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유출, 대책 없는 대책
개인정보유출, 대책 없는 대책
  • 정채은 수습기자
  • 승인 2019.12.31
  • 호수 1506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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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1497호 ‘우리 학교 학생 3백여 명 개인정보 유출, 아직까지 제대로 된 후속 조치 없어’ 기사에서는 지난해 7월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사건을 다뤘다. 서울캠퍼스 ‘러닝페이스메이커’에 참여한 학생 352명의 개인정보가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모든 학생에게 전체 메일로 발송돼 유출된 사건이다. 정보유출 사건이 발생한지 약 5개월이 지난 지금, 사건은 어떻게 마무리 됐을까.

러닝페이스메이커를 운영한 교수학습지원센터 관계자 A씨는 “개인정보 유출사건에 대한 후속조치로 △미수신 메일 전량 회수 △개인정보가 담긴 메일 삭제 요청 △파기 확인 메일 회신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와의 간담회를 통한 대책 논의 △담당자 비대면 사과문 발표가 취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모든 조치가 완료된 지난해 8월 이후 세 달간 추가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며 “이번 일은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잘 해결된 선례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개인정보를 담은 메일 삭제 여부는 메일 수신자 본인만이 확인할 수 있어 교수학습지원센터의 해명은 납득되기 어렵다. 

교수학습지원센터는 비대위와의 간담회에서 ‘2차 피해에 대한 배상을 받으려면 피해학생이 법적 절차를 거쳐 피해 사실을 입증하고 승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했다. 또한 A씨는 “다른 기관의 선례를 볼 때, 우리 학교 사례처럼 피해학생이 한정된 경우 2차 피해는 거의 우려되지 않는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2차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은 오직 다른 기관의 선례에만 의존한 것이다. 따라서 교수학습지원센터에서 취한 조치만으로 2차 피해가 완벽하게 차단됐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개인정보보호법 제39조 손해배상책임에서는 ‘정보주체는 개인정보처리자가 이 법을 위반한 행위로 손해를 입으면 개인정보처리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개인정보처리자는 고의 또는 과실이 없음을 입증하지 아니하면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교수 B씨는 “개인정보가 유출돼 개인이 심리적 충격을 받고, 불쾌감을 느끼는 것 자체만으로도 손해가 발생한 것”이라며 “정보유출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할 시, 피해학생에게 배상 하는 것은 학교 측이 이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B씨는 “메일 삭제 요청과 담당자 사과문으로는 충분치 않고, 최소한 전체 피해학생들에게 대면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건 발생 이후, 비대위는 개인정보 유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T/F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개설해 피해학생의 입장을 듣고 피해학생과 학교 간 가교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지난해 8월, 비대위는 권위적인 학교의 행태를 규탄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학내 커뮤니티와 학교 곳곳에 게재했다. 이에 관해 비대위 중앙집행위원장 안지섭<공대 전기공학과 16> 씨는 “학교와의 간담회에서 비대위는 개인정보 유출 피해학생에 대한 대면 사과와 보상 계획을 요구했지만, 이에 대해 학교 측에서는 피해학생들이 학교로부터 충분한 사과를 받아 보상을 원치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학교가 비대위의 요구사항을 반려했기에 대자보를 게재했다”고 밝혔다. 안 씨는 “학교가 사건을 조용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피해 학생들이 충분한 사과를 받았고 피해보상을 원하지 않는다’는 왜곡된 사실을 통보했다”며 “책임감 없는 학교의 행태가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청한 피해학생 C씨는 “비대위가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해산당한 후 대면사과 등 학교 측의 후속조치는 없었다”며 “지난번 떨어진 신뢰는 회복되지 않았고, 학교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고 말했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정보 유출에 관한 예방조치를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예방조치를 비롯한 대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정확히 짚고 논의를 시작하지 않으면 ‘대책 없는 대책’이 될 뿐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학교의 ‘진정성’있는 사과가 후속조치의 핵심이다.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제공한 만큼 학교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도움: 황수진 기자 pooh3975@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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