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변화하는 정체성, 이상한 게 아닌 특별한 것
[칼럼] 변화하는 정체성, 이상한 게 아닌 특별한 것
  • 윤설화<일반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21 졸업> 동문
  • 승인 2021.11.29
  • 호수 1540
  • 11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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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설화<일반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21 졸업> 동문

악당을 뜻하던 빌런이란 용어가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최근에는 빌런의 의미가 확장돼 무언가에 집착하거나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괴짜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부정적인 의미를 강조했던 용어가 넓게 쓰이기 시작하면서 ‘악’의 의미는 점차 옅어졌다.

반복되는 스토리에 지루함을 느낄 때쯤 우리는 빌런의 특별함에 매료됐다. 다양한 작품 속 빌런은 주인공 못지않게 주목받고 있다. 때론 빌런이 영웅보다 더 매력적으로 비춰진다. 빌런 영화는 흔히 사회적 편견을 현실적으로 풀어내 공감을 유도한다. 또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자신만의 신념을 드러낼 때, 우리는 더더욱 빌런의 서사에 몰입하게 된다. 감명 깊게 봤던 영화 ‘조커’가 그러했다. 조커의 행동에 개연성이 부여되고, 그 너머로 사회적 약자의 잔상이 겹쳐지는 순간 광기는 사그라들고 예상치 못한 공감과 마주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흔히 사람들은 상태나 특성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는다.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특성상 주변 시선의 영향으로 우린 늘 평범함에 집착한다. 평균의 기준에 못 미친 사람들을 ‘다름’이 아닌 ‘결핍’으로 보는 시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회가 주입하는 정상성을  위한 일상적 폭력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무언가에 푹 빠져있는 현대의 ‘빌런들’과 함께 각종 빌런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은연중에 타인의 행위를 정상이 아닌 병리 현상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인간은 모두 같지 않은 특별한 존재지만 수많은 사회적 기준에 의해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국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헤겔은 자의식의 기초가 타인의 시선에 있다고 말했다. 소설 「아몬드」에선 감정 장애를 앓는 주인공 윤재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윤재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비정상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런 손자를 ‘예쁜 괴물’이라 부른다. 괴물 취급을 당했던 윤재를 이상한 시선이 아닌,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봐 준 것이다.

누구에게나 반짝이는 구석이 존재한다. 숨겨져 있는 구석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사람, 반대로 당당하게 모퉁이를 펼쳐 보이는 사람, 그리고 매력이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사람까지. 자신에게 얼마나 보석 같은 구석이 있는지 알게 될 때 우리는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평생 자신의 잠든 모습을 바라볼 수 없다. 걸음걸이는 어떤지, 공상에 빠진 모습은 어떠한지, 옷에 먼지가 묻진 않았는지. 무심코 지나친 순간들에 언제나 타인의 눈길이 먼저 닿는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흔한 일상의 모습들마저 눈길을 멈추고 바라봐 줄 것이다.

변화하는 환경 앞에 떨지 않을 자신은 없다. 하지만 보다 따뜻하고 특별한 시선을 비춰줄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정체성은 좀 더 안정되고 행복한 쪽으로 변화할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 필자를 있게 한 건 출산을 기다리던 부모님의 간절한 기도였고 편치 않은 몸으로 투정을 받아줬던 할머니의 손길이었다. 혹은 칭찬과 꾸중을 아끼지 않았던 선생님의 가르침이었고 생일날 전해 받은 친구의 손편지와 밤새도록 정주행했던 드라마였을 것이다. 그러니 필자의 정체성엔 언제나 기꺼이 시선을 내어준 다른 이들과 세상의 영향을 받으며 행복의 색깔이 입혀졌다.

이제 필자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더 흥미로운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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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현 2021-11-30 00:39:25
기존에 당연시 해왔던 가치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글이네요!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들과 상반되는 것들을 보고 틀렸다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하지만 그저 다른 모습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그것 자체로 인정해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것이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글을 읽고 세상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것이 아닌, 서로를 모두 가치있게 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