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위의 영원한 캡틴 양동근 선수
코트 위의 영원한 캡틴 양동근 선수
  • 박용진 기자
  • 승인 2020.05.03
  • 호수 1510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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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근 농구선수


지난 2월 29일을 마지막으로 농구 코트를 떠난 ‘작은 거인’ 양동근 선수. 양 선수는 본교 체육학과를 졸업한 후,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 받아 프로 농구계에 입성했다. 무려 14년이라는 긴 세월을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에서 묵묵히 활약해온 그는 ‘모비스의 영원한 캡틴’이라고 불린다. 소속 구단의 팬은 물론, 모든 농구 팬에게 뜨거운 박수와 인정을 받으며 화려한 선수 생활의 막을 내리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는 양 선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농구와 함께한 학창시절
양 선수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농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농구선수가 되겠다고 부모님에게 말했을 땐 반대에 부딪혔다. 농구를 향한 애정으로 3년을 매달린 결과,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농구부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제가 초등학생일 때, 농구대잔치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농구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제가 운동보단 공부하길 바라셨어요. 오래 걸리긴 했지만 끈질긴 노력으로 농구부 가입 허락을 받았어요.”
3년의 설득 끝에 얻어낸 농구부 생활이었지만 순탄치만은 않았다. 신체 조건이 무엇보다 중요한 농구에서 작은 키는 항상 그의 약점이었다. 키가 작았던 그는 번번히 출전이 가로막혔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다른 능력을 키워갔다. “키가 작아서 경기에 많이 나가지 못하니까 체력을 키웠어요. 다른 친구들보다 키는 작지만, 체력만큼은 지지 말자는 생각을 갖고 체력 훈련에 매진했던 것 같아요.”

이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그는 대학 진학이라는 관문에 부딪히게 된다. 대학 진학을 앞둔 시점에서 그는 *초고교급 유망주는 아니었다. 그래서 비교적 수월하게 대학에 입학하는 다른 유망주들과 달리 어렵게 본교 체육학과에 진학하게 됐다. “저는 대학을 정말 힘들게 왔어요. 우리학교 농구부에 들어온 것도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이뤄졌을 정도였어요. 입학할 당시, 지금은 돌아가신 故김춘수 감독님께서 저를 믿어주시고 다방면으로 많이 도와주셨어요.”

주변 시선을 바꾸고 전체 1순위로
다른 선수들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한 상태로 입학한 대학에서 그는 기막힌 반전을 써내려 간다. 그는 대학교 1학년 시절부터 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양 선수가 중심이 된 우리 학교 농구부는 농구 대잔치에 구경꾼으로 출전하던 과거와는 달리 당당히 우승을 노리는 팀이 됐다. 

양 선수가 4학년이던 2003년, 그는 당시 대학 농구 최강이라 불리던 연세대를 농구 대잔치 결승전에서 만난다. 이미 3학년 때 패배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는 설욕을 다짐했다. 하지만 접전을 반복한 끝에 결국 우승은 연세대에게 돌아갔다. 비록 패배했지만 양 선수는 대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2003년 연세대와의 농구 대잔치 결승전을 꼽는다.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우승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했기에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한 경기만 이기면 우승이 눈앞에 있었는데, 너무 아쉽게 져서 오래 기억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지난달 21일 양 선수는 팔 수술을 받았다. 선수 생활 시절 짧은 휴식기로 인해 수술을 받지 못했던 그의 모습에서 농구를 향한 열정이 느껴졌다.

양 선수는 2004년 KBL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프로 무대에 입성한다. 대학 입학 당시와는 전혀 다르게 ‘신인드래프트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으며 많은 프로 구단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전체 1순위로 지명된다는 건 정말 큰 영광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운동했더라도 프로까지 가지 못하고 그만두는 선수들도 많으니까요. 주변에서 아무리 2004년 신인드래프트를 최악의 드래프트라 해도, 당시 저에게는 정말 큰 영광이었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찼어요.”

굿바이 NO.6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프로에 입단한 걸 증명하는 듯, 양 선수는 프로에 와서 그야말로 날아다녔다. 2005년 KBL 최우수 신인상 수상을 시작으로 예열을 마친 그는, 3년 차 시즌이던 2007년 통합우승을 차지한다. 대학 시절부터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그였기에, 프로 무대 3년 만에 따낸 첫 우승 트로피는 아직도 그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같은 해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 결정전에서 사상 최초로 만장일치 MVP까지 차지하며 그는 2007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프로에 와서 처음 한 우승이라 그런지 가장 잊지 못할 우승인 것 같아요. 우승 한번 해보지 못하고 은퇴를 할 수도 있는 게 스포츠 세계인데, 입단 3년 만에 통합우승을 차지했으니 가장 기억에 남을 법도 하죠.”

그 이후로도 5번의 우승을 더 추가한 그는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농구선수로서 화룡점정을 찍는다. 그리고 그는 2019-2020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하나의 구단에서만 활약한 선수에게 붙는 명칭인 ‘프렌차이즈 스타’이자 ‘한국 농구의 대들보’ 역할을 한 그가 선수로서 코트를 떠난다는 사실에 많은 농구 팬들은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그는 농구 선수가 아닌 다른 인생을 준비 하고 있다. 그의 은퇴 이후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선수로는 농구 코트를 떠났지만, 사람 양동근으로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인 그의 행보를 기대해 보자.

 

자신을 모비스 심장이라 표현한 양 선수는 울산 모비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프랜차이즈 스타답게 그의 등번호 6번은 영구결번이 될 예정이다. 모비스의 영원한 캡틴으로서, 팀을 향한 애정이 느껴진다.

 

*초고교급: 고등학생의 실력을 넘어서는 등급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진 노승희 기자 seunghi0703@hanyang.ac.kr
도움: 조은비 수습기자 merongjuice@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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