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가작] 얼 그레이차와 라티아오
[2022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가작] 얼 그레이차와 라티아오
  • 김도희<인문대 국어국문학과 19> 씨
  • 승인 2022.11.28
  • 호수 1558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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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어뜨려서 내가 주웠습니다.” 

  목소리에 고개를 올려보니 여자애가 있었다. 길고 까만 머리에 스팽글이 반짝거리는 은색 핀이 눈에 띄었다. 여자애는 펜을 책상에 올려다 두고는 머쓱한 듯 웃음을 지어 보였다. 웃을 때 볼에 양쪽으로 길게 보조개가 생겼다.

  “이름이 뭐예요?” 

  “저는 박준희예요.” 

  “저는 중국에서 왔어요. 메이린이라고 불러요.” 

  그 뒤로도 매주 월요일 문학 비평 수업을 들을 때면 메이린을 만날 수 있었다. 메이린은 항상 창가 쪽 가장 뒷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보다 한 칸 앞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는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좋아한다. 수업을 듣고 싶으면 듣기도 하고 듣고 있지 않아도 많이 눈에 띄지는 않는 자리. 수업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창문을 열어서 바람을 온 얼굴로 맞고는 했다. 몸을 비틀어 돌아보면 메이린의 휴대폰을 꽉 잡은 노란 손톱이 보였다. 수업을 잘 듣지 않는지 가로로 눕힌 휴대폰 위로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휴대폰을 훔쳐볼 때면 자동차가 달리고 있었다. 왼쪽, 오른쪽 누르는 대로 자동차가 움직였다. 

  

  종종 메이린은 손가락으로 등을 찔렀다. 글씨가 적힌 포스트잇을 등에 붙이고는 했다. 네모나고 꺽임이 많은 글씨. 한자를 적는 글씨체와 닮았다. 몇 개의 글자는 볼펜으로 뭉갠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점심 먹었어?

글씨 옆에  작게 –아니 라고 적었다.

-나는 배가 고파서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식당이 없습니다. 나에게 식당을 알려줄 수 있습니까?

  메이린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가방을 어깨에 맸다. “가자” 

가까운 중식당에 가는 길에 메이린은 보조개를 지으며 웃었다. 자주 웃었다. 메이린은 웃음이 많았고, 말도 많았다. “남자친구 있어요?”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는 것처럼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가 말을 다시 꺼냈다. “나는 남자친구가 있어. 남자친구는 중국에 있습니다. 중국에서 만났습니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서 만나기 때문입니다. 같은 동네 살아 친구도 알고 그래서 만났는데 연락을 했습니다….” 학교 건물 일층에 있는 중식당으로 가는 5분 동안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말 중간 중간은 신중하게 숨을 고르듯 잠깐 쉬었다가 마저 말을 이었다. 긴 마디의 말을 끝낸 후에는 뿌듯한 듯 살짝 웃었다. 나도 살짝 웃음이 나왔다.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표정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다만, 표정은 남자친구와 사이가 좋은지, 싸웠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만났는지 같은 것을 확실하게 답해주지는 못했다. 결국 대답은 메이린의 표정에 대한 것이었다. 

  웃고 있을 때는 “그렇구나. 잘됐다.” 대답하고, 표정이 안 좋아 보이면 “괜찮아?” 대답을 해줬다. 잘 소통이 되지 않아서 고개를 갸웃 거릴 때도 있었지만 내용을 듣고 대답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한 대답도 꼭꼭 씹어서 크게 대답했다.

  “너는 남자친구가 있어?” 메이린이 물었다. 이번에는 내가 말할 차례. 최대한 알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단어와 느린 속도,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했다. “나는 남자 친구가 있어. 오늘 만나기로 했어.” “남자친구는 언제 만나요?” 한 시간 뒤에 학교 앞에 있는 캥거루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말하려다가 카페에서 만난다고 했다. “만나서 무엇을 해요?” “대화를 할거야.” 

메이린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아’라는 감탄사를 뱉었다. 오늘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남자친구를 향한 감정. 관계와 연애의 긴 이야기를 해주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방법이었다.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서는 길에는 부슬부슬 얕은 비가 내렸다. 카페는 학교 앞 멀지 않은 곳에 있다. 걸어서 5분이 채 걸리지 않고 내부의 테이블이 다섯 개 밖에 되지 않는 조용한 카페였다. 커튼이 모든 창문에 쳐져 있어서 안에서 바깥을 들여다 볼 수 없었다. 기욱은 그 곳을 좋아했다. 기욱을 처음 만난 곳도 캥거루 다방이었다. 카페에서는 항상 같은 재즈 음악이 들렸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에도 쳇 베이커의 음악이 들렸다.

