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한대신문 문예상 비평 우수상] ‘다크호스’의 관점에서 해석한 ‘제로투원’
[2021 한대신문 문예상 비평 우수상] ‘다크호스’의 관점에서 해석한 ‘제로투원’
  • 김정곤<공대 전기·생체공학부 17> 씨
  • 승인 2021.11.29
  • 호수 1540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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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가지고 있는 졸업장]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쥔 당신에게 이제 남은 건 4년간의 방탕한 생활이 만든 허무의 감정과 수천만원의 학자금일 수 있다. 학교 생활을 성실히 했다면 졸업식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무언가를 해냈다는 찰나의 기쁨은 곧바로 사라진다. 다시 눈 앞이 깜깜해지는 건 마찬가지다. 주변 모두가 가지고 있는 학위를 획득하기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달렸다. 인생의 도전과제를 하나 완료했다. 다음은 뭐지? 다음 단계는 없다. 믿고 따라오라던 커리큘럼은 이제 마침표를 찍어버렸다. 학교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4학년의 모습은 사회에 발을 딛는 순간 사라진다. 학교를 벗어나 새로운 영역에서 초심자가 되고 바보가 된다. 주변에는 내가 모르는 것들로 가득 찬다. 차라리 다시 뒤로 돌아가 내가 아는 두려움을 만나고 싶다.

4년간의 결과가 왜 이 모양일까? 이토록 불안하고 어두운 결과는 학교 시스템의 필연적인 부분은 아닐까? 시스템을 파헤쳐보면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시스템이라는 건 한 순간에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조들의 수천년 간의 노력 끝에 고차원의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고 전달할 수 있는 대학의 시스템이 생겼다.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학시스템에 더 영향을 미친 건 공장의 표준화였다. 기계에 사람을 맞춰 효율을 극대화한 공장 자동화 시스템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교육계는 학교 시스템을 빠르게 표준화하였다. 특정 산업에서 우수한 인재가 되기 위해 표준화된 진로코스가 구축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성공을 위해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때 성공은 특정 기관의 사다리를 밟고 올라와 부와 지위를 획득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유치원에 첫 발을 뗀 순간 시스템에 들어오게 되고 은퇴까지의 삶이 정해진다. 공장 표준화의 목적이 기계중심 자동화를 통한 효율이었다면 학교시스템의 목적은 산업을 이끌어 나갈 똑같은 사람을 효율적으로 키우는 것이다. 당신이 표준화가 되면 직업에서 우수성, 어느 정도 부와 명예를 보장해준다고 유혹한다. 고유한 개성과 소질을 포기하는 한 뛰어난 직업을 사회로부터 보장받는다. 겉으로 보기에 기회의 평등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남들 모두와 똑같지만 더 뛰어나야 한다. 뛰어나지 않으면 시스템에서 낙오되어 사다리를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한다. 표준화 시대의 성공 법칙은 될 때까지 노력하라이다. 안타깝지만 이 말은 2가지 조건 내에서만 유용하다. 첫번째는 이미 알맹이만 쏙 빼먹고 껍데기만 남겨진 권위가 아니어야 한다. 두번째로 미래가 과거와 현재의 모습과 같다는 조건이다. 두번째 조건은 철학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현재에 좋다고 생각한 것들이 미래에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변화는 자연의 속성이고 우리는 변화를 벗어날 수 없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수평적 진보를 중요하다 생각하지만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건 수직적인 진보이다. 수직적 진보는 기하급수적인 발전, 파레토 분포, 마태의 원칙, Power Law, 8020법칙이라고 불리는 L자 곡선을 만든다. 세상은 기하급수적인 발전으로 이루어진다. 당신이 올바른 투자를 했다면 한 항목의 최고 수익은 다른 모든 투자의 수익을 합친 것보다 많을 것이다. 인생을 투자한다면 가장 가치 있는 것에 가장 많이 투자해야 한다. 그 분야는 당신의 인생에서 다른 모든 가치를 합친 것보다 큰 의미를 줄 것이다. 불안한 미래를 대비한다는 핑계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에너지를 나눠 담는 것은 인생의 낭비다. 어차피 모든 것을 준비하지도 못한다. 이런 낭비가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다. 학생들은 각종 커리큘럼을 따라가며 들어보지도 못한 능력들을 마치 수집하듯 익히고 있다. 수직적인 진보와 인생의 투자를 생각해볼 때, 학교에서 보장하는 부와 명예는 더 이상 인생을 걸 만큼 값지지 않다.

