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초청 이승복 의사 특별 강연회
부푼 꿈을 안고 간 미국은 그에게 실망과 소외감을 주었다. 그는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를 물을 뿐 한국인이냐고 묻지 않는 것에 화가 났었다”고 했다. 그는 미국에서 올림픽 '한국'대표 체조선수로서 우승자가 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고된 훈련만 계속되었을 뿐 마음의 공허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던 열여덟 살의 어느 날 체조 연습 도중 한순간의 사고로 사지마비 척수 장애인이 되었고 의사들로부터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의사들의 가혹한 말에 분노하였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좌절이 절망이 아님을 믿고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따뜻한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부모님도, 의대 학장도, 그 누구도 가능하다고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다시 한번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그는 싸워야만 했다.
이승복 씨는 최우수 졸업생으로 뉴욕대를 나와 콜럼비아대에서 공중보건학 석사를 마치고, 다트머스대에서 본격적인 의학공부를 시작하였다. 인턴과정을 하버드 의대에서 마칠 때는 '올해의 인턴'으로 뽑히는 영광을 누렸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는 그의 말은 그의 화려한 이력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알게 했다. 현재 그는 그의 환자들에게 의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장애인으로서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다.
그는 어떤 경주, 분야의 1등과 같은 단순한 승리가 챔피언을 만들지 않는다고 말하며,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당부했다. "올림픽 대표 체조선수로서의 태극마크가 아닌 나의 한계와 싸워 오면서 얻은 심장의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손에는 전동 휠체어를 사용하지 않아 휠체어를 밀면서 생긴 굳은살로 가득하다고 한다. 편한 것만을 추구하며 노력하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그는 앞으로도 다른 꿈을 위해 휠체어를 밀고 나갈 것이라고 말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앞으로의 비전을 묻는 학생의 질문에 앞으로도 자신의 전공인 척수신경과를 살려 세계 어느 나라든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강연을 들은 오영재 <의대·의예 02>는 “여태까지 나도 모르는 한계를 만들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강연이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소희 기자 sohee228@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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