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이집트의 세상을 열다
한국에 이집트의 세상을 열다
  • 임민영 기자
  • 승인 2022.09.19
  • 호수 1553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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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

4살 때부터 이집트에 반한 이가 있다. 바로 본교 ERICA캠퍼스 출신의 곽민수<문화인류학과 98> 동문이다. 현재 한국이집트학연구소를 설립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그는 아직도 이집트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이집트에 대한 동경심 하나로 시작해 고대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는 곽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집트를 만나다
유년 시절을 이집트 카이로에서 보낸 곽 동문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이집트 문화와 역사를 가까이했다. 당시 접한 고대 문화유산의 기억은 고대 유적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단 마음을 갖게 했고 그의 인생을 이끈 중요한 경험이 됐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피라미드 구경을 간 적이 있어요. 워낙 어려서 이름도 몰랐고 여태껏 장면에 대한 희미한 기억만 가지고 살았죠. 성장 후 ‘테티’란 파라오의 피라미드 내부에 들어가자마자 어릴 적 봤던 그곳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죠.” 고대 이집트 유적과 유물이 그에게 남긴 인상은 시간이 지나도 기억날 정도로 강렬했다고 한다.

귀국 후에도 이집트를 향한 곽 동문의 애정은 계속됐다. 이집트의 유물과 유적이 눈앞에 아른거렸던 그는 이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다양한 책을 독파했다. 결국 초등학교 5학년 무렵, 고대 이집트의 문화유산을 가까이하고 이집트와 관련된 일을 하려면 고고학자가 제일 적합하단 판단을 내렸다. 그렇게 그는 고고학자의 꿈을 품고 문화인류학과 진학을 결심했다.

우리 학교 문화인류학과에 입학한 곽민수 동문은 고고학과 인류학으로 이뤄진 문화인류학을 “자기 자신을 유지하면서 낯선 시공간을 탐구하는 학문이라 타 문화를 대하는 자세를 배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부 시절 가장 인상적이었던 강의를 묻자 당시 국내 유일 마야 문명 전공자였던 정혜주<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교수의 수업을 언급했다. 곽 동문은 정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한국에서 아무도 하지 않는 분야라도 도전할 수 있단 것을 깨닫고 자신의 꿈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집트 고고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한 곽 동문은 졸업 후 본교 국제학 대학원에 입학한다. “유학을 막상 가려 하니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단 생각이 들었어요. 고고학과 인류학은 알아도 그 인접 학문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단 것을 느꼈죠. 국제학을 통해 사회과학 전반을 배우며 이런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었어요.” 대학원을 다니면서 경제학과 사회학을 포함한 다양한 학문을 공부한 그. 2년 동안 국제학을 공부하며 이집트학을 연구하기 위한 방법론을 익힐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곽 동문은 이집트 고고학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국내 유일 이집트 고고학자가 되다
지난 2009년 곽민수 동문은 세계적인 학자가 돼야겠단 포부를 품고 영국 런던대 고고학과 대학원에서 이집트학 공부를 시작했다. 런던대 고고학과는 세계 최초로 이집트학 전공이 생겼던 만큼 학문의 깊이가 오래된 곳이었다. 이런 런던대에서 공부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단 그. “학부생 땐 읽고 싶은 이집트 관련 서적이 생기면 학교 도서관에 신청해야만 읽을 수 있었어요. 그러다가 유학을 가니 이집트 관련 서적은 물론이고 책에서만 보던 고대 유물을 직접 볼 수 있었죠. 학교 근처에 있는 영국박물관에 자주 갔는데 처음에 갔을 때 어마어마한 전시량을 보고 소름이 돋았어요. 신왕국 시대를 전공한 저로선 실재하던 유물을 더 쉽게 접할 수 있단 것이 벅찼어요.”

이런 그에게도 지도 교수를 찾기 위해 여러 대학을 옮겨야 하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고대 중기 이집트어와 말기 이집트어를 배우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3천 년 이상 지속했기 때문에 그 역사를 배우려면 시대별로 조금씩 다른 언어를 터득해야 한다.

이집트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는 영국에서 지내며 고대어를 배우는 것에서 나아가, 인류사에서 가치가 높은 고대 예술 작품들도 자주 접했다. 석사 학위 과정 땐 영국박물관에서 인턴 생활을 하면서 수장고에서 일반 전시엔 선보여지지 않는 귀중한 유물들을 많이 봤다고 한다. 그는 “로제타스톤의 복제품이 여러 개 있었던 것이 특히 기억난다”며 “그만큼 영국도 로제타스톤의 가치를 인지하고 있으며 철저히 관리하려는 의지가 느껴져 다시금 이 유산에 감탄했다”고 밝혔다.
 

▲ 지난 2014년 텔 무투비스 유적의 테스트 피트에서 조사하는 모습이다.
▲ 지난 2014년 텔 무투비스 유적의 테스트 피트에서 조사하는 모습이다.