세상에는 세계적인 천문학자가 된 중퇴자 제니 맥코믹Jennie McCormick, 학위 없이 최고의 양재사 앨런 룰로Alan Rouleau 같이 틀을 깬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런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그들은 학교에서 성공을 보장받지 않았다. 표준화된 시대의 성공의 조건에는 개인적인 만족감이 빠져 있다. 학교 커리큘럼에 있는 교과목을 당신이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모두 똑같은 걸 배우고 남들보다 더 잘하면 된다. 사람마다 고유한 개성과 기질이 다르듯, 개인마다 만족감을 얻는 상황은 다르다. 주변 상황이 나의 개인적인 요소들과 잘 들어 맞을수록 만족감이 커진다. 두렵지만 자발적으로 혼돈을 마주할 용기가 생긴다. 용감하게 맞서 싸우고 보물을 얻는다. 커리큘럼을 벗어나 나의 상황에 맞춰 길을 정한다.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더 이상 불안에 떨지 않는다. 표준화의 길을 벗어나서 자신의 얘기를 듣고 그 길을 따라 간다면 영웅이 될 수 있다. 만족감을 느끼며 의미 있고 보람찬 매일매일을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틀을 깬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얘기이다. 학교를 벗어나서도 가능하다. 미래가 변하면서 이러한 개인화가 더욱 중요해진다.

 

[다가오는 미래]

10년 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10년 뒤는 미래가 아니다. 하지만 1년 동안 많은 것이 변하면 1년 뒤는 미래가 된다. 수많은 기술이 융합한 결과로 우리가 쫓아가기도 벅찬 혁신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 비행자동차, 모빌리티 혁명,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 로봇공학, 블록체인, 재료과학과 나노기술,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빠른 속도로 우리의 삶에 다가오고 있다. 안정성을 따지는 기존의 기업들은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예일대학교의 리처드 포스터교수에 따르면 500대 기업의 40퍼센트 이상이 향후 10년안에 생소한 기업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한다., 맥킨지 글로벌 리서치의 연구에 따르면 인터넷 때문에 하나의 직업이 사라질 때마다 2.6개의 새로운 직업이 등장했다고 한다. 미래는 더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학교시스템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약속했던 보상은 몇 년 뒤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몇 백년 전에는 왕만이 국가를 바꿀 수 있었다. 몇 십년 전에는 사장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었다. 이제는 개인이 세상을 바꾼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세계적 위기는 빠르게 해결되고 있다. 가격이 낮아진 생필품들을 이제 대부분 소유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삶의 조건이 풍족해지고 있다. 이제 어떤 가치가 중요해질까? 미래 기술의 방향은 데이터 기반의 개인 맞춤 서비스이다. 여기서 힌트를 얻어보자. 결국 중요한 핵심은 개인화이다. 필요한 것은 개인적인 목표, 고유한 개성이다. 모든 것이 풍족한 유토피아에 도착해도 삶의 목표가 없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다리를 물어뜯을 것이다. 본인에게 중요한 것들을 스스로 정의하고 그것을 목표로 삶을 설계해야 한다.

목표는 미래와 관련이 있다. 내게 보이는 미래에 따라 현재의 목표와 행동이 달라질 것이다. 미래를 바라볼 때 철학에 기반한 4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명확하고 비관적, 명확하고 낙관적, 불명확하지만 비관적, 불명확하지만 낙관적인 관점이다. 미래가 명확하고 비관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능력을 키워 미래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때 모든 것을 다 잘한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가장 확실한 가치에 전념을 다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도 비관적인 미래의 모습을 정해두고 최소화할 방법을 찾았다. 반면에 명확하고 낙관적인 미래를 기대한다면 큰 고민없이 무엇인가를 붙잡고 시도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의 사람들은 우연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계획의 힘을 과소평가한다.

미래가 불명확하고 비관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것에 대비하려고 달려든다. 그러나 실질적인 것은 없다.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자소서 한 줄을 채우는 것이다. 포트폴리오가 탄탄한 사람은 자신이 미리 정해 놓은 기준만 넘어선 뒤 만족하고 그동안 꿈꿔온 여유로운 삶을 조금이나마 즐긴다. 안타깝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는 언제나 새롭게 등장한다. 자소서가 빈약한 사람은 최대한 적어낸 다음 이정도로 충분하기를 바란다. 왜 몇 년간의 시간을 낭비했을까 고민한다. 능력 이상의 회사에 떨어지고 세상을 탓한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불만을 토로한다.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하다. 결과가 일어날 가능성을 높인 나의 행동을 돌아보고 다시는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문화를 원망하고 사회를 탓하기 위해 이 질문을 사용한다. 불명확하고 낙관적인 미래는 어차피 미래는 창창할 테니 지금 휴식을 취하자는 입장이다.

