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청년은 국가의 소모품이 아니다
[장산곶매] 청년은 국가의 소모품이 아니다
  • 김도렬 편집국장
  • 승인 2018.06.04
  • 호수 1479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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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렬<사진·미디어부> 부장
▲ 김도렬<편집국장>

지난해 8월, 강원도 철원에서 발생한 K-9 자주포 폭발 사고로 온몸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한 예비역 병사의 사연은 전국민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당시 육군 현역으로 근무 중이었던 그는 이 사고로 전신 약 50%에 화상을 입고 심각한 골절상까지 당하며 사경을 헤맸다고 한다. 그러나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사고로 인해 남은 심각한 화상 자국도, 골절상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절망스러운 현실이었다. 그가 약 10년 간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나날들은 화마(火魔)와 함께 사라졌다.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몸의 절반을 휘감은 화상의 흔적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엄청난 수준의 치료비 역시 그를 힘들게 했다. 화상은 꾸준한 치료가 필수적이다. 자주포 폭발 사고 피해 병사처럼 전신에 큰 화상을 입은 이들은 병원비로만 수백만 원을 지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수백만 원의 치료비는 큰 부상을 입은 그가 매달 마련하기에는 빠듯한 수준이었다. 

그나마 지난달부터 언론과 SNS를 통해 그의 안타까운 사연이 퍼지며,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많은 언론이 그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해 보도했고, 그의 치료를 국가가 책임지고 국가 유공자로 지정해야 한다는 청와대 청원글은 짧은 시간 내에 2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의 동의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국민적 관심 속에 그는 결국 지난달 30일 국가보훈처로부터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대중들은 이번 자주포 폭발 사고 피해자에 대한 군의 보상 체계와 대처 방식에 대해 분노했다. 해당 사고는 조사 결과, 병사의 실수가 아닌 자주포 자체의 결함이 그 원인으로 밝혀졌다. 즉, 문제가 있는 기계를 들여와 원인을 제공한 군(軍)에게 그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군은 이를 보상하는데 상당히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 그들이 피해 군인에게 제공한 것이라고는 치료비 지원과 보훈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무료 진단뿐이었다. 이마저도 전역을 한다면 피해자가 군인의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받지 못한다. 이번 자주포 폭발 사고의 피해자 역시 이러한 이유로 약 6개월 간 전역을 연기하기도 했다. 특히 군이 사고가 터진 후 약 9개월 동안 어떠한 진상규명이나 피해자에 대한 보상 절차를 진행하지 않다가,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자 뒤늦게 기본적인 조치를 취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줬다. 

사실 군이 지금껏 군인들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를 생각한다면, 이들의 이러한 안일한 대처는 그렇게 놀랍지 않다. 오죽하면 ‘한국 군대는 건강하게 돌아오면 다행’이라는 말이 있겠는가. 여전히 열악한 복무환경과 의료체계는 병사들의 안전을 위협한다. 만약 군대 내에서 부상을 당하는 순간 상황은 골치 아파진다. 군대라는 폐쇄적인 공간 특성상 치료시기를 놓쳐 부상이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훈련 중 심한 수준의 부상을 당하더라도 그 기준이 모호하고 까다롭기 때문에 보상받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 수준이다.

방산비리 역시 군인들의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다. 지난 2015년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군의 비리사업 규모는 9천8백40억 원으로 집계됐다. 비리의 범위도 매우 넓다. 장병들이 먹고, 입고, 훈련하는 데 쓰이는 모든 물품이 비리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군의 모습을 종합했을 때, 이들은 청년 장병들을 단지 ‘소모품’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징병당한 청년 군인들을 굳이 물건으로 비유하자면, 소모품 보다는 국가가 각 가정으로부터 잠시 빌린 물건에 가깝다. 청년들은 단지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잠시 국가로 차출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이 지금처럼 장병들을 막 쓰고 버리는 물품 정도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신성’하다고 표현되는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남성이라면 누구나 다해야 하는 의무다. 그리고 매년 약 25만 명의 청년들이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군에 입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군대는 어떠한가. 신성한 의무만 있을 뿐, 장병들의 권리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

매번 군은 선진병영을 추구한다면서, 외부적인 모습을 멋지게 가꾸는 데만 신경을 쓴다. 하지만 진정한 선진적인 병영은 군인들을 소모품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문화와 제도가 정착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군이 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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