  “지금 카페에 들리는 음악 어때요?”

  기욱은 손을 턱에 괴고는 물어봤다.

  “이건 너무 우울한 것 같아요. 저는 우울한 음악이라고 해도 조금이라도 유쾌함이 들어있어야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게는 유쾌함이 1퍼센트라도 들어있지 않은 음악은 전부 우울해요.”

  기욱은 내 얼굴을 보면서 살짝 웃었다. 

  “쳇 베이커예요. I fall in love too easily. 여긴 항상 쳇 베이커의 음악이 나와요. 여기 자주 오면 듣던 노래가 흘러나와요. 심지어는 이제 다음 노래가 뭐가 나올지도 알아요. 나중에는 준희씨도 좋아할 거예요.” 

  기욱은 얼 그레이 차를 시켰다. 따뜻한 차를 마시다가 차가 반쯤 남아서 미지근한 온도가 되었을 때 얼음 컵에 차를 담아서 마셨다. 항상 같은 메뉴를 시킨다. 그건 3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얼 그레이 차만 마시는 게 질리지 않냐고 물으면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시간은 항상 앞으로 흘러가지만 나는 늘 같은 모습으로 있고 싶어” 카페에서는 대체로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루에 관한 이야기. 반복되지만 반복되는 것을 즐거워하는 이야기 같은 것이었다. 

 

  나는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이런 질문을 한 적도 있었다. 

  “너는 내가 왜 좋아? 네가 날 좋아하는 이유가 궁금해” 

  “내가 좋아하는 걸 네가 좋아하니까. 우리는 취향이 맞잖아. 이렇게 잘 맞는 사람을 만날 줄 몰랐어. 취향이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이 사실은 가장 어려운 일이니까. 그럼 나도 물어볼게. 너는 내가 왜 좋아?”

  “내가 왜 널 좋아하냐고?”

  “좋으니까”

  내가 사실 가장 좋아하는 건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기욱의 표정이었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믿고 있는 순진한 표정이 좋았다. 그러니까 서로 불만이 없었다. 기욱은 내가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기욱을 좋아하니까. 우울한 커튼이 쳐진 카페나 쳇 베이커의 음악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그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건 놀이공원에서 바이킹을 타면서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껴안거나 같이 걸그룹의 음악을 들으면서 소속사 사장을 욕하는 일 같은 것이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보라카이의 디니위치 비치에서 작은 양산이 꽂힌 파란 칵테일을 마시면서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는 것은 비밀이었다. 기욱 앞에서는 그런 게 비밀이 되고는 했다. 

  예전에 한 번 물어본 적이 있었다. 

  “너는 그런 적 없어?” 

  “뭐?”

  “예를 들면 길거리 한복판에 누워서 여기가 정글이고 나는 하마라고 생각하면서 크게 울어 본 거 같은 것.” 

  “에이 그런 적은 없지.”

  “나도 그런 적은 없어. 대신에 고등학교 때 학교 수업 시간에 몰래 밖으로 나간 적은 있

어.”

  “그런 적은 나도 있을 걸?”

  “학교 뒷문으로 나가면 작은 교회가 하나 있었어. 친구랑 그 곳에서 어린이용 트램펄린에 잠긴 자물쇠를 따고 누워서 휴대폰으로 해변 소리를 들었어. 유튜브에서 하와이 asmr 같은 걸 검색해서. 그리고는 눈을 감고 생각했어. 여기는 하와이고 나는 바닷바람을 맞고 있다고. 그런 걸 생각할 때 나는 제일 행복해”

  “그때는 누구든 그랬을 걸? 학교 공부가 힘드니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기욱은 대

답했다.

