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해도 취업난은 여전… 늘어나는 ‘청년 구직단념자’
대학 졸업해도 취업난은 여전… 늘어나는 ‘청년 구직단념자’
  • 최시언 기자
  • 승인 2021.09.13
  • 호수 1535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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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 포기했어요” 우리 학교 졸업생 A씨는 지난 3년간 준비해 온 구직을 그만뒀다. A씨는 “그동안 공모전에 참여하거나 인턴으로 활동하는 등 취업 준비에 전념했지만 결과적으론 취업에 실패했다”며 “포기 이후 3개월 정도 쉰 상태지만 여전한 취업난으로 인해 다시 취업시장에 뛰어들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1년 내 구직활동 경험이 있지만 최근 4주간 취업난과 같은 사유로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자’. 구직단념자의 정의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구직 활동을 포기하고 ‘그냥 쉬는’ 청년층이 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악화된 취업난에 몸도 마음도 지친 탓이다.

지난 7월, 통계청에 따르면 구직단념자 수는 63만 3천 명으로 역대 최다 규모를 기록했다. 이들 중 절반가량은 20·30세대였다. 구직단념자의 증가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지적된다. 바로 장기실업자(구직기간 4개월 이상)와 장기간 취업준비에 고전하는 청년층의 증가다. 우선 지난 6월을 기준으로 지난해 동월 대비 장기실업자가 4만 9천 명 늘며 그 증가세가 가속화되고 있고, 이 가운데 구직을 단념한 이들이 곧 구직단념자가 된 것이다. 동시에 청년층은 노동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워지면서 취업을 경험하지도 못한 채 구직기간이 늘어났고, 마찬가지로 구직 단념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들이 구직을 단념한 이유로는 △교육·기술·경험이 부족해서 △원하는 임금수준·근로조건이 맞는 일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 △이전에 구직을 시도했으나 일자리가 없어서 등이 있었다.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러 경험을 쌓은 고학력자들은 많은데 그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취업시장에서 탈락된 청년들이 쌓여 청년층 구직단념자의 증가로 이어졌다”고 답했다. 

이러한 상황의 원인으로는 청년 노동시장의 수급 구조가 지적돼왔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대기업의 채용은 줄어들었고, 낙후된 근로환경 등의 이유로 중소기업 기피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기업 기준 대졸 신입사원 채용시장은 지난 2019년 하반기 정기 공개채용이 56.4%에서 올해 상반기 42.1%로 급감했다. 해마다 여러 차례 신입사원을 정기 공채로 뽑았던 대기업들이 지난해부터 수시, 인턴 채용제를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교수는 “최근 대기업들이 경기침체로 인해 신입 채용보다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거나 업무 외주화를  시행하는 등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고용을 줄였다”며 “인턴과 같은 단기 계약 형태가 늘었으나 이것이 정식 채용으론 이어지지 않아 과거와는 다른 수급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고 답했다. 결국 청년들의 노동시장 유입은 그대로지만 취업 문이 좁아지고, 실업이 장기화되면서 구직단념자를 낳게 된 것이다.

중소기업의 경우 취업경쟁이 그나마 덜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 종사자 중 중소기업 종사자 비중은 86.1%로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은 중소기업에 취직하더라도 비정규직 채용, 낙후된 근로환경 등의 문제가 개선되지 않다 보니 결국 실업 상태로 되돌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청년층 구직단념 이유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던 ‘원하는 임금수준·근로조건이 맞는 일자리가 없을 것 같아서’ 항목도 이러한 중소기업의 상황과 연결돼 있었다. 한국경제연구원에서도 “청년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구직을 단념한 청년들이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구직단념자의 증가는 그동안 사회에서 다뤄진 취업준비생의 어려움과는 분명 다른 문제다. 이 교수는 “구직 의사가 있는 취업준비생은 노동시장 상황이 호조되거나 고용 정책이 마련됐을 때 도와줄 수 있지만, 이미 의욕을 잃고 좌절해버린 구직단념자의 경우 사회로 끌어내는 시도조차 어려울 수 있다”며 “구직단념자 증가는 취업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라 말했다. 

실제로 일본 사회에서도 청년층의 취업난이 장기화되면서 구직단념자 문제가 발생했다. 이들은 ‘무업 세대’ 혹은 ‘잃어버린 세대’라 불리며 수많은 사회적 비용을 유발했다. 한국은행 고용조사팀 관계자는 “청년들의 생산 활동은 경제 사회 차원에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데, 생산 활동을 멈춘 무업 세대는 오히려 부양해야 할 대상이 되므로 사회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일본의 사례처럼 우리나라의 청년층 구직단념자 수가 늘어 고착화될 경우 코로나19와 같은 외부 충격이 사라진 후에도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이력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구직단념자의 저조한 *취업전환율로 인해 이력현상이 나타날 수 있음을 설명했다. 한국은행 노동시장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지난 2월까지의 구직단념자의 취업전환율은 26.2%로 현저히 낮은 실정이다. 그 이유는 구직단념자 대부분이 장기 실업에서 비롯되며, 더욱이 청년층의 경우 취업 경험도 거의 없다 보니 긴 경력 공백으로 인해 노동시장에 변화가 있더라도 구직에 나서지 못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청년 취업난이 심각해지자 정부는 △미취업 청년 긴급취업장려금 △청년 구직 활동 수당지원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 교육 등 다양한 청년고용 노동정책을 시행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현재 시행 중인 정책은 굉장히 형식적이며, 노동시장에서 이탈한 사람들의 재진입을 위해선 고용 가능성을 키워야 한다”고 비판했다. 조대연<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도 “장려금 보조는 청년 취업난을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며 “단순한 경제적 원조는 원래 목적을 달성하는 대신 역으로 구직 의욕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고 답했다. 

이에 정부도 구직단념자에 대한 새로운 대책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김송이<고용노동부 청년고용기획과> 사무관은 “현재 고용노동부에서 구직단념자 증가 추세를 인지하고 대책을 모색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지역별 취업상담과 교육을 진행해 구직의욕이 저하돼 있는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지원할 계획”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고용 복지 서비스망을 구축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무르는 만큼 여전히 많은 노력이 필요한 상태다.

이 때문에 구직단념자들이 다시 취업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정책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 교수는 “성별, 학력 등에 따라 겪고 있는 문제가 다른데 모든 구직단념자를 포괄해 지원책을 세우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지방자치단체별로 어떤 청년들이 있는지 세세하게 조사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도 “현재 정부의 고용정책만으론 구직 단념자의 노동시장 재참여를 이끌어낼 수 없다”며 “사회안전망과 함께 학교·직업 훈련기관, 지역 사회의 전 과정에서 주기적으로 추적·상담하는 추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이후 청년층의 구직단념자가 크게 증가한 상황에서 별다른 대책 없이 이들을 방관할 경우 이는 청년들만의 문제가 아닌 노동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의 대책이 부진했던 만큼 새로운 대책 마련을 위해 힘쓸 필요가 있다.


*취업전환율: 실업자 중 3개월 후 취업상태로 전환된 사람의 비율이다.

도움: 김송이<고용노동부 청년고용기획과> 사무관
이병훈<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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