 번 감정을 절제해야 한다. 자신의 글에 대한 자아를 포기하고, 상처받아도 티 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가령 문장이 한 꺼풀 변경되는 것도, ‘발행 부적합’으로 판단돼 기사 전체가 날아가는 것도, 꾸역꾸역 쓴 한 문단이 통째로 삭제되는 것도 모두 감수한 채 ‘끄덕’여야 한다. ‘신문이 추구하는’, ‘우리 편집국장님이 배워왔던’ 그 방향과 논지를 까먹어 버린다면, 멍청하고 답답한 사람으로 몰리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다. 24시간 동안 눈을 부릅뜬 채 예민하게 버티는 마감·조판 회의 동안, 누군가의 앙칼진 목소리는 신문사 안을 가득 메우고, 어쩌면 그 목소리에 자존감을 추락시키는 말이 녹아있을 테다.

한대신문 홈페이지의 광장 칸을 들어가면, 수많은 취재일기에서 학보사의 행복과 보람을 노래하는 기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실상은 많이 달랐다는 것을 독자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편집국장의 뾰족한 말에 상처받은 정기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정기자들에게 실망하는 부장기자 등. 시간이 지나고 한대신문을 졸업한 후에도, 서로를 여전히 이해하지 않은 채 얽힌 갈등이 풀어지지 않는 경우는 허다했다.

이렇듯 온갖 감정들이 복잡하게 묶여 있는 글의 뒷바닥에서 필자는 기자들과 같이 울기도 했고, 불같이 화내기도 했다. 행복의 웃음을 나누기도 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음에 감사하기도 했다. 처음 기사가 날아가 눈물을 보였던 기자에게 “감정을 티 내지 말고, 조절하라”고 말했던 필자도 사실 여러 감정에 마음을 졸였고, 힘들었다. 그래도 사랑스러운 말로만 기자들을 권면하고 싶었는데, 되려 한대신문을 사랑하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려웠다. 지난 발간 과정에선 기자가 애써 써온 글을 한숨에 삭제하기도 했고, 이번 발간에선 “이런 실수를 아직도 하냐”는 말을 수없이 내뱉기도 했다. 그 말들 뒤에선 수많은 선배들이 애써 올린 한대신문이란 탑이 필자 때문에 넘어지진 않을지, 그 역사의 맥이 끊어지진 않을지 늘 두려워하고 있었다.
더 잘하고 싶었고, 더 잘 보이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조금 부족했더라도 23-1학기의 한대신문은 떠도는 목소리를 연결해 역사를 이어 나갔다고 절실히 믿는다. 사랑하는 한대신문 구성원들에게 마지막 한 마디를 남긴다. 그간 우리가 나누고 얻어왔던 부정적인 감정은 어쩌면 꼭 필요했던 것이라고, 조금 실수하고 부족했어도 괜찮다고 말이다.

한대신문을 나가면 이곳에서의 부정적인 감정이 전부 잊힐까봐, 다 잊어서 정말로 그리워지게 될까봐 이렇게 나쁜 면을 글로 남기는 걸지도 모른다. 이젠 글의 뒷바닥을 보지 못하겠지만, 그곳에 있는 온갖 소용돌이를 잊지 않고 응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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