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연극의 메카로 불리던 옛 명동 국립극장 자리에
예술극장이 들어선다. 지난 달 21일 서울시 중구 명동1가 54번지에서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을 비롯한 많은 연극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명동예술극장 착공식이 열렸다.
총 600억원을 들여 복원 공사를 하는 명동예술극장은
대한투자금융건물이었던 건물 외관은 그대로 쓰고, 내부만 공연장으로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된다. 총 객석 수는 552석이고 지하 2층,
지상 5층의 규모로 오는 2007년 11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이번 착공식은 명동 옛
국립극장의 복원을 알리는 의미 있는 행사이다. 특히 1973년 국립극장이 현재의 장충동 남산 기슭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서울 명동의 옛 국립극장은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본거지였다.
특히 과거 연극의 메카라고 불리던 명동에 예술극장이 다시
들어서면 연극 르네상스를 다시 중흥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연극인들의 기대가 크다.
서울연극협회
협회장 채승훈씨는 “연극의 메카인 국립극장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연극 르네상스를 다시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일반 극장들은 대관료가 비싸다는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명동예술극장은 정부가 주체가 돼 운영해주고, 대관료를 저렴하게
해 연극을 사람들에게 더 가깝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채
협회장은 “명동 옛 국립극장의 복원은 이전까지 대학로 등지의 특정지역에 집중됐던 연극예술이 명동으로까지 확장되는 계기가 돼 다양한 작품들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옛 명동 국립극장이 다시 복원되면 옛 국립극장을 기억하는 중장년층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고, 과거 중후한 작품들을 많이
올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에 착공되는 명동예술극장은 옛 명동 국립극장 자리에 그대로 지어지게 된다. 구 국립극장은 일제시대에 신축돼 1936년부터
‘명치관’이라는 영화관으로 문을 열어 일본영화 상영을 시작으로 당시 우리나라 공연 예술계를 이끌어 가는 역할을 했다.
해방 후 1948년에 서울시가 인수하면서
‘시공관’으로 이름을 바꾸어 1961년까지 시의 공관으로 사용됐지만 이 시기에도 이해랑 연출의 「햄릿」 과 오페라 「춘희」등이 공연되는 등
우리나라 예술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계속하고 있었다.
특히 1959년부터 1975년까지는
국립극장으로 사용되면서 오영진의 「인생차압」, 차범석의 「산불」등의 연극이 공연됐다. 그러다가 1973년 국립극장이 현 장충동으로 이전되면서
명동 옛 국립극장 건물은 1975년에 대한투자금융에 매각됐다. 한때 헐릴 위기에도 처했지만, 1993년부터 명동 옛 국립극장 되찾기 및 건물보존
운동이 전개되면서 결국 지난 2004년에 문화관광부가 400억원에 건물과 땅을 매입하면서 명동예술극장이 복원되게 된 것이다.
한때 명동은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시인들, 문인들, 영화인들, 화가들, 음악인들, 상인들도 모여들었던
우리나라 문화 예술의 본거지였다. 구 명동 국립극장은 오랫동안 이런 명동의 중심에 위치해 문화 예술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발레 등의 많은 예술작품들이 국립극장의 무대에 올라갔다. 항상 극장에는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관객들이 몰려 들어와 공연을 관람함으로써
구 명동 국립극장은 활발히 사용됐다.
과거 문화, 예술분야에서 중흥을 이뤄낸 축이었던
명동예술극장을 복원한다는 것은 여러 방향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예술인들에게는 과거에 잃어버렸던 공연장을 다시 되돌려 주고, 관객들에게는
역사적인 공연장에서 다시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또 문화 명소의 관광 자원화가 돼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시민들은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