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
‘갑’과 ‘을’
  • 한대신문
  • 승인 2013.05.14
  • 호수 1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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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대한항공 기내에서 벌어진 대기업 간부의 스튜어디스 폭행 사건으로 ‘갑’과 ‘을’의 관계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촉발됐다. 뒤이어 중견 제과업체 회장이 차를 빼라는 호텔 현관 서비스 지배인의 뺨을 장지갑으로 때렸다는 뉴스가 전해지고, 남양유업 판매부서장이 대리점 점주를 모멸적인 언사로 협박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갑’에 대한 비난 여론이 폭발하고 있다. 

갑과 을은 통상 거래 계약서에서 계약 당사자를 일컫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발주자를 ‘갑’이라 하고, 업무를 위탁받을 자를 ‘을’로 표기한다. 이 표현이 지위의 우열을 뜻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변질돼 통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인간이든 동식물이든 생물 사이에는 갑과 을의 관계가 필연코 존재할 수밖에 없다. 태초 이래로 생물 사회의 먹이사슬은 불변의 진리이다. 때문에 갑과 을의 관계는 그 자체가 자연현상이다.

이렇게 운명적인 관계가 문제가 되는 건, 갑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을에게 부당하고 불공정한 대우를 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기내 폭행을 저지른 대기업 간부는 사건 직후 바로 면직되고, 제과업체는 주거래업체인 코레일 납품이 어렵게 돼 결국 회사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양유업의 해당 직원 또한 당연히 해고됐고, 기업 전체가 범사회적인 비난과 함께 검찰의 압수수색, 공정위 조사, 불매운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갑 위에 갑이 있고, 그 갑 위에 또 다른 갑이 있다는 점을 절감한다. 

어느 대기업은 향후 거래 계약서에 ‘갑’과 ‘을’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나쁘다고 볼 순 없지만, 사실 표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약자를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의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

대한항공 객실승무본부장인 조현아 부사장은 “기내 폭행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계몽 효과를 보았다”고 말했다. 승무원 폭행에 대한 경각심을 강조한 말이지만, ‘제 식구 감싸기’에 집착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갑을 현상’을 두고 우리의 민주주의 방식과 천박한 자본주의의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부도덕한 부의 결과가 이런 사회적 현상을 낳는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어느 시대, 어떤 이념과 종교 하에서도 갑과 을의 관계는 존재해온 만큼 특정 사회나 지역의 현상만은 아닐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영원한 갑은 없다. 갑은 갑이 갖춰야할 인격과 도덕성,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순간 바로 을로 전락한다.

캠퍼스에도 갑과 을의 관계는 당연히 존재한다.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교, 교직원과 교수, 그리고 학생과 학생 사이에 피할 수 없는 ‘갑을 구도’가 형성돼 있다. 그 ‘갑을 구도’가 한양대 안에서는 ‘상하주의’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상호주의’를 상징하는 말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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