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불통의 사막에 소통의 오아시스가 필요하다
[장산곶매]불통의 사막에 소통의 오아시스가 필요하다
  • 정진영 기자
  • 승인 2016.03.12
  • 호수 14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진영 편집국장
소통(疏通) 1.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 ‘소통’의 정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소통을 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긴다. 결국, 소통은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또 원활한 교류를 위해 필요하다. 그래서 그 필요성은 누구나 절감하지만, 개인들 사이에서 혹은 사회에서 그만큼 소통이 잘 이뤄지고 있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소통과 불통의 문제는 사회에서, 학교에서 끊임없는 마찰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 중 ‘불통정치’로 대변되는 국회를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 들 수 있는데, 최근 ‘불통’의 상징이었던 국회에서 소통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바로 ‘필리버스터’가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대의정치를 실행하고 있음에도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국회와 국민 사이에 소통이 전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와 국민은 각자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 마냥 단절돼 있었다. 그래서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 참여 자체에 회의론적인 시각을 가진 국민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난 2일에 마무리된 ‘테러방지법 반대 필리버스터’는 비교적 정치 참여율이 낮은 2-30대에게 꽤나 큰 자극이 됐다. 이번의 필리버스터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한겨레>에서 지난달 26~29일, 20~40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20대 유권자들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관심이 높아졌다”,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정치를 바꿀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 63.6%가 긍정적인 답변을 해 4년 전의 59.7%에 비해 3.9%포인트 상승한 수치를 보였다. 필리버스터를 실시하면서 많은 야당 의원들이 국민들의 의견을 듣겠다며 SNS로 소통을 시도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테러방지법, 더 나아가서는 정치에 대한 2-30대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국회가 국민들과 소통을 시도하니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하지만 테러방지법에 대해 반대의견을 표하는 국민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대의정치를 표방한 국회에서는 결국 테러방지법이 통과됐다. ‘필리버스터’를 통해 국민들과 어느 정도의 소통은 했지만 애초에 여당 의원석이 많은 국회 때문에 보여주기식 소통에 그치고 만 것이다.
이는 대학가에서도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학교가 어떤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서 학생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무작정 통보식으로 일을 진행하다가 학생들의 반발로 원활했던 진행의 흐름이 끊어지는 경우들이 발생해왔다. 이런 경우 학교는 ‘공청회’나 ‘설명회’ 등의 방식을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설득하려는 노력을 보이는데, 이도 결국 보여주기식 소통에 불과하고 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최근에 있었던 등록금심의위원회가 대표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다. 학교 측 5명, 학생 측 5명, 그리고 총장이 임명하는 외부인사 1명으로 이뤄지는 등록금심의위원회는 시작점부터가 학교 측 6명과 학생 측 5명으로 동등하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학생들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지만 이미 답은 정해져 있어 ‘우리는 학생들과 소통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상이 짙게 느껴진다.
그러나 본교 총학생회는 본관 앞 농성이라는 의사 표현을 통해 결과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꼭 농성 혹은 공동행동이라는 이례적인 의사 표현을 해야만 학생들의 의견을 듣는 체라도 할 것인가.
국회든 대학이든 시작점부터가 동등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수결을 진행하니 그것이 진정 소통을 위한 방식인지, 보여주려고 하는 일종의 ‘쇼’에 불과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소통을 가장한 불통의 사막에 ‘신기루’의 오아시스가 아닌 ‘진짜’ 오아시스가 필요하다.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 필요한 시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