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새로운 관점, 벡델 테스트
영화를 보는 새로운 관점, 벡델 테스트
  • 김유선 기자
  • 승인 2021.09.13
  • 호수 1535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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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 부상한 ‘벡델 테스트’를 아시나요?
지난 겨울 청룡영화제에서 감독상과 각본상을 수상해 2관왕을 달성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영화가 있다. 바로 영화 「윤희에게」가 그것이다. 「윤희에게」는 △따뜻한 미장센 △탄탄한 각본 △훌륭한 연기로 주목받았지만 이 작품에 주목해야 할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바로 「윤희에게」는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란 점이다.

벡델 테스트란 미국의 여성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남성 중심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계량하기 위해 지난 1985년 고안한 영화 성평등 테스트다. 테스트 통과 기준은 세 가지다. △이름을 가진 여성이 두 명 이상 나올 것 △이들이 서로 대화할 것 △이 대화 내용에 남자와 관련된 것이 아닌 다른 내용이 있을 것 등이다.

벡델 테스트가 처음 세상에 등장한 것은 지난 1985년이지만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지난 2017년 하반기 시작된 할리우드 내 미투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성평등한 영화계를 위한 물결의 일환으로 이 테스트가 대두됐다. 특히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미디어 산업 안팎에 만연한 성차별, 여성의 기회 불균형을 고백하며 국내에서도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영화 「우먼 인 할리우드」에서 벡델 테스트를 조명하며 이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한국영화감독조합이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벡델 테스트를 중심으로 한 행사인 ‘벡델데이’를 개최하고 있다. 이 행사는 일상은 물론 문화·예술 분야 내 성평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기획돼, 올해로 2회를 맞았다.

그러나 영화 산업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벡델 테스트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이 테스트의 평가항목은 영화 속의 수동적 여성상만을 경계하고 단순한 기준만 제시하기 때문이다. 최근 영화계에 여성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영화계에서도 주체적인 여성상을 그려내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에더불어 촬영장 등지에서 작품 외적인 성평등 기준을 제시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 같은 기존 테스트의 한계를 보완해 우리나라에선 ‘벡델 테스트7’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감독조합은 기존의 벡델 테스트를 바탕으로 하되, 35년 동안의 간극을 메꾸기 위해 현재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테스트 항목을 추가해 벡델 테스트7을 제작·발표했다. 추가된 항목은 아래와 같다. △감독,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 촬영감독 중 1명 이상이 여성 영화인일 것 △여성 단독 주인공 영화이거나 여성 캐릭터의 역할과 비중이 남성 주인공과 동등할 것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 시선을 담지 않을 것 △여성 캐릭터가 스테레오 타입을 담지 않을 것 등이다. 이를 통해 한국 영화계가 영화 자체뿐 아니라 영화 산업 전반에 있어서의 성평등과 다양성을 담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지난해 기존 테스트를 보완해 제작한 ‘벡델 테스트 7’이다.
▲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지난해 기존 테스트를 보완해 제작한 ‘벡델 테스트 7’이다.

실질적 평등과 다양성의 인정이라는 가치가 우리 사회 안에서 기본적이고 당연한 가치로 자리 잡은 지금, 우리도 영화계의 성평등과 다양성 제고를 위해 벡델 테스트를 바탕으로 영화를 관람해 보는 건 어떨까.

내가 ‘벡델데이 2021’을 보던 날
지난해에 이어 지난 4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영화감독조합이 주관하는 ‘벡델데이 2021’이 무관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됐다. 올해 ‘벡델데이 2021’는 지난해 개봉된 국내영화 중 벡델 테스트7을 통과한 영화 총 10편을 선정한 ‘벡델초이스10’의 발표와 함께 △1부 ‘벡델클래스’ △2부 ‘벡델 심포지엄’ △3부 ‘벡델리안 테이블’로 구성된 총 3부의 행사로 구성돼 진행됐다.

1부에선 영화 작품 속 여성 인물과 서사 작법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이뤄졌다. 앞서 소개한 벡델 테스트7의 추가된 항목 중에는 영화 작품이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적 시선을 담지 않을 것’과 ‘여성 캐릭터가 스테레오 타입을 담지 않을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창작 영역의 관습에서 벗어난 인물상과 여성상을 그려내고, 그 내용을 혐오와 차별의 테두리 밖에서 전개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실제로 많은 신진 영화인들은 이런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난 인물과 서사의 창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도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등 다수의 SF소설을 집필한 김초엽 작가는 “새로운 소재를 가지고 서사를 구성할 때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한다”며 “서사의 중심은 인물들이 잡고 그 인물들의 감정을 따라 흘러가게 한다”고 언급하며 고민을 해결한 본인만의 작법기술을 밝혔다. 영화 속의 성적 고정관념을 벗어나 창작에 있어 상상과 현실의 타협점을 찾기 위한 영화인들의 더욱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단 걸 엿볼 수 있었다.

더불어 테스트엔 ‘△감독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 △촬영감독 중 1명 이상이 여성 영화인일 것’이라는 항목이 있다. 한국 영화계의 작품 외적 성평등은 어떨까? 조혜영 영화평론가가 발제에 나선 2부 벡델 심포지엄에서 이 물음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는 ‘2020년 한국영화산업의 성평등 현황’을 통해 극장 개봉 영화 중 영화계에 여성 종사자의 비율을 공개했다.

지난해는 여성 영화감독의 비율이 최초로 20%를 넘긴 한국 영화 역사의 기념비적인 해였다. 그러나 조 영화평론가는 이를 많은 극장 개봉 예정 영화가 코로나19로 인해 개봉을 연기하거나 OTT 서비스로 자리를 옮긴 특수 재난 상황에서 빈 극장을 채우기 위해서 여성 영화감독들의 영화가 극장에 진입해 발생한 상황이라 설명했다. 그는 “영화계 내 여성 감독의 입지가 점점 굳어지고 있지만 지난해의 수치를 괄목할 만한 영화계의 성장으로 평가하긴 힘들다”며 영화를 보는 대중에게 “사회 전반에서 여성이 과소대표되는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계의 적극적인 ‘캠페인과 장단기적인 정책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 여성 촬영감독의 경우는 영화계 직종 중 지난 5년간 유일하게 10%를 넘지 못할 정도로 여성의 진출이 더디다. 이에 대해 이서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학과 21> 씨는 “한국의 촬영계엔 여성이 무거운 촬영 장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할 것이란 편견이 여성의 기용을 가로막고 있다”는 상황을 전했다. 촬영계에서 더 많은 여성 영화인이 능력과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이번 ‘벡델데이 2021’에서 조 영화평론가가 언급했듯 벡델 테스트나 현재 영화계를 향한 지적은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는 성별 이분법적인 관점에 매몰돼 있다. 한국 영화계가 단순 성별을 넘어 사회 도처의 다양한 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아 낼 수 있도록 우리 역시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좌측부터 ‘벡델데이 2021’ 공식 포스터와 지난 4일 1부 ‘벡델클래스’에 참여 중인 김초엽 작가, 2부 ‘벡델 심포지엄’에서 발제 중인 조혜영 영화평론가다.
▲ 좌측부터 ‘벡델데이 2021’ 공식 포스터와 지난 4일 1부 ‘벡델클래스’에 참여 중인 김초엽 작가, 2부 ‘벡델 심포지엄’에서 발제 중인 조혜영 영화평론가다.

도움: 김초엽 작가
조혜영 영화평론가
사진제공: 한국영화감독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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