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학과의 빛과 그늘
계약학과의 빛과 그늘
  • 이예종 기자
  • 승인 2020.06.01
  • 호수 1513
  • 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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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각광받고 있는 ‘조기취업형 계약학과’는 대학의 학위과정 중 하나다. 해당 계약학과에 진학하는 학생은 정해진 교육과정을 따르면 취업을 보장받는다. 학교를 주축으로 정부 혹은 산업계가 학생 인재의 수요자로서 이 사업에 참여한다. 학교는 정부나 기업이 원하는 맞춤형 인재를 길러내며, 학생은 정부나 기업의 등록금 지원을 받는다. 이 모델이 적용된 우리 학교의 학과는 ERICA캠퍼스의 ‘스마트융합공학부’다. 해당 학부엔 △건축IT융합전공 △로봇융합전공 △소재부품융합전공 △스마트ICT융합전공이 하위 전공으로 나뉜다. 스마트융합공학부는 3년 과정으로 1학년은 학교 수업에 주로 집중하고, 2학년부터 채용을 계약한 기업 현장에서 실무와 학습을 병행한다.

반면 취업자를 교육하는 ‘재교육형 계약학과’도 있다. 대부분의 재교육형 계약학과는 학사학위를 소지한 취업자가 석사과정을 밟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번에 신설된 서울캠퍼스의 ‘기능성식품학과’가 대표적인 예시로, 해당 학과 재학생은 등록금을 지원받으며 회사 실무에서 겪는 문제를 이론적 지식을 토대로 해결한다. 

취업난에 어려움을 겪는 작금의 시점에서 계약학과는 학위부터 취업까지 보장받는 무결점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계약학과의 구조적 딜레마로 인한 문제와 교양과 학생 자치활동의 아쉬움도 남는다.

계약학과의 구조적 딜레마
우선 조기취업형 계약학과는 구조적으로 딜레마에 빠져있다. 계약학과의 지속가능성을 함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교내 대학평의원회에선 ‘우리 학교 계약학과가 지금껏 많이 생기고 없어졌는데 계약학과의 지속성을 유지할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ERICA캠 계약학과사업팀 소속인 문병선<공학대 행정팀> 팀장은 가장 이상적인 계약학과 운영방식으로 “기업마다 원하는 인재가 달라, 사실은 한 개 내외의 기업만 계약학과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문 팀장은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덧붙였다. 소수 기업 참여로 계약학과가 유지되기 위해선 계약학과 참여 기업이 매년 일정한 수의 졸업생을 전부 채용해야 한다. 

그런데 기업의 재정 상황이나 산업의 성장성에 따라 채용이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소규모 기업 다수가 참여하는 현실은 불가피하다. 그런 이유로 문 팀장은 “상시 근로자가 적은 소규모 기업은 매년 계약학과를 통해 학생을 뽑을 여력이 되지 않는다”며 “반면 대기업 입장에선 고졸자를 학부생으로 키워 채용하는 것보다 이미 취업한 학사학위소지자를 석·박사생으로 키우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팀장은 “스마트융합공학부도, 다수의 소규모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가장 이상적인 계약학과의 운영 방식은 현실엔 적용하기 힘든 ‘이데아’인 것이다.

교수에게 과중한 업무가 부여돼
따라서 지금의 계약학과 운영방식은 교수의 업무를 과중하게 한다. 스마트융합공학부는 4개의 세부 전공으로 분류되며 다양한 기업이 참여한다. 그 때문에 해당 학부 교수는 연구와 학생 관리는 물론 다수의 기업까지 관리해야 한다. 문 팀장은 “계약학과 교수는 학생들은 물론 계약 대상인 기업까지 관리해야 해 훨씬 부담이 큰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전임교수 1인이 담당하는 학생 수도 많아 계약학과 전임교수의 부담은 가중된다. 본 학부의 운영은 지난 2019년부터 시작돼 2020년 기준으로 2개 학년이 운영되고 있다. 2개 학년의 정원은 총 300명으로 학부에 12명의 교수가 배정돼있다. 전임교수 1인당 25명의 학생을 담당해야 하는 셈이다. 이는 「대학설립·운영 규정」 제6조에 따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수치다. 더구나 총 3개 학년이 운영되기 시작하는 다음해 총 정원이 450명이 되면 전임교수 1인당 학생 수는 37.5명으로 급증해, 교수의 충원은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이다. 

교육과 학생 자치활동의 아쉬움도 남아
학생들은 수업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스마트융합공학부에 재학 중인 익명을 요구한 학생 A씨는 “교수들도 전문성이 부족하고, 스스로 힘겨워하시는 것도 느껴진다”며 “수업의 수준도 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과 동떨어지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실무 위주의 교육과정으로 인해 교양교육과 학생 자치활동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학부생에겐 교양교육과 학생 자치활동도 중요한 요소다. 이를 통해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고 사람과 교류하며 전공 수업만으로는 부족한 배움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창의융합교육원은 교양교육을 통해 △글로벌 역량 △소통 역량 △인성 △융합적 사고 △창의성  등을 함양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교수 B씨도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필수로 배워야 하는 소양 교육을 배우지 못하는 것에 대해선 논의의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재 스마트융합공학부는 교양교육과 학생 자치활동에 있어서 많은 부족함이 있다. 스마트융합공학부 교육과정에선 1학년 때 ‘IC-PBL과 경력개발’, ‘소프트웨어의 이해’, ‘4차산업혁명의 이해’ 등의 과목이 그나마 교육과정 내 교양과목이라 할 수 있는 전부다. 임성진<스마트융합공학부 건축IT융합전공 19> 씨는 “물론 진학한 학과와 관련한 산업에 관심이 많고, 취업이 확정되고 지원까지 받기 때문에 다양한 학업 기회가 없는 것도 감수할 수는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임 씨는 “교양과목은 2학점짜리 하나가 전부에, 다중전공이나 부전공을 통해 다른 분야를 경험할 기회가 없는 것은 아쉽다”고 전했다.

스마트융합공학부가 초기 단계인 이유도 있지만, 구조적으로 학생 자치활동이 보장되기 어렵다. A씨는 “학생 자치활동을 시작할 때 학생들이 처음부터 많은 것을 구성해야 하는 점이 어려웠다”며 “2학년이 되면 취업을 나가기 때문에 신입생들도 선배 없이 새롭게 학생 자치활동을 꾸려나가야 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정해진 진로 외에는 다른 길을 걸을 수 없지만, 절대로 계약학과의 만족도가 낮다고 볼 수는 없다. 박광용<스마트융합공학부 로봇융합전공 19> 씨는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고한 학생에겐 정말 추천하고 싶은 전형”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조기취업형 계약학과의 중도이탈률 역시 다른 학과와 비교해서 높은 수준이 아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계약학과는 새로운 대학교육의 모델로 성장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다만 이를 위해 스마트융합공학부의 교수 수 확보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물론, 현장에 필요한 기술에 전문성을 보유한 교수를 임용해야 한다. 또한 3년 안에 교양교육과 학생 자치활동을 보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우리 학교 학생이라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것들에 소홀하진 않은지 고민해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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