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이’는 당신, 그리고 나였다
‘브이’는 당신, 그리고 나였다
  • 이나영 기자
  • 승인 2011.11.19
  • 호수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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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브이 포 벤데타」로 현대 디지털 사회 읽기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있는 미디어 혹은 언론 매체가 믿을만한 것일까. 익명의 다수가 존재하는 인터넷 공간에서의 사건들을 신뢰해도 되는 것일까. 미디어 시대의 대중이라면 한번쯤은 해 봤을 고민일 것이다. 이런 딜레마에서 나온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미디어를 통한 정보조작으로 무력화된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 <'가이 포크스'의 형상을 한 마스크를 쓴 '브이'>

2040년, 미국이 일으킨 제3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에는 극우보수정부가 들어섰다. 엄격한 통금시간이 존재하고, 경찰보다 한 수 위의 권위를 가진 ‘핑거맨’이란 집단이 밤을 통제한다.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는 국민들을 감시하고 라디오와 TV는 정부의 폭력적인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한다. 지나칠 정도로 억압적인 세상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은 비판성과 자유를 잃어 간다.

통금시간에 몰래 밖에 나갔다가 ‘핑거맨’에게 위협을 받고 있던 ‘이비’는 정체불명의 사나이에 의해 구해진다. ‘브이’는 1605년 영국의 제임스 1세 왕조의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 화약 테러를 하려다 체포된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있다. 정부의 알 수 없는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가 탈출한 그는 가이 포크스의 정신을 이어 영국의 독재자인 ‘셔틀러’에 항거해 혁명을 계획한다. ‘브이’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매스 미디어를 이용해 국민들에게 우매함에서 깨어날 것을 강조하며 암묵적인 혁명을 진행해 간다.


미디어 속에서 발현된 집단지성

집단지성이란 다수의 개체들이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과정을 통해 얻게 된 집단의 지적 능력이 개별 개체의 능력을 넘어서는 힘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성환<인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 대입한다면 집단지성과 결부시킬 수 있다”고 했다. ‘브이’가 매스 미디어를 통해 국민들을 계몽하고 협력시켜 혁명으로 발전하는 것이 현재 네티즌들이 온라인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성장해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브이’가 집단지성을 잘 이용했다고 볼 수는 없다. 집단지성을 지닌 대중들도 엄연히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기억하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브이’의 사상을 은근히 강요하고 있다. 신 교수는 “대중은 우매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혜롭기도 하다”며 “영화에서 ‘브이’가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국민들에게 공략한 사상 역시 선전선동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면에서 대중의 집단지성을 이용한 것이다”고 ‘브이’ 역시 독재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지적했다.

▲ <'브이'를 따라 가면을 쓰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

‘브이’의 가면과 디지털 시대의 ‘아이디’

자신이 사랑하는 ‘이비’가 얼굴을 보고 싶어하며 가면을 벗기는 순간 그는 말한다. “가면을 벗는 순간, 당신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보게 될 겁니다.” 그는 가면을 통해 자신을 숨김으로써 자신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아’를 끌어낸 것이다. 정부의 실험 대상에서 벗어나 사회의 그늘에서 살던 그는 ‘익명성’을 이용해 혁명가로 거듭났다.

인터넷 게시판의 수많은 댓글도 ‘아이디’라는 가면을 이용해 개인에게 잠재돼 있는 ‘또 다른 자아’가 표출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신 교수는 “온라인상에서는 한 개인이 개별 존재로서 가치를 갖고 있음에도 익명의 가면을 쓰고 행동한다”며 “‘브이’의 가면으로 대표되는 익명성은 대중에게 어떠한 말도 할 수 있게 하는 용기를 실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참고 : 논문 「영화 <V for Vendetta> 낯설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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