 

  점심을 같이 먹은 뒤로 메이린은 나를 조금 더 친근하게 대했다. 여전히 말은 많았고 보내는 포스트잇의 수도 많았다. 나는 듣기만 하고 흘려보내는 말의 양이 많아졌다. 중간고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메이린은 여전히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고 한국어 실력은 늘지 않았다. 그렇지만 메이린에 대해서 알게 된 사실은 꽤 많았다. 한국에 온 지 2년이나 되었다는 것, 한국인 친구는 내가 처음이라는 사실. 그리고 중국인 친구들이 많고 중국에 있는 강아지를 항상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 취미가 젤 네일이고 실력이 꽤 좋다는 것까지도 알게 되었다. 

  중간고사 시험을 보는 날에도 우리는 평소와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시험이 시작되기 10분전에 메이린은 나의 등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분홍색의 포스트잇을 내 손에 붙였다. 

-나에게 답을 알려줘.

  나는 시험지 옆에 작게 물음표를 그렸다.

-?

  그러자 메이린은 내 의자를 당겼다. 포스트잇을 가리키면서 내 귀에 속삭였다. “적어줘.” 답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옆에 –미안 이라고 적은 뒤에 다시 메이린의 책상에 붙였다. 메이린은 내가 붙인 포스트잇을 떼서 구겼다. 작은 공처럼 포스트잇은 구겨졌다. 시험을 치는 동안에 혹시라도 메이린이 시험지를 볼까 엎드렸다. 팔로 시험지를 가린 다음에 깨알같이 글씨를 적었다. 뒤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내 시험지를 컨닝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더 몸 쪽으로 끌어 당겼다. 뒤에서 의자를 끌고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 후에서야 시험지에서 손을 놓을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메이린을 보는 것이 미안해졌다. 답을 알려주지 않은 것은 나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었으면서도 미안했다. 내 것을 엿볼까봐 안쪽으로 시험지를 당겼던 걸 생각했다. 꽤나 치졸한 마음이었다. 

  메이린은 창가 뒷자리에 앉고 나는 그 앞자리에 앉는다. 메이린이 조그맣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히 게임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내 등을 손가락으로 찌르기도, 포스트 잇을 전달해 주지도,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집에 갈 때 말을 걸지도 않았다. 말을 걸지 않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 캥거루 다방. 기다릴게.

  수업이 끝나고 기욱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캥거루 다방에 가자 기욱은 얼 그레이차를 마시고 있었다. 기욱은 같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는 카운터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킨 다음 자리에 앉았다. 아메리카노가 나오고, 한 모금을 한 뒤에야 말을 건넬 수 있었다. “나 워킹홀리데이 가려고.” 

  기욱은 헛웃음을 지었다.

  “말만 하고 안 갈 거면서 너를 봐온 게 3년이야. 진지하게 얘기해서 나 믿을 뻔했어” 

  “네가 싫어하는 거 알아. 그리고 진심이야”

  왜 굳이 가려는 거야? 영어를 두 문장 이상 말해본 적이 있어? 가서 뭐 하고 살 건데? 돈은 모았어? 당연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였지만 나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떤 대답을 하더라도 기욱과 스스로에게 한심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가져본 어학 성적은 2년이 지나서 쓸모 없어진 토익 550점이 전부였다. 기욱은 얼 그레이차를 들어서 얼음컵에 따라서 한 입 마시고는 마저 이야기했다.

  “준희야. 그리고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여자애들이 어떤 말 듣는지 알아? 말로 하긴 좀 그렇지만 시선이 좋지가 않아. 나는 너를 믿지만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온 여자와 결혼한다고 부모님께 말하는 것도 걱정이고.” 

  나는 기욱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았다. 기욱은 손으로 머리를 짚더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네가 무책임하게 느껴져. 너는 나와 미래를 꿈꾸지 않는 것 같아.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워킹 홀리데이 말고 취업이나 생각할 시기 아냐?”

 

  어떤 것도 확실하지 못한 상태로 시간이 지나갔다. 메이린과의 관계, 워킹 홀리데이에 대한 고민, 기욱과의 관계 같은 것 중에서 제대로 해결된 것은 없었다. 매주 나오는 과제와 강의 속에서 차차 고민들은 색이 옅어지고 있었다. 종강을 할 때가 되어야 다른 고민을 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시험이 끝났지만 마지막 수업을 할 것이라는 문자가 왔다. 학생들은 문학 비평 수업 시간에 맞춰서 교실에 앉아 있었다. 다들 불평을 쏟아내면서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메이린을 찾아보았지만 문자를 못 받았는 지 뒷자리에는 다른 학생이 앉아 있었다. 