총 10년간의 영국 유학을 끝마치고, 지난 2019년 귀국한 곽 동문은 한국에서도 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집트에 대한 일반 대중의 관심 증대와 이집트학 분야의 활성화를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 그의 결심은 한국이집트학연구소 설립으로 이어져 지금도 시민들에게 이집트학이 더 친근한 분야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역사 속 변천에 관심이 많은 곽 소장은 현재 연구소에서 피라미드의 모양과 고왕국 시대 태양신앙의 관계성을 살펴보고 있다. 피라미드를 향한 그의 탐구는 대학생 때부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이집트 피라미드에 대해 발표했고 졸업 논문에서도 피라미드의 변화를 다뤘다.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곽 동문은 학부 때처럼 피라미드에 관심이 많다. 그는 “계단형으로 쌓이던 피라미드의 모양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흔히 아는 피라미드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며 “이 변화에 고대 이집트인의 숭배 방식이 어떤 영향을 줬는지 연구하고 있다”면서 피라미드의 변천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관심을 내비쳤다.

이집트학 연구와 함께 곽 동문은 시민들에게 이집트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기 위해 전시회 자문을 맡기도 한다. “오는 12월에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이집트 전시회는 이집트를 많이 알릴 수 있는 기회에요. 국내 역대 이집트 전시회 중 가장 규모가 큰 만큼 꼼꼼히 자문에 참여해서 대중에게 올바른 이집트 지식을 전하고자 노력하고 있죠.”

30년 넘게 이집트를 아끼는 곽 동문은 이집트는 “변화하지 않는 변화”의 문명이라 더욱 끌리는 역사라 말했다. 3천 년 이상 동안 이집트 문명은 소소한 변화가 있어도 문화적 동질성은 유지됐다. “먼 과거라고 생각하는 클레오파트라 시대보다 고대 이집트 문명은 훨씬 더 과거에요. 굉장히 오래된 문명임에도 근본적인 사회 구조와 문화는 늘 꾸준했단 것이 다른 문명과는 다른 부분이고, 제가 흥미를 느낀 부분이에요.” 이집트가 지닌 지속성은 비단 그 사회 내에서만 보인 특징이 아니다. “이집트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아무리 힘이 세도 영토를 넓히려 하지 않았어요. ‘이집트는 이집트 그대로여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마인드가 존재했던 것 같아요. 고대 문명이란 것을 생각하면 볼수록 신기한 사회죠.”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고대 이집트의 매력에 곽 동문은 현재까지도 이집트 공부가 새롭다.
 

▲ 지난 2020년 덴데라의 하토르 신전에 방문한 곽 동문의 모습이다.
▲ 지난 2020년 덴데라의 하토르 신전에 방문한 곽 동문의 모습이다.


계속될 이집트 연구
홀로 한국에서 이집트학의 길을 개척하는 곽 소장은 한국에서 생소한 학문이라 외로운 분야란 것이 제일 힘들다고 밝혔다. 반면 이집트 고고학을 연구하면서 제일 뿌듯했던 순간을 묻자 그는 “지난 2014년 첫 발굴 때 이집트 사이스 지역에서 유물을 발굴했다”며 “역사의 흔적을 찾아 뿌듯함과 희열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한국의 이집트 연구 활성화를 위해 곽 소장은 앞으로도 연구와 대중 커뮤니케이션을 둘 다 진행하면서 자신이 속한 분야가 한국에 정착할 수 있게 힘쓸 계획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 2년 반 동안 이집트에 가지 못한 그는 언젠가 한국인 팀을 만들어서 이집트에서 발굴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다고 한다. 이집트를 향한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준 그는 “어제의 나보다 나은 오늘의 내가 될 수 있도록 하자”라는 생각으로 매일 열심히 살고 있다. 이집트를 향한 애정이 가득한 곽민수 소장처럼 한국 사회의 이집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날을 기대해본다.

그 시절 감성
Q. 고대 이집트 문명은 3천 년 가까이 이어온 문명인데 연구하면서 현대 시대와 공통점을 느낀 적이 있나.
A. 고대 이집트 옛날이야기 중 기원전 1500~1000년에 전해진 이야기가 있다.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단 마법사의 소문을 듣고 파라오가 마법사를 불러 죄수를 죽일 테니 다시 살려보라고 하는 내용이다. 마법사는 이에 “사람은 안된다. 사람은 고귀한 존재다”라고 하는데 당시 고대 이집트인들도 인권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단 것을 알 수 있다. 인권을 현대적 가치로 생각할 때가 많지만 사실 고대 이집트에도 기초적인 형태의 인권이 있었고 이런 일화를 접했을 때 신기하더라.
 



사진 제공: 곽민수<한국이집트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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