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같이 달콤한 가사, 너의 세상에 아름답게 물들길
바닐라같이 달콤한 가사, 너의 세상에 아름답게 물들길
  • 나병준 기자
  • 승인 2021.09.13
  • 호수 1535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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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경 작사가

가수 샤이니의 「Sherlock」, EXO의 「Love Shot」 그리고 지난달 16일에 발매된 레드벨벳의 「Queendom」까지. 모두 본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조윤경 작사가의 손을 거쳐서 탄생한 노래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가수 보아의 「Listen To My Heart」 *번안 작사를 맡으면서 작사계에 입문한 그녀는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작사 스타일로 K-POP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어느덧 작사가로 활동한 지 20년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 그녀가 써 내려 간 노랫말을 따라 작사의 세계로 떠나보자.

글쟁이 소녀, ‘덕업일치’를 이루다
TV와 가수를 좋아했던 평범한 학생. 그녀가 설명한 학창 시절의 모습이다. 다만 글쓰기와 책 역시 좋아해 교지를 만들었을 정도로 글에 대한 애정만큼은 남달랐던 그녀였다. 작사가에 대한 뜻이 없었던 그녀가 ‘작사’란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건 좋아했던 가수의 앨범 안에 있던 작사가 오디션 글을 통해서였다. 무심코 써 내려간 노랫말은 기획사와의 인연으로 이어졌고, 그렇게 그녀는 작사의 세계로 들어서게 됐다. “당시 기획사에선 아이돌 연습생을 키우듯이 작사가도 키워보잔 말이 나오고 있었어요. 감사하게도 제가 썼던 글이 회사가 추구하는 색깔과 맞았던 거죠.”

하지만 그녀가 작사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엔 전문 작사가란 개념이 없었을뿐더러 수입도 변변치 않았기 때문에 작사가란 직업에 대해선 회의적이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이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그녀는 “수많은 아티스트와 함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기 때문”이라 밝혔다.

하나씩 써 내려간 동화 같은 노랫말
현재 프리랜서 작사가로 활동 중인 그녀는 기획사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아 작업하고 있다. 그녀는 기획사의 블라인드 심사를 통해 작사 학원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과 경쟁하기 때문에 나태해질 수 없고, 트렌드에 민감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학생들이 쓴 가사를 보면 ‘나라면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란 생각이 들 만큼 과감하고 독창적인 가사가 많아요. 이런 학생들의 가사가 치열한 경쟁과 부족한 기회로 채택 받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죠. 하지만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성과를 내야겠단 동기도 부여된다는 점에서 좋은 자극제가 되고 있어요.”

이에 그녀는 다양한 걸 경험하며 작사를 위한 영감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다. 무언가를 위해 준비된 상태와 그렇지 않은 상태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사로 쓰면 좋을 것 같은 단어나 글귀를 적는 수첩이 있을 정도로 일상 속 경험과 관찰을 중요시하는 그녀는 이를 ‘워밍업’이라 부른다. 그 결과 그녀는 많은 이들로부터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스타일의 작사가란 평가를 듣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녀는 “작업할 때 감정이입을 많이 하기 때문에 서정적인 자아가 발현되며 시너지가 극대화됐던 것 같다”고 답했다.

그녀는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에 대해 주저 없이 “내 이름이 담긴 첫 앨범을 받았을 때”라 말했다. “고등학교 때 보아의 「Listen To My Heart」 번안 작사를 맡았던 게 첫 작업이었어요. 그 당시는 제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고 번안 가사를 싣는 것에 불과했지만 처음이었기에 뜻깊었죠.”

가사를 쓰며 생각했던 포인트를 아티스트가 구현했을 때 텔레파시가 통한 듯한 기분이 들어 행복하다는 그녀. 그녀는 이러한 순간이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힘든 나날도 많았다고 전했다. 더 좋은 가사를 쓸 수 있었음에도 마감에 쫓겨 작업하는 경우가 빈번할 정도로 스케줄에 대한 압박이 컸다. 한 곡에 대한 작업을 끝내면 곧바로 다음 곡을 작업해야 하는 과정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수많은 ‘루키’ 작사가들을 위해
작사가로서 활동한 지 곧 20년을 바라보는 그녀는 오랫동안 이 일을 한 만큼 곡을 쉽고 빠르게 분석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양날의 검’으로 비유했다. “혐오나 차별 요소를 항상 경계하는 것과 함께 ‘내가 쓰는 표현이 적절한가’에 대한 자기검열도 이뤄져야 하는 것 같아요. 더 과감하고 새로운 표현을 시도할 수 있음에도 주저하게 된다는 거죠.”

그녀는 작사를 ‘액세서리를 추가하는 작업’이라 표현했다. 곡에 대한 윤곽이 나온 상태에서 가사를 쓰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을 고려함으로써 아티스트를 더욱 빛나게 하는 작업이 곧 작사란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생각하는 신인들과 자주 작업했다는 그녀는 이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고 전했다.

나이가 들어도 오랫동안 아이돌 그룹의 작사가로 활동하며 후배 작사가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겨주고 싶단 그녀. 작사가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겐 “서두르지 말고 쉽게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어차피 좋아서 시작한 일이잖아요. 글이 나오지 않으면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말고 잠시 쉬어 보세요. 쉬다 보면 분명 다시 하고 싶어질 거거든요. 슬럼프가 올 수도 있지만,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좀 더 예쁘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이번 인터뷰를 통해 만난 그녀는 자신이 작업한 곡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창작자임과 동시에 K-POP을 진심으로 즐길 줄 아는 팬이었다.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란 말이 있듯이, 우리도 무언가를 잘하기 위해선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진심으로 아끼고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 그룹 ‘신화’의 팬이었던 것을 기점으로 늘 누군가의 팬이었던 그녀. 지금도 누군가의 팬이란 사실이 곧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이라 말하며 스스로를 ‘아이돌 덕후’라 표현했다.
▲ 그룹 ‘신화’의 팬이었던 것을 기점으로 늘 누군가의 팬이었던 그녀. 지금도 누군가의 팬이란 사실이 곧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이라 말하며 스스로를 ‘아이돌 덕후’라 표현했다.

*번안 작사: 외국 곡의 멜로디와 테마를 그대로 사용하되, 다른 언어를 통해 노랫말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사진 제공: 조윤경 작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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