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더 생각해주면 안되겠니
한 번만 더 생각해주면 안되겠니
  • 한대신문
  • 승인 2006.08.27
  • 호수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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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부장 성명수 <언정대 신방 05>
2000년대 개그계는 그야말로 르네상스다. KBS 2TV ‘개그 콘서트(이하 개콘)’,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하 웃찾사)’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 두 프로그램은 그 동안 숱한 유행어와 스타를 탄생시키면서 지친 사람들에게 1주일을 버티게 하는 활력소가 되어 왔다. 최근 그 인기가 약간 시들해지고 있긴 하지만 한때 시청률 30%를 넘나들었던 두 프로그램의 파워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 동안 두 프로그램은 수많은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도 높은 시청률과 전문가들의 좋은 평가를 동시에 이끌었던 소재는 아무래도 ‘풍자’가 아니었나 싶다. 영어만능주의 세태를 풍자했던 웃찾사의 ‘그 때 그 때 달라요’나 군대를 소재로 한 ‘그런거야’, 개콘 역시 갖가지 사회현상을 재밌게 풀어낸 ‘문화 살롱’, 외모지상주의를 꼬집은 ‘출산드라’ 캐릭터 등이 그것이다.

사회를 풍자하는 개그 콘티는 어제 오늘의 것들은 아니다. 이미 故 김형곤, 엄용수, 김병조 등 전 세대의 개그맨들부터 그 뿌리를 깊숙이 다져왔다. 개그와 사회 문제가 접목이 될 만큼 개그는 웃음보따리 이상의, 서민들의 아픈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대변자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개그 속에 등장하는 ‘사회’를 한 번쯤 더 생각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도 어제 개콘 시청 이후 떠오른 소재에서 비롯한 것이다) 풍자를 소재로 한 코너 외에서도 등장하는 사회 이야기들은 가끔은 조금 더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꽉 막혀있는 도로에서 뻥튀기 장사를 했다’라든가 사회의 소외계층, 저소득층을 개그의 소재로 삼아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지나치게 희화 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물론 소외계층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조금 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들이 웃음을 통해 전파를 타면서 당사 계층과 아직 문제사고 능력이 떨어지는 어린 아이들에게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는 점은 조심해야 한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대비시켜 웃음의 효과를 주는 몇 가지 코너들도 그 제작 의도와는 달리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설령 ‘검사’와 ‘환경미화원’이라는 캐릭터를 개그의 소재로 다룰 때 두 캐릭터의 특징을 묘사하는 형식의 개그 콘티라 할지라도 그것이 직접 비교가 될 때는 자칫 ‘우위’를 판가름 하게 되기도 한다.

홍수에 떠내려가는 돼지를 보며 한 쪽에서는 개그의 소재로 활용할 때 한 쪽에서는 재산의 전부를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개그맨들이나 PD들, 그리고 많은 시청자들은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이제 개그는 단순히 개그 이상의 의미를 담게 됐으며 웃음이 가져오는 무서운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개그 속에 담겨진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웃음 속에 함몰되면서 여과장치 없이 시청자들에게 전달 될 때의 그 여파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황우석 교수를 가만 나둬라’라고 소리치는 개그맨에게 박수와 함성을 보내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개그가 문제에 대한 비판적 사고보다는 감정적 대응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인터넷에 요즘 세대를 나누는 경계가 많이 있지만 개콘, 웃찾사를 보는 세대와 보지 않는 세대로도 나눌 수 있다는 글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글에 공감했다. 두 프로그램에 나오는 캐릭터와 유행어를 섭렵해야만 술자리에서 분위기메이커가 될 수 있고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대학교 OT, MT 장기자랑은 두 프로그램의 인기코너를 따라하는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단지 두 프로그램이 갖는 사회적 영향력이 얼마만큼 강력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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