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정서’와 고전의 ‘멋’을 버무려 시조를 짓다
현대의 ‘정서’와 고전의 ‘멋’을 버무려 시조를 짓다
  • 이나영 기자
  • 승인 2012.03.10
  • 호수 13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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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6구 45자 내외’의 매력 속으로

‘언어영역’을 공부할 때면 등장하는 고전문학 장르가 있다. 3장 6구 45자 내외, 4음보의 율격, 종장 첫 음보는 3글자. 지겹도록 들었던 ‘시조’에 대한 설명이다. 수십 편의 시조를 보고 외우기도 했지만 정작 시조에 대한 관심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시조는 현재도 창작되고 있는 한국 고유의 문학 장르다. 문단에선 시조 시인들이 시조의 계보를 잇고 있다. 또 각종 문학 공모전에서는 시조 장르를 따로 공모하기도 한다. 시조시인 정수자 작가는 “대학생이 시조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한국의 정신과 미학적인 교양을 갖추는 것”이라며 “민족정체성이나 미적 전통 등을 체화하는 것이야말로 세계화에 흡수되지 않는 문화 전략”이라고 시조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시조는 정형시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인 문학 장르다. 시조시인 박희정 작가는 “현대시조의 양식과 표현은 자유시만큼이나 다양하고 현대적”이라며 “정형 속에서 나름의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장르”라고 시조의 매력을 말했다.

고시조는 글자 수에 많은 제약을 두고 내용도 유교의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이 대부분이다. 반면 현대시조는 자유시처럼 형태를 변형할 수도 있고, 작가가 어떤 내용을 소재로 하느냐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평시조, 연시조, 사설시조 등 작가가 원하는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고 예스러운 형식과 문체로 현대를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대학생의 시조 수용 상태에 대해 논문 「대학생의 발달 단계와 시조 수용에 대한 연구」(이하 논문)에서는 “대학생들의 감상문이 ‘인습 단계’에 해당하는 양상이었다”며 “중·고등학교 단계에서의 감상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습 단계’란 전문가나 비평가의 견해에 의존해 작품을 수용하는 단계다.

또 논문에서는 “시조의 형식적인 측면에 한정될 것이 아니라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현재의 시조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정 작가는 “고등학교 때까지 본 시조엔 고시조가 많아 공감하기 어려운 점도 대학생들이 시조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유”라고 말했다.

한편 문예 창작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도 정작 시조에는 관심이 없는 추세다. 우리학교 문예 창작 동아리와 학회를 대상으로 조사해본 결과 시조를 창작하는 학생은 없거나 드물었다.

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시조를 어려워하긴 마찬가지다. 송경석<인문대 국어국문학과 11> 군은 전공 수업에서 시조를 창작하는 과제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송 군은 “시조의 엄격한 형식에 맞추느라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하기 어려웠다”며 시조 창작의 경험을 전했다.

박 작가는 “문예창작학과나 국어국문학과에서 창작 시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시조에 대한 강의, 창작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문학에 흥미 있는 학생들이 앞장서서 시조를 지켰으면 한다”고 말했다.

선입견에서 벗어나 시조 쓰는 학생들
고려대 대학원 김보람<문예창작학과 3학기> 씨는 대학생이던 3년 전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된 시조시인이다. 김 씨 역시 처음 시조를 접했을 때는 “시조는 낡고 어려운 것”이란 선입견에 부딪혔다. 그러나 “틀 안에서의 조화와 균형, 간결하면서도 그 뜻을 분명히 전달하고자 하는 점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문화를 지탱했던 시조의 역사를 바탕으로 시조를 이어가고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시조, 젊은 감각으로 바라보는 시조를 통해 선입견을 없애고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싶다”고 전했다.

정다솔<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12> 양도 시조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다. 시조를 쓰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는 정 양은 이과 계열이지만 시조 공모전에 입상하기도 했다. 정 양은 “시 창작에 서툴러서 정해진 틀에 맞춰 표현하는 시조가 일반 시보다 창작하기 쉬웠다”고 말했다. 이과 계열을 공부한 정 양은 “수학 등 이성을 요구하는 전공 공부에 지칠 때 시조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작품들을 감상하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고 전했다.

작가로부터 듣는 시조 공모전 뒷이야기
정 작가와 박 작가는 대학생 시조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대학생들의 작품을 심사할 때 가장 중시되는 요소는 ‘개성’이라고 한다. 정 작가는 “수상작을 뽑을 때 △참신성 △독자적 세계를 열어갈 개성 △시조의 영향력을 넓혀갈 가능성 등을 우선시 한다”며 “구태, 상투, 답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감각과 서정이 담긴 작품을 선정한다”고 말했다.

공모전에서 수상한 학생은 문인으로 등단하게 된다. 등단 후의 행보도 심사 시에 고려된다고 한다. 박 작가는 “수상자가 이후에 창작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엄청난 손실”이라며 “작품을 통해 창작자의 역량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조 문인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길 바란다는 것이다.
이에 김 씨는 “시조시인으로서 현대시조의 흐름을 파악하고 시조의 미래를 밝히는 데 같이 동조해야할 책임감을 느낀다”며 등단 소감을 전했다.

정 작가와 박 작가에 따르면 시조가 전통 문학 장르임을 지나치게 신경 쓴 나머지 고어를 그대로 현대시조에 사용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고 한다. 이런 학생들에게 정 작가는 “현재 쓰는 것은 ‘현대시조’이며 현재의 일상이나 감정을 세련되게 표현하되 ‘정형’이란 틀에 얹는 게 현대시와의 차이점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 양은 “시조가 아직 계승되고 있다는 것이 학생들에게 알려져서 시조뿐 아니라 다른 고전문학 장르도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김 씨도 “학생들이 시조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쉽게 공부하고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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