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인간은 누구든지 생명권을 존중받아야 한다
[사설] 인간은 누구든지 생명권을 존중받아야 한다
  • 한대신문
  • 승인 2019.12.31
  • 호수 1506
  •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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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female)과 살해(homicide)의 합성어인 페미사이드(femicide)는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것을 말한다. 좁게는 여성에 대한 증오 범죄부터 넓게는 여성 살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지난해 11월 23일 프랑스에서는 반(反) 페미사이드 시위로 인해 파리가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참여자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돼서는 안된다’며 시위를 진행했고, 몇몇 참가자들은 살해된 여성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멕시코 △스페인 △칠레에서도 반 페미사이드 시위가 열렸다. 한국 역시 페미사이드에 대한 담론이 시작되는 추세다. 

△가정폭력 △데이트 폭력 △성범죄 △연쇄살인 등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여성들에게 ‘나도 언젠가 죽임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줬다. 지난 2016년 서울여성가족재단이 서울에 거주 중인 20~30대 1인 거주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4.6%가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실제로 경찰청이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일어났던 강력 범죄 중 여성 피해자 비율은 △강간 98.4% △강제추행 89.2% △기타 강간·강제추행 등 93.5% △유사 강간 86.2%이다. 게다가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은 제대로 된 통계자료조차 없다.

△“술 한 잔 더 하고 싶다”는 이유로 문을 두드렸다는 신림동 강간 미수 사건 △“여성들에게 받은 무시를 참을 수 없어 죽였다”는 강남역 살인사건 △여성만을 목표로 한 연쇄살인 사건 △베트남 출신 아내를 폭행한 사건 △성관계 동영상 유포 △화장실 불법 촬영 등 여성을 향한 범죄가 한국사회에 만연하다. 위와 같은 사건들에서 남성들의 살해 동기엔 여성에 대한 인격과 존중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들은 스스로 ‘살아남았다’고 말한다. 

페미사이드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다. 사회와 정부는 이러한 부당한 죽음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페미사이드에 관한 담론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것은 한국 사회가 여성 인권에 무관심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현재도 여성혐오 범죄로 여성들이 사망하고 있다. 성폭행과 2차 가해는 피해자를 신체적 죽음뿐만 아니라 정신적 죽음에까지 이르게 만든다. 이수연 국선변호사는 “피해자가 느끼는 피해감정과 피해의 정도는 매우 심각한 데 비해 국가기관에서 느끼는 범죄의 심각성은 낮아 그 온도차가 크다”라고 말하며 우리나라의 실상을 지적했다. 

페미사이드는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주로 발생한다. 이런 혐오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약자를 향한 폭력은 계속될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울타리가 돼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페미사이드는 사회적 의제로 제시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관련 통계조차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더 이상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부는 관련 이슈에 관심을 갖고 국민의 차별 없는 생명권을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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