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기(記)자가 아닌 기(基)자, 어뷰징 보도
[아고라] 기(記)자가 아닌 기(基)자, 어뷰징 보도
  • 황수진 기자
  • 승인 2019.12.31
  • 호수 1506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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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가수 설리 씨가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비보의 충격에서 벗어날 겨를도 없이 가수 구하라 씨도 한 달 뒤 세상을 떠났다. 이 두 가수의 죽음에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어뷰징 보도’의 희생자라는 점이다. 어뷰징 보도는 기사의 조회 수를 높이기 위해 언론사가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는 행위를 말한다.

구 씨를 향한 어뷰징 보도는 지난 2018년 9월, 구 씨와 당시 구 씨의 남자친구였던 최 씨와의 쌍방 폭행 사건이 계기가 돼 폭발적으로 늘었다. A 언론사는 ‘구하라 남친 폭행, 춘자·김숙이 본 구하라 싸움 실력’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 보도했다. 구 씨가 불법 촬영물 협박 피해 사실을 밝힌 뒤에도 어뷰징 보도는 여전했다. B 언론사는 ‘밤 생활 방해해서 미안해요. 구하라, 남자친구와 나눈 카톡 보니’ 등의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를 보도하기 바빴다. 뿐만 아니라 언론은 구 씨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했다. 구 씨가 불법 촬영물 유포 협박 피해 사건 이후 SNS에 사진을 게재한 것을 두고, C 언론사는 ‘구하라, 남자친구 최종범 논란 이후 첫 근황, 이 와중에 SNS?’ 등의 조롱 섞인 기사를 작성했다.

설리 씨를 향한 어뷰징 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2016년 가수 최자 씨와 공개 연애를 시작한 설리 씨를 대상으로 ‘설리 연인 최자, 설리 밤에 전화해서 ○○ 해달라고 조른다.’ ‘설리, 최자를 만나는 이유? 그의 물건을 바라볼 때 만족’ 등의 비상식적인 제목의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 도배됐다.

왜 언론사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를 게재할까? 이는 포털 사이트에서 기사 조회 수가 높을수록 언론사에 더 많은 수익이 돌아가는 구조 탓이다. 실제로 ‘10대 전국 종합 일간지에 속하는 한 언론사가 조회 수를 많이 올리는 기자에게 성과급을 준다’는 폭로도 있었다. 말 그대로 언론은 연예인에 대한 관심이 높은 사회적 분위기를 악용해 ‘클릭 장사’를 한 것이다. 문제는 어뷰징 기사가 연예인을 향한 악플을 양산하는 장이 된다는 것이다. 언론은 ‘피해자다움’과 ‘여성 연예인’이라는 프레임을 세우고, 그 속에서 설리 씨와 구 씨를 포함해 수많은 연예인이 인격모독을 당하도록 조장했다.

포털 뉴스제휴평가위원회에서는 어뷰징 보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7년 11월 어뷰징 보도 문제가 심각한 매체 7곳과 뉴스 공급 계약을 해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포털사이트 다음도 지난해 10월부터 연예 뉴스 댓글 서비스를 잠정 폐지했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언론이 스스로 성찰하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설리 씨와 구 씨의 죽음 이후, 언론은 그들의 죽음이 악플 탓이라고 단정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악플을 쓸 수 있도록 판을 마련한 언론이 취해야 하는 태도는 책임 회피가 아닌 반성과 쇄신이다.

“기자님들, 저 좀 예뻐해 주세요“, 설리 씨가 웹 예능 「진리상점」의 스페셜 영상에서 한 말이다. 언론은 어뷰징 보도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어뷰징 보도를 근절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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