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으로 공감이 깃든 육아용품을 만들다
엄마의 마음으로 공감이 깃든 육아용품을 만들다
  • 김도렬 기자
  • 승인 2018.10.15
  • 호수 1483
  • 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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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이 '마이휴' 대표

본교 지구환경시스템공학 전공(99) 출신인 김은이<마이휴> 대표(이하 김 대표)의 좌우명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육아용품 기업의 창업자가 되기까지, 그녀는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특유의 노력과 끈기로 극복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동시에 한 기업의 창업자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김 대표. 그녀는 여전히 이루고 싶은 꿈이 많은 도전가다.

▲ 지난 12일 서울동부여성발전센터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 대표의 모습이다.
▲ 지난 12일 서울동부여성발전센터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 대표의 모습이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한 학창시절
김 대표가 입학한 당시 공대는 지금보다 남녀 성비가 더 불균형하던 시절. 하지만 그녀는 이에 개의치 않고 특유의 적응력과 친화력으로 과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공대에 남자가 워낙 많다 보니, 문화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어요. 축구와 당구도 대학생 때 처음 해봤어요.” 그녀는 자신이 ‘놀 때는 놀고, 공부할 때는 하는’ 열정 넘치는 대학생이었다고 회상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즐겁게 대학 생활을 했어요. 많이 놀기도 했지만, 공부도 그만큼 열심히 해 학점도 좋았습니다.”

학부를 졸업한 그녀는 본교 공대 토목공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 학부 때보다 조금 더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즐거운 학부 시절과 달리 대학원 시절은 피곤과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한때는 새벽 출근길에 졸음을 못 이겨 2호선을 두 번 순환해 통학만 3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포기를 외치고 싶은 순간도 여럿 있었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현실에 최선을 다하자’가 제 삶의 좌우명이거든요. 지금의 행동들이 누적돼 언젠간 저에게 보답으로 돌아온다고 믿었어요. 실제로 그때의 경험이 과거 회사원 시절이나 현재 사업을 하는 데 있어 큰 자산이 됐습니다.”

능력으로 선입견을 깨부수다
김 대표는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취업했다. 그것도 우리나라 환경 관련 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최고로 꼽히는 회사다. 그녀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녀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업계 특성상 약 1천4백 명의 직원 중 여직원은 20명이 채 안 될 정도로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말에 축구와 등산을 직원들끼리 즐길 정도로 ‘남초’ 문화의 회사였어요. 하지만 대학생 시절 남학생들과 어울렸던 것처럼, 남직원들과 족구도 같이 하며 스스럼없이 지내려고 노력했어요.” 그녀가 개방적인 태도로 조직에 녹아들고 뛰어난 업무능력을 보여주자 선입견을 품고 있던 남직원들 역시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입사 초기, “6개월도 못 버틸 것”이라며 무시 받았던 그녀는 무려 12년간 근무했고, 차장으로 진급하며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김 대표의 회사생활은 선입견을 깨려는 노력의 연속이었다. “단 한 번도 여자라고 혹은 말단직원이라고 일을 빼지 않았어요. 치마에 구두 차림으로도 언제나 현장에 달려갔고, 사원 시절에도 프로젝트에서 과장이나 차장보다 더 많은 일을 했죠.”

엄마의 경험으로 얻은 새로운 삶
2013년, 그녀는 첫 아이 출산을 맞아 5개월의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단 한 달도 쉬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온 김 대표는 난생처음으로 ‘한숨 돌리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육아에 매진하던 이 시기에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안겨다 준 발명품을 고안하게 된다.

▲ 김 대표가 마이휴의 대표 상품인 ‘마마턱받이’를 직접 착용해 보이고 있다. 스카프, 턱받이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뛰어나다.
▲ 김 대표가 마이휴의 대표 상품인 ‘마마턱받이’를 직접 착용해 보이고 있다. 스카프, 턱받이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뛰어나다.

“그날따라 유독 많이 보채던 아이를 새벽이 돼서야 가까스로 재웠죠. 잠든 아이를 침대로 옮기려고 하던 찰나, 아이가 제 쇄골에 머리를 박고 다시 깨버린 거예요. 원래 아이들의 목은 약해서 잘 지탱해주지 않으면 머리를 잘 가누지 못하거든요.” 그날 새벽, 김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 부모들의 편안과 아이들의 안전을 동시에 고려한 아이템을 구상하고 디자인했다. 부모들의 반응이 좋았고, 각종 발명 대회에서 상도 휩쓸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사업 가능성을 확인한 그녀는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차근차근 사업을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섬유와 사업에 무지했던 그녀에게 창업은 쉽지 않은 길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포기하지 않고,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녀의 해답은 직접 발품을 팔며 사업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샘플을 의뢰한 업체에서는 총 1천2백만 원을 요구했어요. 그래서 새로운 업체를 더 치열하게 찾아봤죠. 알고 보니 이전 업체보다 1/3 수준의 싼 가격에 더 다양한 종류로 샘플을 제작해주는 업체가 있더라고요. 만약 제가 직접 발로 뛰지 않있다면 불합리한 계약으로 손해를 받았을 거예요.” 전문성을 기르기 위한 그녀의 노력으로 2016년 무렵엔 사업의 기틀이 잡혔고, 김 대표는 회사를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마이휴’의 대표로서 회사를 키워나갔다.

그녀의 도전은 계속된다
“마이휴는 ‘엄마와 아이의 편안한 휴식’의 줄임말입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김 대표가 제작한 제품들은 부모로서의 어려움에 대한 공감이 깃들어 많은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다. 아직 신생 기업인 마이휴지만 목표와 가치관은 뚜렷하다. “아이와 부모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아이와 부모 모두가 행복해야 건강한 사회가 조성될 수 있거든요.”

미래가 보장된 회사를 뛰쳐나와 창업이란 새로운 도전을 진행하고 있는 김 대표에겐 여전히 해보고 싶은 일이 많다. 그녀는 창업을 시작하며 겪었던 어려움을 공유해 창업자들에게 길을 밝혀주고 싶다고 한다. 실제로 김 대표의 창업 좌충우돌기를 담은 ‘원더우먼K’라는 1인 미디어 콘텐츠가 올해 내로 제작될 예정이다. “아직 저는 창업에 성공한 사람은 아니에요. 하지만 오히려 과정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도울 게 많을 거라 생각했죠. 서로의 경험과 실패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어요.”

인터뷰가 끝나고 그녀는 자신의 제품을 직접 시연해 보이며 열정적으로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사실 육아 제품과 큰 상관이 없는 학생 기자로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음에도 말이다. 김 대표가 자신의 제품에 자부심이 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기자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가치관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 사업가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다양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김 대표는 마치 ‘원더우먼’처럼 강인하다. ‘원더우먼K’는 현재 김 대표가 준비하고 있는 1인 미디어 채널의 예명이기도 하다.
▲ 사업가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다양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김 대표는 마치 ‘원더우먼’처럼 강인하다. ‘원더우먼K’는 현재 김 대표가 준비하고 있는 1인 미디어 채널의 예명이기도 하다.

사진 우지훈 수습기자 1jihoonwoo@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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