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이 설 자리
저널리즘이 설 자리
  • 윤가은 기자
  • 승인 2016.05.28
  • 호수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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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언론의 역할, 그 사이의 줄다리기

“시민들이 민주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세상에 관한 사실을 전해주는 것”이 저널리즘, 즉 언론이라고 사회학자 허버트 갠즈는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시민들은 그런 사실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듯하다. 사실을 몰라도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데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언론의 위기’는 더 이상 새로운 말이 아니다. 점점 낮아지는 신문 구독률, 뉴스 시청률과 같이 객관적 수치로써 입증되는 언론에 대한 관심도도 예전같지 않다. 이는 그 수치가 단순히 낮아서가 아니다. 시민이 신문이든 뉴스든 언론기관으로부터 접하는 사실을 의미있게 받아들이고 진짜 ‘소화’하는 경우는 그보다 훨씬 낮기 때문이다. 신문에 실리는 모든 기사를 읽고, 뉴스로 방영되는 모든 내용을 시청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독자의 언론에 대한 무관심은 언론과 언론인의 영향력을 자연스레 약화시켜 갔다.

자본주의 하 기성언론
사람들은 어쩌다 언론에 기대지 않게 된 것일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흥미를 잃은 것은 기성 언론일 것이다. 자본주의 하 기성 언론의 빛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언론사는 하나의 기업이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고, 따라서 언론사는 당연히 자본주의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기업으로서의 언론사와, 언론기관으로서의 언론사가 상충한다. 갠즈의 말마따나 “이윤 추구와 언론인의 자율성 보장 사이에서의 충돌”인 것이다. 그러나 언론은 자본주의라는 거대 구조 하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이러한 충돌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 또한 철저히 시장 수요에 의해 움직이는 체제 안에서 저널리즘의 참된 가치, 즉 ‘민주주의의 구현을 위한 사실 전달’은 실현되기 어렵다. 가치가 아니라 자본에 따라 움직이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홍현종<서울경제TV> 해설위원은 “지금의 언론은 다중의 이익을 위한다기보단 살아남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언론 본연의 가치 위에 자본이 군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현실은 언론 수용자가 언론에 대한 신뢰를 잃게 하고 언론 소비를 줄이게 하며, 결국 언론의 중요한 영향력을 빼앗는다. 빼앗기는 건 영향력뿐이 아니다. 언론 소비가 줄어들어 언론사 운영에도 심각한 타격을 미친다. 구독자·시청자가 줄어 언론사의 수익 창출 모델인 광고도 줄어든다. 수익이 감소해 언론 취재에 투자할 수 있는 비용도 그만큼 감소한다. 수익을 잃고 언론의 질을 놓치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쉴 틈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마냥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삶도 기성 언론의 쇠퇴에 이바지했을 것이다. 언론에서 전해주는 사실들을 소화할 심적, 물리적 여유조차 없는 현대인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에 맞게 아주 짧고 간단하며 자극적이고 일시적 흥미만을 유발할 뿐인 것들에 끌리게 된다. 단편적으로 ‘소비’되는 뉴스에만 반응하는 것이다. 시민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올바르게 깨어있게끔 하는 정치·경제 관련 뉴스에서 연예·오락거리 위주의 뉴스가 늘어나는 현상도 이런 언론 소비자의 행태와 깊은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요인이 하나의 악순환 고리가 되어 돌아간다.

기성언론의 과도기
언론은 자본주의로부터 온전한 독립을 이뤄야 그 가치가 존중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자본주의는 당장 변화되기 어렵다. 자본주의라는 땅을 밟고 있는 모든 것들은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 따라서 그 상충되는 이해관계 속에서 바뀌어야 하는 건 언론이다.

언론이 세상을 바꾸던 때도 있었다. 1980년대에 전두환 정권은 군부에서 물러났다. 홍 해설위원은 “그 권력의 공백을 언론이 메웠다”고 전했다. 이 시기 언론은 성공적으로 민주화와 시민 사회를 일궈낸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수익 창출의 매너리즘에 빠져 애초 지향하던 ‘다중’의 이익보다 ‘기업’의 이익이 우선시된 지 오래인 지금, 파수꾼으로서 언론의 나침반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과학 세계에서 하나의 이론이 고착화되면 그것이 아무리 견고하다 한들 새로운 패러다임이 알을 깨고 나온다. 언론도 그런 과도기를 통과하고 있다. 기성언론의 형식이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SNS로 흘러간 지 오래다. 인터넷 접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바일 기기가 보급돼 SNS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매체가 됐다. 최근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이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져 사회를 뒤흔드는 논란이 될 만큼 SNS의 파급력은 거대하다. 홍 해설위원은 “모든 사람이 언론인이 됐다”고 할 수 있다며 “언론의 범위를 어디까지 보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모바일 기기와 인터넷의 발달로 개인이 모두 기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SNS를 통해 언론의 가치는 지켜질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언론은 다중의 이익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각 개인이 운영하는 SNS가 늘 공공의 이익을 대변할 리는 없다. 또한 개인이 정보를 창출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도 있다. 개인은 전문가와는 달리 가치 있는 정보를 만들어 내기 어려우며 현 상황으로 봤을 때 개인이 만든 콘텐츠는 대체적으로 전문가가 사전에 만들어 놓은 정보를 가공한 2차 저작물에 그칠 뿐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다. 따라서 SNS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발언권이 생긴다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언론이 실현하고자 했던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구현하는 길일 것이다. 그러나 1인 미디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도 유지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순식간에 사라지듯, 자본주의라는 구조 안에서 언론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언론의 입지가 위태롭고 2차 저작물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언론이 자신만의 고유한 위치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홍 해설위원은 “앞으로의 언론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형식에서 더 나아가 탐사 보도, 분석 기사 등의 깊이 있는 기사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반인과 언론인 사이에 차별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언론이 극복해야 할 난제는 산적해 있다. 이는 앞으로 언론의 미래, 그리고 민주주의의 미래에 우리 모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이다.

도움: 박영빈 기자 po4857@hanyang.ac.kr
이태성 수습기자 taesung1211@hanyang.ac.kr
홍현종<서울경제TV> 해설위원
참고자료: 도서「저널리즘, 민주주의에 약인가 독인가」 (하버트 갠즈 지음, 남재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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