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청년이 겪은 ‘시 앓이’
시골 청년이 겪은 ‘시 앓이’
  • 이나영 기자
  • 승인 2012.03.04
  • 호수 13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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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변화하는 인간을 그린 영화 「일 포스티노」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한 어촌에 먹고사는 것 외엔 관심도 없는 한 남자가 있다. 일자리가 없던 그는 유명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마을에 오게 되면서 그의 우편배달부로 취직한다. 순수한 영혼을 가진 그가 네루다를 통해 시와 은유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글자도 겨우 읽을 만큼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마리오가 어떻게 ‘시인’이 된 것일까.

▲ <극 중의 '파블로 네루다'(왼쪽)와 '마리오'(오른쪽)>
마리오는 틀에 박힌 삶을 살던 가난한 어부의 아들이다. 궁핍하고 별 흥미 없이 살던 무지한 인물이다. 유명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가 마을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네루다를 알게 됐고, 그를 단순히 연애 시인으로만 알고 있던 마리오였다. 매일 네루다에게 편지를 배달하게 된 마리오는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고, 시에 빠져들게 된다.

김중철<안양대 교양학과> 교수는 “영화에서 마리오라는 인물이 네루다를 만나며 시를 알게 되고, 그것을 확장시켜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범했던 마리오는 시를 통해 사회를 알게 돼 나중엔 자작시를 군중들 앞에서 발표까지 하게 된다. ‘시 쓰기’의 힘이 주인공을 변화시킨 것이다.

S#1. 네루다가 전하는 시의 세계
마리오가 네루다를 만나기 전에는 자신의 고달픈 현실 때문에 살고 있는 곳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네루다를 만나 정신적 교감을 하고, “해변을 따라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라”는 네루다의 말을 따라해 보며 섬의 아름다움에 다시 눈뜨게 된다. 스승 네루다는 마리오가 사물에 대한 새로운 눈을 가지고 그 속에서 시를 발견하길 원했다.

김 교수는 “네루다의 말은 체험과 실천으로서의 ‘시 쓰기’를 강조한다”고 했다. 베아트리체 루소라는 여인에게 사랑을 느낀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베아트리체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시를 써 달라고 부탁한다. 이 때 네루다는 대상을 직접 경험해야 시를 쓸 수 있다며 거절한다. 여기서 영화 중 네루다가 ‘글쓰기’에서 무엇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네루다의 이런 행동과 말은 대상에 대한 감정이나 느낌 없인 글을 쓸 수 없단 뜻”이라며 “경험이야말로 시인에게 최고의 소재이자 바탕이 된다”고 했다.

은유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다른 대상에 비겨서 표현하는 비유법이다. 영화에서 은유란 시 쓰기를 대표하는 방식으로 쓰인다. 베아트리체의 마음을 사기 위해 글을 쓰려 고민하던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말한다. “단어가 바다처럼 왔다 갔다 해요. 배가 단어들로 이리저리 튕겨지는 느낌이에요.”

그런 마리오에게 네루다는 “그것이 바로 은유”라 말하지만 마리오는 손 사래 치며“일부러 은유를 찾아 말한 것이 아니니 은유가 아니다”라고 답한다.

시에 대해선 무지한 자신이 은유를 어떻게 알겠냐는 마리오의 반응에 네루다는 “느낌이란 순간적으로 생기는 것이니까 은유가 맞는 것”이라며 가르친다. 김 교수는 “네루다의 가르침은 글쓰기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체험과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글이 만들어 지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S#2. 시를 쓰고 변화를 겪다

▲ <'마리오'가 사랑한 '베아트리체'>

마리오는 네루다를 통해 은유를 알았다. 은유의 힘으로 인해 상상력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익숙해서 지나치던 것들도 이제 마리오의 눈에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창 너머로 보이는 달마저 아름답게 보인다.

네루다에게 시를 배우는 과정에서 주변을 다시 보기 시작한 마리오는 고백한다. “내 곁의 것들이 이토록 아름다운지 몰랐어요.” 처음엔 베아트리체의 마음을 사기 위해 시를 배우려 했던 마리오가 자신도 은유로써 세상을 말할 수 있음을 알게 된 후 세상에 대한 시선이 바뀐 것이다.

네루다는 어느 날 마리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다. 마리오는 주위의 아름다움은 생각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인 “베아트리체 루소입니다”라고 답한다.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면서 그동안의 무미건조한 삶에서 탈피한 것이다.

마리오는 시를 쓰게 되면서 세상과 현실을 직시한다. 글도 겨우 읽던 마리오가 시를 통해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고, 안일하기만 했던 삶이 비판적으로 변해간다. 결국 마리오는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문제들을 알게 되면서 이에 대해 시를 쓴다. 마리오는 시를 통해 일상의 아름다움을 보게 됐지만 부조리한 사회현실 역시 깨닫는다.

스승인 네루다를 따라 ‘민중의 시인’으로 거듭난 마리오는 민중들의 광장집회에서 시 낭송자로 초대받는다. 낭송하기 위해 연단으로 나가려던 마리오는 시위진압대의 폭력에 의해 밟혀 죽음을 당한다. 김은자의 저서 「일 포스티노와 빈대떡」에서는 “시인의 길을 가다 죽음에 이르는 마리오는 예술을 위해 몸을 태우는 예술혼의 상징을 뜻한다”고 마리오의 죽음을 말한다.

영화 「일 포스티노」는 유약하고 순박했던 시골 청년이 시를 알게 되고, 군중을 위한 시를 쓰기까지를 보여준다. ‘시 쓰기’ 혹은 ‘문학’이 인간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그려내며 관객들의 마음에 남는다.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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