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조선의 혼을 느끼다
돌아온 조선의 혼을 느끼다
  • 소환욱 기자
  • 승인 2006.04.30
  • 호수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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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라우치 문고 전시회…6월11까지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지난 2002년 개봉된 2009 로스트 메모리즈란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영화 첫 부분의 이노우에 제단이 주최하는 유물전시회에서 분노를 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가 약탈자들에 의해 전시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데라우치 문고 전시회는 이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시의 분노를 씻어 버릴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제 치하에 약탈된 우리 문화재들이 반환되어 처음 열리는 공개 전시회이기 때문이다.

지난 25일부터 예술의 전당 서예 박물관에서 ‘시·서·화에 깃든 조선의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열리고 있는 데라우치 문고 전시회는 초대 조선 총독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우리나라에서 약탈해간 유물 가운데 일부 반환받은 유물이 10년 만에 대중에게 첫 공개 되는 자리이다.

환수 직후인 96년 유물 27종 47점이 덕수궁 석조전에서 선보인 적이 있었지만, 이번 기획전은 10년간 컬렉션을 샅샅이 분석하고 새 사료를 발라낸 결과물이란 점에서 의미가 색다르다.

예술의 전당 학예사인 이동국씨는 “조선시대의 시, 그림들의 진수를 파악 할 수 있는 전시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데라우치 문고란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가 1910년부터 5년간 조선 문화재 조사사업을 통해 문집류, 서화류, 궁중자료 등 1000여종 1500여점에 달하는 우리 문화재를 일본으로 반출한 작품 중 데라우치 사후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에 소장됐던 문화재들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데라우치 문고의 작품들은 한·중·일 3국의 역사, 문예와 연관된 핵심 고문서와 시화들을 집중 수집했던 까닭에 그의 컬렉션들은 조선시대 문예사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이 중 지난 1996년 1월 24일 데라우치 문고에 소장됐던 한국관계 문화재 중 조선시대 유학자 친필유묵과 그림, 어필과 궁중관계자료, 금석문 등 98종 135점이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유물중에는 국보급이나 보물급의 작품들도 많다. 당시 돌아온 유물들은 문화재위원장인 고 임창순씨를 비롯하여 각계각층의 문화재 전문가들이 직접 선별한 것이다.

특히 반환된 문화재의 대다수인 시문·서예·회화 등 조선의 문예사 연구에 필수적인 원 자료로 학술적으로나 문화재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들이다.

전시는 총 5개의 주제로 이뤄진다. 1부인 ‘유학자 시문’과 2부 ‘어제어필과 궁중기록화’, 3부 ‘별장첩’, 4부 ‘서화명가의 그림’, 5부 ‘서화명가의 글씨’등이 그것이다.
윤두서와 정선, 김홍도 등의 작품 28점이 담긴 ‘홍운당첩’과 성삼문, 서경덕, 정철 등의 육필 시고도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중 단연 주목되는 유물은 「낙파필희」이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왕실 화가인 이경윤이 그린 작품이지만 이때까지 진본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진본이 확인된 작품이다. 특히 절파 화법의 대가인 이경윤의 작품 중 국내에 남아 있는 진품은 호림박물관 소장 「산수인물첩」뿐인 것으로 알려졌었기 때문에 이 그림의 가치는 빛을 더한다.

속세를 떠나서 생활하는 거사 등의 유유자적한 모습 등을 그린 이 화첩에는 동시대 인물인 유몽인, 이호민의 제시가 폭마다 실려 그림의 가치를 살려주고 있다.
겸재 정선의 「한강 독조도」 역시 주목 할 작품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정선의 그림 중 가장 빠른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이 작품은 ‘홍운당첩’이라는 조선시대 화가들의 그림 28폭을 모은 그림책에 수록돼 있다.

이들 유물 외에도 송민고작의 「석란도」, 곽재우작의 시조, 효명세자가 9세때 세자시강원에 입학하는 「서문」과 「세자시강원 입학의식 각 절차」, 영조 당시 청계천 준설 완공 후 왕과 신하가 춘당대 앞에서 활쏘기시합을 한 후 시를 짓는 장면을 그린 「춘당대영화당시사후사선도」, 추사 김정희의 「사언시」와 「도홍경 절구」, 조광진의 「석철신신」, 「묵연」 전서대자 2점, 간찰 등이 수록되어 있는 ‘완당법첩조눌인병서’ 역시 주목할만한 작품이다.

전시회를 관람한 조산새 <한국외대· 영어통번역06>는 “조선시대의 작품들을 볼 수 있게 돼 좋았다. 특히 낙파필희가 인상적이었다”며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데라우치 문고에 남아 있는 문화재는 물론이고 각국으로 유출된 유물들을 다시 찾아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는 6월 11일 까지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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