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보폭으로 계속해보겠습니다
나만의 보폭으로 계속해보겠습니다
  • 배유진<피블> 브랜드 커뮤니케이터
  • 승인 2020.03.15
  • 호수 1507
  • 7면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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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유진<피블> 브랜드 커뮤니케이터

 

서른이 되면 인생이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골칫 거리 컨셉의 서른 살 노처녀 여주인공 캐릭터가 클리셰였던 시대를 거쳤기 때문일까. 바뀐 앞자리는 여전히 낯설지만, 다행히 30대라는 새로운 시즌은 생각보다 제법 긍정적으로 내 삶에 녹아들고 있다. 서른이 됐다고 해서 갑자기 연봉이 배로 오르거나, 없던 집이 생겨나는 일은 없지만! 나는 내 삶이 제법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비슷하겠지만, 나의 이십 대는 ‘험난하게’ 자아를 찾던 시기였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비슷한 삶을 사는 만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다는 같은 울타리에 있는 게 중요했던 십 대. 그 시기를 지나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필해야 하는 이십 대가 됐다. 하물며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조차도 말이다. 스스로 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끊임없이 나를 어필해야하는 과정을 마주치자, 사실 나의 자아는 타인의 시선으로 이뤄진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타인의 시선을 거른 진짜 나의 취향, 가치관, 삶의 목표. 어느 하나 결코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내겐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대학 생활 속 자아 찾기는 없었다. 쉼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시간을 쪼개 학점을 챙기고 대외활동을 했다. 월 30만 원 생활비로 취향을 쫓는 건 사 치였다. 잘난 친구들은 너무나 많았 고, 나의 애매한 재능을 초라하게 만드는 친구들 역시 넘쳐났다. 인간관 계는 우정이고 사랑이고 할 것 없이 언제나 폭풍 같았다. 타인의 시선을 걸러내자던 나는 상황과 사람에 따라 매일 다른 사람이 됐다.

정신없이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스 물여덟이 됐던 봄, 나는 꽤 오래 아팠다. 표면적으로 다친 곳은 없었지만, 마음이 아파 집 앞에도 나가지 못하게 됐다. 그 와중에도, 늘 그랬듯 ‘다른 사람들은 취업 준비로 바쁠 텐데’, ‘내가 이렇게 아프다고 하면 어떻게 바라볼까’ 따위의 생각을 하며 자책 했다. 정작 이 지경이 되기까지 힘들 었던 스스로를 생각하지 못한 채 말 이다. 이때부터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에서 벗어나자고 결심했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바쁜 일상 속에서 주어진 상황을 소화하기 보다는 그저 삼켜버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익숙했다. 그러한 상황들 이 쌓여 나를 만들어냈을 텐데 말이다. 집에서 쉬는 동안 나는 기억나는 이슈들이나 사람들, 하고 싶었던 것, 미련 남는 것 등을 매일 조금씩 적어 나갔다. 정신없이 지나친 일들을 글로 풀어 보면서, 당시의 내가 묻어둔 감 정이나 과거의 선택이 왜 잘못됐는지 깨닫곤 했다. 이 시간은 온전히 ‘나’에 게 초점을 맞춘 내 삶의 가이드라인 이 됐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이고 내 삶의 모든 선택은 내 권리임을 마음 깊이 새길 수 있었다.

이제는 굳이 모든 모임에 참석해 얼굴 도장을 찍고 다니지 않는다. 혼자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덕분에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던 글 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내가 지지하는 일에 자신있게 목소리 낼 용기도 생겼다. 모든 걸 놔버리고 싶은 순간을 마주하면, 나를 스쳐갈 기회를 생각하며 좀 더 빨리 추스릴 줄 알게 됐다. 분명 삶은 나를 또 언제 갑자기 바닥으로 꽂아 내릴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뭐래도 이젠 나만의 가이드라인으로 이 삶을 제법 잘 살아낼 자신이 있다. 결국, 이 삶을 살아가는 건 나 자신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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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9 17:32:01
건강한 가이드라인 응원하겠습니다

조윤아 2020-03-16 19:32:05
같은 또래로서 너무 공감되는 글입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병헌 2020-03-16 19:13:48
지나가다 지난 20대를 돌이켜보게 해준 좋은 글에 댓글 남겨봅니다~

날다 2020-03-16 17:06:59
계속해서 글 쓰는 유진언니를 기대하며 :)

박성철 2020-03-16 16:40:08
계속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