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건축물은 그 대학의 브랜드를 건축한다
대학의 건축물은 그 대학의 브랜드를 건축한다
  • 김명지 기자
  • 승인 2011.11.05
  • 호수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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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학 건물, “여전히 개성은 아쉬워”

한양대에 입학하고 싶었던 수험생 유진이는 포털사이트에서 종종 ‘한양대’를 검색하곤 했다. 이미지 목록에 나열된 한양대의 여러 건물들 중 서울캠퍼스의 신본관과 ERICA캠퍼스의 정문 ‘아고라’를 찾아낸 유진이는 그것을 인쇄해 책상 위에 붙여놓고는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유진이는 두 건물들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아리송하기도 했다.


각양각색 대학 건물의 의미 그려내기


큰 기둥 여러 개를 일렬로 세워 놓은 고대 그리스식 건물, 중세 서양을 연상시키는 고딕 양식의 건물 등 ‘멋진 대학 건물’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전형적인 이미지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일률적인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각 대학의 고유한 개성을 드러내고 있는 독특한 건축물들도 있다.

덕성여대는 현재 운현궁 양관을 학내 건물의 일부로 사용하고 있다. 운현궁은 구한 말 고종황제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사가로 현재 사적 제257호로 지정돼 있어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

덕성여대 시설과 측은 운현궁 양관에 대해 “현재는 재단의 법인 사무국으로 쓰이고 있다”며 “학생들

▲ <위에서부터 서울캠퍼스의 신본관과 구본관, ERICA캠퍼스의 구정문, ERICA캠퍼스의 신정문 '아고라'>

역시 덕성여대 내 운현궁 양관의 존재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는 편”이라고 전했다. 사적인 만큼 덕성여대 내 운현궁 양관에 대한 관리 역시 학교 측의 일방적인 형태로만 진행되진 않는다. 덕성여대 시설과 측은 “평소엔 덕성여대가 자체적으로 관리하지만 시설 보수 등의 큰 변화를 줘야할 땐 서울시에서 관장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세종대 정문 역시 조선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모양새로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창경궁의 정문인 ‘명정문’과 같은 방식으로 설계된 팔작지붕(지붕 위까지 팔(八)자 모양의 널이 달려있고 서까래의 받침이 되는 용마루 부분이 넓은 삼각형을 이루는 조선시대의 지붕구조 중 하나)으로 세종대의 상징물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들은 팔작지붕 아래 큰 기둥 사이로 통행한다. 황선이<세종대관리처 건축과> 직원은 “정문은 평소 출입을 통제하지 않아 항상 열려있다”고 전했다.


우리학교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우리학교 서울캠퍼스의 애지문을 나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본관이다. 지난 2009년 5월 개관한 신본관과 그 이전까지 사용되던 구본관이 나란히 있는 형태다. 당시 신본관의 설계자인 류춘수<건축학부 65> 동문은 종탑에 대해 우리학교의 전신인 동아공과학원의 종탑과 독일 훔볼트대학의 상징인 종탑을 참고로 설계한 것이라고 전했다. 또 이원용<관리처 설계팀> 부장은 “흩어졌던 행정부서가 하나의 건물로 집약됨으로써 행정부서 간 유기적 연계를 통한 업무 효율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본지 1295호).

한편 ERICA캠퍼스의 정문 ‘아고라’ 역시 지난 2009년 12월에 새로 완공됐다. 이전 정문은 석조기둥이 서 있는 모양이었다. 새로 만들어진 ‘아고라’는 여느 정문처럼 개폐의 기능에만 집중하지 않고 정문이 길목에 놓여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종림<총무관리처 시설팀> 과장은 “고대 그리스에 있었던 광장의 개념인 ‘아고라’란 이름을 통해 교내 구성원들끼리의 소통은 물론 대학과 사회의 소통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아고라를 이루고 있는 길 좌우의 건물들은 한쪽은 도로와 나란하되 반대쪽은 도로와 사선을 이루고 있다. 박 과장은 이에 대해 “기존의 건물 배치 통념을 뒤바꾸며 혁신적인 발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조형물화한 정문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즉 ERICA캠퍼스의 정문은 소통과 융통성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서현<공대 건축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학 건물이 유럽과 미국의 대학 건축양식을 좇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며 “지적 콤플렉스의 건축적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특정한 건물을 무조건 따라하는 것이 아니고 막연히 “서양의 대학 건축이란 이런 식이다”하는 추상적 구상 아래 건축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대학 건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서 교수는 “모든 건축물은 그 집단이 갖는 꿈과 이상의 표현”이라고 전했다. 대학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이 잘 드러난 예가 미국 예일대의 고문서 도서관이다. 예일대 도서관은 책이 위대한 문화임이 분명하지만 물리적으로는 한낱 불에 타기 좋은 사물일 뿐이기도 하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불과 같은 ‘세상적 위협’에서 책으로 표상되는 ‘학문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뜻을 보여준다. 서 교수는 “예일대의 경우와 같이 대학의 건물은 대학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전체 건물이 통일된 가치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각 건물마다 그 이상을 분명히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학교의 경우 이런 면이 아쉽다는 지적이 있다. 학풍에 따라 ‘실용성’을 강조하지만 건물에 대학의 가치나 실용적 편의성마저도 결여된 부분이 여럿 있다는 것이다. 건축학부가 소재한 서울캠퍼스 과학기술관의 경우 역시 화재에 취약하단 단점이 있다. 서 교수는 “학내 건축물들이 그저 ‘건물’로서의 의미 이상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고 전했다. 대학만의 가치, 나아가 우리학교만의 상징을 드러낼 수 있을만한 장치의 필요성이 절실한 것이다.

최근 국내 대학들의 학내 건물 건축의 추세는 ‘비싸게’다. 비싸게 짓는다는 것은 내구성을 강화한다는 것인데 이는 ‘값이 싸진’ 않더라도 장기적으로 ‘경제적’일 수 있다. 서 교수는 현재 한양대의 상징으로 불리고 있는 건물들에 대해 아쉬움을 전하며 경제적으로 내구성을 강화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되 학교의 가치를 잘 드러내는 것이 대학 건물의 나아갈 방향임을 강조했다.   

사진 이재혁 기자
사진 제공: 박종림<총무관리처 시설팀> 과장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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