  평소보다 한시간 정도 일찍 마친 수업에 아이들은 쏟아지듯이 문으로 나갔다. 그 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준희야!”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메이린이 나를 보고는 보조개를 지으며 웃고 있었다.

  “가방 가져와. 간식 가져왔어.”

  메이린은 평소 매던 조그만 핸드백이 아닌 큰 가방을 들고 있었다. 자신의 가방에 손을 넣어서 가득 과자를 집고는 내 가방으로 집어넣었다. 

  “라티아오야.” “그게 뭔데?” “매운 중국 과자야.” 메이린은 가방에 과자를 쏟아 넣고 교실을 나가는 학생들 사이로 사라졌다. 

  과자는 투명하고 조그만 봉투에 담겨 있었다. 봉투에는 노란 고추가 그려져 있었다. 봉투의 끝을 살짝 찢자 코를 찌르는 시큼한 냄새가 났다. 맛있는 냄새는 아니었다. 시큼한 식초의 향과 강렬한 마라 맛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과자는 네모나고 말캉했다. 자세히 보니 죽순 같았다. 먹고 싶은 냄새는 아니었기 때문에 봉지의 끝을 다시 접어서 조심스럽게 가방에 집어넣었다. 

  메이린에게 카톡을 보냈다.

  -한국에는 쫀디기라고 비슷한 것이 있어.

 

  내 공책 한 구석에는 메이린을 생각하며 쓴 메모가 있다. 1. 접속 부사가 정확하지 않다. 2. 종결어미는 자신이 쓰고 싶은 걸 쓴다. 3. 높임말을 썼다가 반말을 썼다가 구분을 못하는 것도 문제 중 하나. 내가 생각한 메이린이 사용하는 한국어의 문제점이었다.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공책 구석에 번호를 매겨서 적어 뒀다. 문자 메시지와 말투에서 실수한 것들을 골라서 그 밑에 예시로 써 두었다. 말을 하는 건 어딘가 미안한 마음에 글씨를 한참 읽다가 책을 덮고는 했다.

 

  유튜브로 호주에 간 사람들의 브이로그를 보고 있었다. 나는 브이로그를 볼 때면 그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저렇게 영어로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영어 인터뷰를 할 수 있을까? 영상 안에서 내가 보였다. 영어가 빽빽한 서류를 이해하지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사인을 하는 나와 닭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서 이마트에서 닭을 포장해본 경험이 있다는 거짓말을 치는 나. 백 패커스에서 말을 더듬는 나와 짐을 도난당했지만 설명을 못해서 그저 울고 있는 내가 있었다. 겨우 사귄 친구에게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설명하지 못해서 굿,굿.을 외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유튜브 영상 위로 알림 창이 떴다. 기욱에게 온 카톡이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호주 간다는 소리 한번만 더 하면 나 못 보는 줄 알아

  나는 답장을 하지 않고 알림 창을 화면 위로 올려 보냈다. 종종 호주에 아직도 가고 싶냐는 기욱의 물음에 소리 없는 웃음으로 답하곤 했다. 호주에 가고 싶은 마음은 기욱에게 비밀이었다. 새로 생긴 나의 비밀이었다. 알림창을 올려 보내고 정지된 동영상 화면을 한 번 누르자 화면 속에 머리를 올려 묶은 여자가 딸기를 따서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몇 분 되지 않아서 알림 음이 한번 더 울렸다.

  -라티아오 맛있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입니다.

  메이린이 보낸 카톡이었다. 답장을 해주기 전에 묻고 싶은 것은 많았다. 왜 굳이 한국에 왔어? 지금 한국은 재밌어? 넌 지금 너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 한국어를 제대로 공부해볼 마음은 없어? 같은 질문들. 그런 질문들은 카카오톡 창을 넘어가지 못하고 머릿속에만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런 질문 대신에 알림창을 눌러서 –응 맛있어. 라는 답장을 보냈다. 

   답장을 보낸 뒤에 가방 안에서 귀퉁이를 세모나게 접은 라티아오를 꺼냈다. 시큼한 마라향이 코를 찔렀다. 라티아오 한 가닥을 조심스럽게 꺼내서 꼭꼭 씹어 먹었다. 생각보다는 맛이 괜찮았다. 메이린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라티아오를 오래오래 씹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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