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다치기 쉬운 우리의 뿌리
서울, 다치기 쉬운 우리의 뿌리
  • 김유진 기자
  • 승인 2011.11.07
  • 호수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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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한 역사·문화 복원 사업 필요해

▲ <하늘 공원에서 바라본 서울의 정경>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 서울은 선사시대 이래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중심’ 역할을 해오고 있다. 백제와 조선의 도읍지로서 문화의 중추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우용<서울대학교> 강사는 그의 저서「서울은 깊다」에서 이러한 서울의 과거와 현재를 탐색하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신의 땅, 역사의 중심에 서다

해방된 지 딱 1년째 되는 날인 1946년 8월 15일에「서울시헌장」이 발표된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으로, 일제시대에는 ‘경성부’로 불리던 서울의 공식 명칭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서울이라는 명칭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전 강사는 저서에서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서울은 한역(韓譯)하면 신시가 된다. 신시는 환웅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고조선 이전의 신화적인 도읍지다. 정교 분리의 원칙이 확립되기 전까지 수도는 정치의 중심일 뿐 아니라 종교의 중심이기도 했다. 수도를 ‘신의 땅’으로 부른 것은 당연했다.

조선시대에는 한성부나 한양, 장안 등의 말보다 ‘서울’이라는 말이 더 일반적으로 사용됐다. 조선 말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인 선교사들이 우리말을 배우면서 공식 명칭인 ‘한성부’ 대신 ‘서울’을 사용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서울은 조선 후기의 생산력 발전의 성과를 거의 독점했다. 전 강사는 “지방 세력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한 조선 왕조의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일제시대가 되면서 ‘한성부’는 ‘경성부’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서울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다. 잡지 「서울」이 발간되고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는 글도 나올 정도였다.

일제 강점과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도 서울은 그 역할을 다해왔다. 개항 이래로 서구의 문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철도와 전차가 개통됐다. 전화, 서양식 학교 등의 근대적 생활 시설들은 지금의 서울을 만들었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위치는 서울의 급속한 경제 발전을 도왔다. 아시아의 최대 시장인 이들 국가 사이에 위치해 있으면서 우리나라 산업의 집적지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현재 금융의 50% 이상과 벤처 기업들의 43% 이상이 서울에 집중돼 있다. 

전 강사는 이를 두고 “서울이 지방의 인적·물적 자원을 빨아들이는 속도와 범위는 점점 커져가고 있다”며 “서울뿐 아니라 지방 도시들과도 더불어 발전할 길을 찾아야 한다”고 전했다.


복원의 역설

서울은 조선시대 이후 대부분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자원을 독점하며 빠르게 발전했다. 이 때문에 서울에선 많은 역사·문화 관련 사업이 발주되고 있다.

그 중 하나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옛 동대문 운동장을 허물고 만들었다. 서울 성곽뿐 아니라 대장간, 기와집 등을 복원했다. 운동장 안의 풍물시장과 밖의 노점상도 정리했다.

이를 두고 학계 일부에선 우리 문화를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비난이 일었다. 강성욱<동대문디자인파크부 건축과> 과장은 이에 대해 “훼손됐던 우리의 문화를 복원하고 개방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서울의 옛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진행된 사업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청계천 복원 사업은 주변을 문화 거리로 조성하고 고궁을 비롯한 동대문, 도심과 연계된 문화 공간을 주민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시작됐다. 청계천은 서울의 중심부를 지나 한강으로 흐르는 하천이다. 서울이 조선의 수도가 되면서 갑자기 밀려든 인구덕에 그 위상을 달리하게 됐다. 그렇기에 이곳은 우리의 문화를 품고 있다는 하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자연 하천이던 청계천을 인공 하천으로 만들면서 세심하게 문화재를 발굴·복원하지 않아 문화재가 많이 훼손됐다. 때문에 역사적·문화적으로 논란이 많았다.

전 강사는 “이 사업이 발주될 때 자문을 맡았다”며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석축을 훼손시켜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복원 사업 과정에서 새로 세워진 다리도 좋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들도 함께 복원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참고: 저서 「서울은 깊다」

 

▲ <시민들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복원된 서울 성곽 주변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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