학교는 미래는 현재와 같을 거라며 안심시킨다. 실질적으로 할 줄 아는 것은 없지만 성적표 속 A+하나에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불안에 떨면 다들 마찬가지라고 원래 그런 거라고 다독인다. 시야는 좁아지고,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경쟁한다. 잘못된 교육시스템이 경쟁을 부추긴다. 남들과 똑같은 포트폴리오를 채우기 위해 입학 후 10년간 똑같은 짓을 반복한다. 어떻게 될지는 너무 뻔한 상황이다. 똑똑한 또래들과 똑같은 커리어를 두고 경쟁한다. 갈수록 경쟁은 심해지고, 교육비용은 늘어난다. 꼭 필요한 질문이 있다. 왜 이러고 있는가? 학교를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며 자신의 길을 찾지 않는 대가는 참혹할 것이다.

 

[학교에서 대비하는 미래]

학교에 입학한 누구나 교육을 통해 사회를 이끌어 나갈 강력한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다. 표준화된 시스템을 갖췄다 할지라도 대학의 본질은 고차원의 지식을 익히고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대학의 토대는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학교는 수많은 선조들의 지혜가 깃들려 있는 공간이다. 방대하고 위대한 지식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 수천년 전 학교의 시스템이 탄생했다. 학교 도서관엔 위대한 사상가들의 책이 넘쳐난다. 그들의 책을 읽고, 생각하고, 반박하고, 이해하고, 글을 쓰고, 정리하고, 핵심을 정제하여 자신의 지식으로 바꿔 그들의 관점을 배운다면 자신을 탐구하는 것에 능숙해지고 미래를 더 잘 바라보게 된다. 글을 쓰고,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진실되게 말하는 법을 배우면 미래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졸업 후 뭘 할지 고민하기도 전에 당신 앞에 이미 수많은 기회가 놓여있을 것이다.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위해 한 우물만 팔 이유는 없다. 당신에게는 인맥과 다양한 클러스터가 필요하다. 한 사다리만 타고 올라가는 것보다 여러 사다리를 이동하며 올라가는 것이 커리어와 능력향상에 더 도움된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학교는 여러 작은 클러스터를 포함하는 하나의 거대한 클러스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학과라는 작은 커뮤니티를 벗어나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을 하며 클러스터 사이를 연결하는 브로커가 될 수도 있다. 강력한 존재가 되고자 한다면 당신을 도와줄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만약 내 주변에는 도움을 줄 사람이 없고 내가 아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6단계를 거쳐 전세계 사람들을 모두 연결하는 밀그램의 6단계법칙이 있다. 누구든지 당신과 연결될 수 있고, 당신 또한 누군가의 노드가 되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도 있다.

학교에서 어떤 존재로 변할 수 있고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 4년 간 자신이 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이 되는 것은 모두가 꿈꾸는 그림일 것이다. 미래를 바라보고 스스로 목표를 정해 자신의 길을 만들어간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하지만 너무 힘든 일 아닌가? 꼭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건지부터 따져보자. 졸업 후 취업할 정도로만 공부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따져보면 기반이 되는 생각은 아주 불확실하고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상도가 너무 낮아 표현을 제대로 할 수도 없다. 인생엔 혼돈과 질서가 있다. 당신이 모든 성벽을 막아 질서를 통제한다고 해도 성벽 안에서 뱀은 등장한다. 무수히 많은 고통의 요인들을 전부 통제하고 대비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누워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두려운 존재를 알면서도 모른척한다면 미래의 고통이 커진다. 작았던 두려운 존재는 이제 몸집을 키워 당신을 덮친다. 하지만 그러한 존재도 똑바로 응시하고 맞서 싸우기로 결정한다면 이겨낼 수 있다. 물론 이기더라도 당신은 상처투성이에 몸이 성한 곳이 없을 수 있지만 당신은 혼돈을 무찌르고 보물상자를 얻을 것이다. 심리학자의 금언 중에 하나는 두려움에 자발적으로 마주한다면 당신은 끊임없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맞서 싸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결론]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막연하다. 나이 든 내 모습을 떠올려봐도 희미한 실루엣만 보일 뿐이다.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은 모두를 당황하게 한다. 미래를 그려보는 것은 왜 이렇게 힘들까? 미래를 생각할 때 내측 전두엽피질의 기능이 멈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 부위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는 멈추지만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 활발하게 기능한다. 미래의 나는 내가 아닌 낯선 사람으로 인식된다는 말이다. 그럼 남일이라 생각하고 내버려둬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2~3년 짧은 미래를 떠올리고 몰두할 무엇인가를 찾아 세부 목표를 세워 조금씩 나아가야 한다. 교수님도 선배도 부모님도 내가 원하는 길을 맞출 수 없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실되고 가치 있는 조언조차 사실 나와 정반대의 길일 수도 있다. 나의 관심사는 오직 스스로 물어야만 찾을 수 있다. 약간의 힌트라도 얻는다면 아주 깊이 파고 들어야 한다. 지금까지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능력을 탓하고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자신에게 실망해서 스스로 꼴도 보기 싫어하던 과거를 받아들여야 한다. 맹목적으로 학교를 맹신하던 과거를 반성하고 마치 다른 누군가를 관찰하듯 자신을 탐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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