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스트하우스 : 대학의 국제화 지표
게스트하우스 : 대학의 국제화 지표
  • 한대신문
  • 승인 2006.08.27
  • 호수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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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익 상 <인문대·중문>교수
80년대 중반 인디애나대학을 처음 가보았을 때 공원 안에 대학이 있는지 대학 안에 공원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잘 다듬어진 캠퍼스에 입이 딱 벌어졌다. 미국에서도 아름다운 캠퍼스로 손꼽히는 이 학교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정말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고색창연한 건물 안에 잘 꾸며진 호텔이 있었다. 한국에서 운동부나 고시반 학생이 아니고서야 기숙사 근처에도 못 가보던 시절이라 대학 구내에 일반인을 위한 숙박시설을 버젓이 운영하고 있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90년대 초 홍콩 중문대학 게스트 하우스에서 바라 본 남지나해의 탁 터인 수평선을 잊을 수 없다. 언덕을 십분 활용한 울창한 수목과 아름다운 조경은 유사한 지형 위에 세워진 우리 대학이 꼭 참고할 만한 곳이다. 중문대에서 이보다 전망이 더 좋은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위치에 자리 잡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루를 묵고 간 사람에게 더 이상 그 대학에 대한 홍보는 필요 없다.

그즈음 중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중국 대학의 기숙사는 험하기 짝이 없었다. 누런 녹차물이 베어든 찻잔, 촌스런 보온병에 시커먼 코르크 마개, 시간제 온수와 녹물 샤워 같은 것이 기억에 남아있는 그 당시에도 중국 대학에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비록 모기장을 드리운 침대, 침침한 조명 등 시설이 형편없긴 했지만...

중국이 개혁개방과 고도성장을 지속한 지난 10여 년 동안 중국 대학은 엄청나게 바뀌었다. 대학마다 잔디구장이 2-3개는 된다. 학생 식당은 규모와 음식 종류 면에서 우리나라 어느 뷔페식당도 못 따라갈 지경이다. 좋은 대학일수록 식당도 좋다. 웬만한 대학에는 한식당과 일식당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뻬이징대학 캠퍼스에 있는 한식당에서 먹은 점심은 서울의 고급식당 뺨치게 맛있었다. 서울 강남보다 훨씬 더 번화한 칭후아대학 산학단지 안에는 아예 채식주의자를 위한 고급 식당까지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 칭따오에 자리 잡은 중국해양대학은 칭따오의 이미지에 어울릴 만큼 꽃과 나무로 잘 가꿔진 캠퍼스로 유명하다. 건물 하나하나가 소박하지만 품격이 있는 예술 작품 같다. 이 학교의 후문 초입에 자리 잡고 있는 4성급 호텔은 편안하고 정갈했다.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학으로 꼽히는 곳은 역시 우한대학이다. 일반 대학보다 서너 배나 큰 부지에 고색창연한 중국 전통 양식의 건물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이 대학의 게스트하우스는 숲속에 싸여서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중국대학의 게스트 하우스 중에 최고는 아마 산똥대 웨이하이분교의 해변 호텔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천 명도 넘은 이 대학에서 조그만 소나무 밭만 건너면 바로 해수욕장이 나온다. 여기에 들어선 근사한 4성급 정규 호텔은 여름은 물론 일년 내내 국내외에서 찾아드는 학자들과 학술대회로 바쁜 모습이었다. 일층 식당은 백사장 쪽으로 개방되어 있었는데  금발의 백인 피서객들이 야외 바비큐를 즐기고 있었다. 수평선 너머 떨어지던 해를 바라보며, 방문할 때마다 놀라운 모습으로 바뀌어 있는 중국 대학의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뉴스위크에서는 국제화 수준을 기준으로 세계100대 대학을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국내 언론의 관심은 한국 대학의 포함여부에 모아졌고, 저마다 처참한 결과에 대해 한마디씩 했다. 아시아에서는 다섯 개 대학을 포함시킨 일본이 가장 나았고, 홍콩이 세 개, 싱가포르가 두 개를 리스트에 올렸다. 체면을 구긴 쪽은 한국과 중국이었다.

  그러나 게스트하우스만 보면 한국 대학의 국제화는 중국보다 훨씬 뒤 떨어진다. 대한민국 어느 대학이 수백 명은커녕 수십 명의 학자들이 모여 국제학술회회를 개최할만한 숙박시설을 갖추고 있는가? 어느 대학이 외국 학자들이 장·단기간 머물며 방문 연구를 할 수 있는 숙식시설을 갖추고 있는가? 그런 점에서 나는 지난 학기말에 안산배움터에서 전체 교수회의를 하고 막 개설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오찬을 하면서 감격했었다. 우리대학의 자랑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학사에 남을 만한 시설이라고 생각했었다. 앞으로 그곳에서 국내외 학자이 모여 국제회의다운 회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 벅차했다. 그런데 지난 달 이를 문제 삼은 KBS-TV의 뉴스를 보고 한국 언론의 국제화 감각에 실망했었다. KBS 관계자에게 이렇게 권하고 싶다. 멀리 미국까지 갈 것도 없이, 우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중국 대학인 웨이하이분교 호텔에 한번 가보시라고. 문제는 앞서가는 대학이 아니라 발을 묶는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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