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강으로 조정되는 학점, 그렇게나 걱정됐었다면
재수강으로 조정되는 학점, 그렇게나 걱정됐었다면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2.09.16
  • 호수 137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대학 다니던 한 학생, 평점 A+도 맞아봤고 C+도 맞아봤고 D0도 맞아봤다. 적절한 시기에 C+와 D0 과목들을 재수강하고자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만약 당장 다음 학기부터 C+는 재수강이 불가해진다면, 또 D0 역시 건강상의, 또는 경제적 문제가 있었던 경우에만 재수강이 가능하게 된다면 어떨까. 연세대가 재수강 제도를 개정하는 계획을 마련 중에 있다고 한다. 연세대 측은 이미 이전에 재수강 제도에 대한 본부의 변경 의지를 전했으며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안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접한 학생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인다. 향후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어떤 행동을 할 것이고 어떤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연세대 내적으로만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대학 사회 전체에 파장을 불러일으킬만한 상당히 파격적인 조치임은 분명하다.

교육과학기술부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 서울시내 다수의 대학들에서 A학점을 이수한 재학생들의 비율이 30% 후반을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심한 경우 50%가 넘기도 한다. 연세대 측은 학점이 지나치게 높아 한국 대학의 학점이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를 지적하며 개정되는 재수강 제도는 불가피한 이유로 공부를 할 수 없었던 학생들을 위하는 것임을 밝혔다. 이런 의도는 분명 존중될만하다. 그러나 이런 ‘선구적 조치’가 과연 학생들의, 학생들을 원하는 사회 집단들의, 또 나아가 한국 대학사회 전체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든다.

이미 적지 않은 수준의 학사 일정을 소화해낸 3·4학년들에게는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당장  재수강 조건이 이처럼 엄격하게 변경된다면 개인의 학사 계획상의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연세대생들이 타대생들과의 형평성 문제에서 박탈감을 느낄 것이란 점이다. 타대학들 역시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불가피하게 폭넓은 재수강 제도를 운영 중에 있다. 타대학에 비해 학사제도가 지나치게 엄격해 학생들의 평균학점이 낮아지면 학생들이 당면한 취업 등 ‘삶의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 학교로서도, 학생으로서도 사실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향후 얼마까지는(꽤 오랜 시간일 것 같으나) 연세대의 조치가 한국 대학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학생들과 관련된 기업, 연구소 등 ‘예비 직장’들의 입장 역시 곤란해졌다. 연세대의 학사제도만을 따로 고려해 줄 여유를 요구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분명 달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다른 대학교를 다녔더라면”하는 푸념성 가정법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에 대한 자부심마저 격하시킬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인 것이다.

이 조치는 구조적인 문제 자체를 구제하지 않고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어 보인다. 재수강 제도로 인해 다수 학생들의 학점이 상향 조정돼 학점 자체의 신뢰도가 떨어진다면 대학 사회 전체가 논의하고 함께 개정 방향을 모색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서열화된 한국 대학 사회에서 각 대학들의 A+의 가치가 다르다는 논리가 개입되면 이 역시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돼버리고 만다. 결국은 대학 평준화 얘기까지 나가며 문제가 깊어진다. 이처럼 크고 다양한 문젯거리들을 함유하고 있는 재수강, 정확히 말해 학점 문제에 대한 연세대의 행보가 지나치게 피상적이었던 것은 아닌지 아쉬운 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